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hmanimantanikasuttaṃ (MN 49-범천(梵天)의 초대 경)
5. cūḷayamakavaggo, 9. brahmanimantanikasuttaṃ (MN 49-범천(梵天)의 초대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거기서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여기, 비구들이여, 나는 한때 욱깟타에서 수바가 숲의 큰 살라 나무 아래 머물렀다. 그때, 비구들이여, 바까 범천에게 ‘이것은 상(常)하고, 이것은 안정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완전하고, 이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참으로 이것은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옮겨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이것보다 더 높은 다른 해방은 없다.’라는 악하고 치우친 견해가 생겼다. 그때, 비구들이여, 바까 범천의 심(心)으로부터 심(心)의 온전한 생각 떠오름을 알고서 ― 예를 들면 힘센 사람이 접은 팔을 펴거나 편 팔을 접을 것이다, 이처럼 ― 나는 욱깟타의 수바가 숲 큰 살라 나무 아래에서 사라져 그 범천의 세상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바까 범천은 멀리서 오고 있는 나를 보았다. 보고서 ‘오십시오, 선생님. 잘 오셨습니다, 선생님. 여기에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선생님. 참으로, 선생님, 이것은 상(常)하고, 이것은 안정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완전하고, 이것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옮겨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것보다 더 높은 다른 해방은 없습니다.’라고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나는 바까 범천에게 ‘참으로, 존자여, 바까 범천은 무명이 스몄소. 참으로, 존자여, 바까 범천은 무명이 스몄소. 참으로 무상(無常)한 것을 상(常)하다고 말할 것이고, 불안정한 것을 안정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말할 것이고, 완전하지 않은 것을 완전하다고 말할 것이고,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오. 태어나고 늙고 죽고 옮겨가고 다시 태어나는 곳에서 ‘이것은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옮겨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이오. 더 높은 해방이 있는 것을 더 높은 해방이 없다고 말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때 마라 빠삐만뜨가 범천의 무리에 속한 어떤 자에게 들어가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비구여, 비구는 끼어들지 마십시오. 비구여, 그 범천은 대범천(大梵天), 정복자, 정복당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권능 가진 자, 창시자, 창조자, 으뜸 된 자, 신분을 부여하는 자, 주인, 과거와 미래의 것들의 아버지입니다. 비구여, 그대 이전에 세상에 땅[지(地)]에서 흠을 보고 땅을 탐탁찮아 하고, 물[수(水)]에서 흠을 보고 물을 탐탁찮아 하고, 불[화(火)]에서 흠을 보고 불을 탐탁찮아 하고, 바람[풍(風)]에서 흠을 보고 바람을 탐탁찮아 하고, 활성 존재에서 흠을 보고 활성 존재를 탐탁찮아 하고, 신(神)에서 흠을 보고 신을 탐탁찮아 하고, 빠자빠띠에서 흠을 보고 빠자빠띠를 탐탁찮아 하고, 범천에서 흠을 보고 범천을 탐탁찮아 하는 사문-바라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몸이 무너져 생명이 끊어진 뒤에 낮은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또한, 비구여, 그대 이전에 세상에 땅을 찬양하고 땅을 기뻐하고, 물을 찬양하고 물을 기뻐하고, 불을 찬양하고 불을 기뻐하고, 바람을 찬양하고 바람을 기뻐하고, 활성 존재를 찬양하고 활성 존재를 기뻐하고, 신(神)을 찬양하고 신을 기뻐하고, 빠자빠띠를 찬양하고 빠자빠띠를 기뻐하고, 범천을 찬양하고 범천을 기뻐한 사문-바라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몸이 무너져 생명이 끊어진 뒤에 뛰어난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비구여, 나는 그대에게 ‘오십시오, 선생님, 그대는 그 범천이 말한 것을 행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대는 범천의 말을 넘어서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만약, 비구여, 그대가 범천의 말을 넘어선다면 ―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오고 있는 행운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를 것입니다, 예를 들면, 비구여, 지옥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는 어떤 사람이 손과 발로 땅을 붙잡지 않을 것입니다. ― 그대는 이렇게 행운을 놓칠 것입니다. 