선(禪-jhāna)의 의미
선(禪-jhāna)의 의미
● 선(禪) ― (DN 27.12-처음에 대한 앎 경, 바라문 계급)에 의하면, 바라문은 악한 불선법들을 제거하는 자인데, 그들의 행위가 ‘선(禪-jhāna)을 하는 것(jhāyati)’임.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3_04&wr_id=15
그러자 와셋타여, 그 중생들 가운데 어떤 자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존자들이여, 악한 법들이 중생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이 나타날 것이고, 비난이 나타날 것이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 나타날 것이고, 몽둥이로 처벌하는 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을 나르게 하면[제거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그들은 악한 불선법들을 나르게[제거하게] 했다. ‘악한 불선법들을 나르게[제거하게] 한다.’라고 해서, 와셋타여, ‘바라문, 바라문’이라는 첫 번째 단어가 생겼다.
그들은 숲속에서 풀잎으로 된 오두막을 지은 뒤 풀잎으로 된 오두막에서 선(禪)을 하였다. 그들은 숯불에서 벗어나고, 연기에서 벗어나고, 절굿공이를 내려놓았으며, 저녁에는 저녁 식사를 위하여, 아침에는 아침 식사를 위해서 마을과 번화가와 수도로 가서 음식을 얻었다. 그들은 음식을 얻은 뒤 다시 숲속의 풀잎으로 된 오두막에서 선(禪)을 하였다. 사람들이 이런 그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ㅡ '존자들이여. 숲속에서 풀잎으로 된 오두막을 지은 뒤 풀잎으로 된 오두막에서 선(禪)을 합니다. 그들은 숯불에서 벗어나고, 연기에서 벗어나고, 절굿공이를 내려놓았으며, 저녁에는 저녁 식사를 위하여, 아침에는 아침 식사를 위해서 마을과 번화가와 수도로 가서 음식을 얻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얻은 뒤 다시 숲속의 풀잎으로 된 오두막에서 선(禪)을 합니다.'라고. ‘선(禪)을 한다.’라고 해서, 와셋타여, '선(禪)을 하는 자, 선(禪)을 하는 자'라는 두 번째 단어가 생겼다.
● kusalā dhammā[악한 불선법(不善法)]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경전들
가. akusalā dhammā = āsavā[번뇌 – 루(漏)]
; āsav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1) mahāsaccakasuttaṃ (MN 36-삿짜까 큰 경)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ㅡ "악기웻사나여,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지 못한 자를 나는 미혹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악기웻사나여,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린 자를 나는 미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악기웻사나여, 번뇌들을 버리면 미혹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기웻사나여, 여래는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렸고 뿌리를 잘랐고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악기웻사나여, 예를 들면 야자수 나무가 수염[처럼 난 윗부분을] 잘라버리면 다시 자랄 수 없는 것과 같다. 악기웻사나여, 그와 같이 여래는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렸고 뿌리를 잘랐고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2) brahmanimantanikasuttaṃ (MN 49-범천의 초대 경)
사악한 자여, 여래는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더라도 한결같고 여래는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더라도 한결같다. 사악한 자여, 여래는 제자들을 지도하더라도 한결같고 여래는 제자들을 지도하지 않더라도 한결같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악한 자여, 여래는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렸고 뿌리를 잘랐고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사악한 자여, 예를 들면 야자수 나무가 수염[처럼 난 윗부분을] 잘라버리면 다시 자랄 수 없는 것과 같다. 악기웻사나여, 그와 같이 여래는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렸고 뿌리를 잘랐고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3) naḷakapānasuttaṃ (MN 68-날라까빠나 경)
"장하구나. 장하구나, 아누룻다들이여. 여래는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렸고 뿌리를 잘랐고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아누룻다들이여, 예를 들면 야자수 나무가 수염[처럼 난 윗부분을] 잘라버리면 다시 자랄 수 없는 것과 같다. 악기웻사나여, 그와 같이 여래는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렸고 뿌리를 잘랐고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그래서 여래는 셈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셈한 뒤에 어떤 것을 감내하고, 셈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고, 셈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린다.'라고.”
나. akusalā dhammā = (pubbe attanā katāni) pāpakāni kammāni[(이전에 내가 지은) 악한 업들]
1) pāṭibhogasuttaṃ (AN 4.182-보증 경)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들에 대해서는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보증하지 못한다.
무엇이 넷인가? ‘늙음의 법에 대해 늙지 말라.’고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보증하지 못한다. ‘병듦의 법에 대해 병들지 말라.’고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보증하지 못한다. ‘죽음의 법에 대해 죽지 말라.’고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보중하지 못한다. 이전에 내가 지은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악한 업들에 대해 그 보(報)가 생기지 말라.’고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보증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법들에 대해서는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보증하지 못한다.”
다. akusalā dhammā = cattāro yogā[네 가지 속박]
1) yogasuttaṃ (AN 4.10)[속박 경]
이렇게 소유의 속박과 존재의 속박과 견해의 속박과 무명의 속박이 있고,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악하고 해로운 법들에 묶여있다. 그래서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유가안온(瑜伽安穩)하지 못한 자]라고 불린다. 이것이 네 가지 속박이다.
이렇게 소유의 속박에서 벗어남과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과 견해의 속박에서 벗어남과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 있고,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악하고 해로운 법들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가안온(瑜伽安穩)한 자]라고 불린다. 이것이 네 가지 속박에서 벗어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