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4.교리문답의 작은 경6[느낌과 잠재성향의 이중 구조](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4.교리문답의 작은 경6[느낌과 잠재성향의 이중 구조](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209)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7nmNbWQHY7Y
465. ‘심행(心行)=상(想)-수(受)’와 상수멸(想受滅)에 이어 주제는 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의 수(受-느낌/경험)로 연결됩니다.
• 즐거움의 경험은 유지되면 즐거움이고 변화하면 괴로움
• 괴로움의 경험은 유지되면 괴로움이고 변화하면 즐거움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경험은 알면 즐거움이고 모르면 괴로움 ― 2차 인식에서 전도되지 않은 상(想)에 의해 사실[삼법인(三法印)]대로 알면 명(明)이 생겨나서 고멸(苦滅)의 삶이 이어지고, 전도된 상(想)[번뇌-루(漏)]에 의해 사실대로 알지 못하면(모르면) 무명(無明)이 생겨나서 고(苦)의 삶이 이어짐.
수(受-느낌/경험)는 다시 잠재성향(anusaya)으로 연결됩니다.
• 즐거움의 경험 → 탐(貪)의 잠재성향이 잠재
• 괴로움의 경험 → 저항의 잠재성향이 잠재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경험 → 무명(無明)의 잠재성향이 잠재
하지만 모든 수(受)에 의해 잠재성향이 잠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명이 부서진 무위(無爲)의 삶에서 경험되는 해탈락(解脫樂)-열반락(涅槃樂)의 경우는 잠재성향을 잠재시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受)에서는 잠재성향이 버려져야 하는데, 역시 모든 수(受)에서 잠재성향이 버려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묾에서 시작하여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할 때까지 단계적으로 탐과 저항을 버리는데, 그때 탐의 잠재성향과 저항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묾을 시작으로 상수멸을 성취해 머물면서 지혜로 보아 번뇌가 다할 때까지 단계적으로 무명을 버리는데, 그때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초선(初禪) → 탐(貪)을 버림 → 탐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음 → 저항을 버림 → 저항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음
• 제사선(第四禪) → 무명(無明)을 버림 →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음
한편, (AN 3.69-외도 경)은 탐(貪)-진(嗔)-치(癡)가 생기는 원인-조건을 설명하는데, 탐(貪)과 진(嗔)은 정상(淨相) 또는 저항의 상(相)에 대한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고, 치(癡)는 비여리작의입니다. 이 내용을 이 경과 연결하면
• 비여리작의 → 불고불락(不苦不樂) → 치(癡)[번뇌+무명]
• 정상(淨相)의 비여리작의 → 락(樂) → 탐(貪)
• 저항의 상(相)의 비여리작의 → 고(苦) → 진(嗔)
의 형태를 알 수 있는데, 비여리작의-불고불락-치의 1단계 현상 위에 정상(淨相)의 비여리작의-락(樂)-탐(貪)과 저항의 상(相)의 비여리작의-고(苦)-진(嗔)의 2단계 현상이 이중의 구조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 주제는 일요일 특강에서 자세히 설명할 계획입니다.
466. 대응 관계 : (SN 48.42-운나바 바라문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5_05&wr_id=2) 참조
• 삶의 현상 : 즐거움의 경험 ↔ 괴로움의 경험
• 고멸(苦滅)을 위한 대응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경험 ↔ 무명(無明) → 명(明) → 해탈 → 열반
• 목적점 : 열반에 닿는 범행(梵行)은 열반을 구원으로 하고 열반을 완성으로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