오십시오, 선생님, 그대는 그 범천이 말한 것을 행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대는 범천의 말을 넘어서지 마십시오. 비구여, 그대는 모여 있는 범천의 무리가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이렇게, 비구들이여, 마라 빠삐만뜨는 나를 범천의 무리로 이끌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나는 마라 빠삐만뜨에게 ‘빠삐만뜨여, 나는 그대를 안다. 그대는 ‘그는 나를 모른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는 마라 빠삐만뜨다. 빠삐만뜨여, 범천과 범천의 무리와 범천의 무리에 속한 자들 모두 그대의 손아귀 안에 있고, 모두 그대의 지배력 안에 있다. 참으로, 빠삐만뜨여, 그대는 ‘이 자도 나의 손아귀 안에 있고, 이 자도 나의 지배력 안에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빠삐만뜨여, 나는 그대의 손아귀 안에 있지 않고, 나는 그대의 지배력 안에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바까 범천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참으로, 선생님, 나는 상(常)한 것을 상(常)이라고 말하고, 안정된 것을 안정이라고 말하고, 영원한 것을 영원이라고 말하고, 완전한 것을 완전이라고 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옮겨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곳에서 ‘참으로 이것은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옮겨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더 높은 다른 해방이 없는 것을 ‘더 높은 다른 해방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비구여, 그대 이전에 세상에 그대의 한평생만큼이나 고행을 한 사문-바라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더 높은 해방이 있을 때 다른 더 높은 해방이 있다, 다른 더 높은 해방이 없을 때 다른 더 높은 해방이 없다.’라고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비구여, 나는 그대에게 ‘더 높은 다른 해방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피곤하고 짜증이 나게 될 것입니다. 만약, 비구여, 그대가 땅에 묶이면 나에게 가까운 자, 나의 영역에서 쉬는 자,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해야 하는 자, 나를 위해 물러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만약, 물에 … 불에 … 바람에 … 활성 존재에 … 신에 … 빠자빠띠에 … 범천에 묶이면 나에게 가까운 자, 나의 영역에서 쉬는 자,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해야 하는 자, 나를 위해 물러나는 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범천이여, 나도 이렇게 안다. ― ‘만약 내가 땅에 묶이면 그대에게 가까운 자, 그대의 영역에서 쉬는 자, 그대가 원하는 대로 행해야 하는 자, 그대를 위해 물러나는 자가 될 것이다. 만약, 물에 … 불에 … 바람에 … 활성 존재에 … 신에 … 빠자빠띠에 … 범천에 묶이면 그대에게 가까운 자, 그대의 영역에서 쉬는 자, 그대가 원하는 대로 행해야 하는 자, 그대를 위해 물러나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그러나 범천이여, 심지어 나는 그대의 갈 곳을 분명히 알고, ‘바까 범천은 이렇게 큰 신통이 있다. 바까 범천은 이렇게 큰 위엄이 있다. 바까 범천은 이렇게 크나큰 힘이 있다.’라고 그대의 영광도 분명히 안다.’
‘그러면 선생님, 어떻게 그대는 나의 갈 곳을 분명히 알고, ‘바까 범천은 이렇게 큰 신통이 있다. 바까 범천은 이렇게 큰 위엄이 있다. 바까 범천은 이렇게 크나큰 힘이 있다.’라고 나의 영광을 분명히 압니까?‘
“yāvatā candimasūriyā, pariharanti disā bhanti virocanā.tāva sahassadhā loko, ettha te vattate vaso.“paroparañca jānāsi, atho rāgavirāginaṃ.itthabhāvaññathābhāvaṃ, sattānaṃ āgatiṃ gatin”ti.
‘달과 태양이 돌고, 비추어지는 방향들이 나타나는 만큼으로 천(千)의 세상이 있다.
여기가 그대의 영역이고 그대의 힘이 미친다.
그대는 높고 낮음을 알고, 또한, 탐(貪)의 바램을 안다.
여기의 존재와 다른 존재들을 알고, 중생들의 오고 감을 안다.
범천이여, 나는 이렇게 그대의 갈 곳을 분명히 알고, ‘바까 범천은 이렇게 큰 신통이 있다. 바까 범천은 이렇게 큰 위엄이 있다. 바까 범천은 이렇게 크나큰 힘이 있다.’라고 그대의 영광을 분명히 안다.
범천이여, 그대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다른 무리가 있다. 나는 그것을 알고 본다. 범천이여, 광음천(光音天)이라는 무리가 있다. 그대는 거기서 죽은 뒤 여기에 태어났다. 그대가 너무 오래 머문 탓에 그것에 대한 그대의 기억이 잊혔다. 그래서 그대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 그것을 나는 알고 본다. 범천이여, 이렇게도 나는 실다운 지혜에서 그대와 동등하지 않은데 어떻게 저열하겠는가? 내가 그대보다 더 뛰어나다. 범천이여, 변정천(遍淨天)이라는 무리가 있다. … 광과천(廣果天)이라는 무리가 있다. … 승자천(勝者天)[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이라는 무리가 있다[PTS에는 없음]. 그대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 그것을 나는 알고 본다. 범천이여, 이렇게도 나는 실다운 지혜에서 그대와 동등하지 않은데 어떻게 저열하겠는가? 내가 그대보다 더 뛰어나다. 범천이여, 나는 땅을 땅으로부터 실답게 알고, 땅이 가진 땅의 속성에 의해 경험하지 않을 만큼 실답게 알아서 땅을 만족하지 않고, 땅에서 만족하지 않고, 땅으로부터 만족하지 않고, 땅을 나의 것이라고 만족하지 않고, 땅을 선언하지 않았다. 범천이여, 이렇게도 나는 실다운 지혜에서 그대와 동등하지 않은데 어떻게 저열하겠는가? 내가 그대보다 더 뛰어나다. 범천이여, 나는 물을 … 범천이여, 나는 불을 … 범천이여, 나는 바람을 … 범천이여, 나는 활성 존재를 … 범천이여, 나는 신을 … 범천이여, 나는 빠자빠띠를 … 범천이여, 나는 범천을 … 범천이여, 나는 광음천을 … 범천이여, 나는 변정천을 … 범천이여, 나는 광과천을 … 범천이여, 나는 승자천을 … 범천이여, 나는 일체를 일체로부터 실답게 알고, 일체가 가진 일체의 속성에 의해 경험하지 않을 만큼 그것을 실답게 알아서 일체를 만족하지 않고, 일체에서 만족하지 않고, 일체로부터 만족하지 않고, 일체를 나의 것이라고 만족하지 않고, 일체를 선언하지 않았다. 범천이여, 이렇게도 나는 실다운 지혜에서 그대와 동등하지 않은데 어떻게 저열하겠는가? 내가 그대보다 더 뛰어나다.’
[PTS] 10. Atthi kho Brahme aññe tayo kāyā, tattha tvaṃ na jānāsi na passasi, tyāhaṃ jānāmi passāmi. Atthi kho Brahme Ābhassarā nāma kāyo yato tvaṃ cuto idh'ūpapanno, tassa te aticiranivāsena sā sati muṭṭhā, tena taṃ tvaṃ na jānāsi na passasi, tam-ahaṃ jānāmi passāmi. Evam-pi kho ahaṃ Brahme n'eva te samasamo abhiññāya, kuto nīceyyaṃ, atha kho aham-eva tayā bhiyyo. Atthi kho Brahme Subhakiṇṇā nāma kāyo yato tvaṃ cuto idh'ūpapanno, tassa te aticiranivāsena sā sati muṭṭhā, tena taṃ tvaṃ na jānāsi na passasi, tam-ahaṃ jānāmi passāmi. Evam-pi kho ahaṃ Brahme n'eva te samasamo abhiññāya, kuto nīceyyaṃ, atha kho aham-eva tayā bhiyyo. Atthi kho Brahme Vehapphalā nāma kāyo yato tvaṃ cuto idh'ūpapanno, tassa te aticiranivāsena sā sati muṭṭhā, tena taṃ tvaṃ na jānāsi na passasi, tam-ahaṃ jānāmi passāmi. Evam-pi kho ahaṃ Brahme n'eva te samasamo abhiññāya, kuto nīceyyaṃ, atha kho aham-eva tayā bhiyyo.
11. Paṭhaviṃ kho ahaṃ Brahme paṭhavito abhiññāya yāvatā paṭhaviyā paṭhavattena ananubhūtaṃ tad abhiññāya "paṭhavī nāhosi, paṭhaviyā nāhosi, paṭhavito nāhosi, paṭhavī me" ti nāhosi, paṭhaviṃ nābhivadiṃ. Evam-pi kho ahaṃ Brahme n'eva te samasamo abhiññāya, kuto nīceyyaṃ, atha kho aham-eva tayā bhiyyo.
12-23. Āpaṃ kho ahaṃ Brahme ... tejaṃ kho ahaṃ Brahme ... vāyaṃ kho ahaṃ Brahme . . . bhūte kho ahaṃ Brahme ... deve kho ahaṃ Brahme ... Pajāpatiṃ kho ahaṃ Brahme ... Brahmaṃ kho ahaṃ Brahme ... Ābhassare kho ahaṃ Brahme ... Subhakiṇṇe kho ahaṃ Brahme ... Vehapphale kho ahaṃ Brahme ... Abhibhuṃ kho ahaṃ Brahme ... sabbaṃ kho ahaṃ Brahme sabbato abhiññāya yāvatā sabbassa sabbattena ananubhūtaṃ tad ... abhiññāya "sabbaṃ nāhosi, sabbasmiṃ nāhosi, sabbato nāhosi, sabbam-me" ti nāhosi, sabbaṃ nābhivadiṃ. Evam-pi kho ahaṃ Brahme n'eva te samasamo abhiññāya, kuto nīceyyaṃ, atha kho aham-eva tayā bhiyyo" ti.
‘만약에, 선생님, 일체가 가진 일체의 속성에 의해 경험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실답게 안 것 때문에 공허해지고 허망해지지 마십시오.’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나는 식(識)’ 그것은 땅이 가진 땅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물이 가진 물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불이 가진 불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바람이 가진 바람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활성 존재들이 가진 활성 존재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신이 가진 신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빠자빠띠가 가진 빠자빠띠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범천들이 가진 범천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광음천들이 가진 광음천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광과천들이 가진 광과천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승자천이 가진 승자천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일체가 가진 일체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보십시오, 선생님, 내가 그대에게서 사라지겠습니다.’ ‘범천이여, 가능하다면 이제 그대는 나에게서 사라져 보라.’ 그러나 비구들이여, 바까 범천은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사라지리라,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사라지리라.’라고 하였지만 나에게서 사라지지 못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나는 바까 범천에게 ‘그러면 이제 내가 그대에게서 사라지리라.’라고 말했다. ‘선생님, 가능하다면 이제 그대가 나에게서 사라져 보십시오.’ 그래서 나는, 비구들이여, ‘범천과 범천의 무리와 범천의 무리에 속한 자들이 나의 소리는 들을 것이지만 나를 보지는 못한다.’라는 신통행을 펼쳤다. 사라진 상태에서 나는 이런 게송을 말했다. ―
“bhavevāhaṃ bhayaṃ disvā, bhavañca vibhavesinaṃ.bhavaṃ nābhivadiṃ kiñci, nandiñca na upādiyin”ti.
‘나는 존재에서 두려움을 본 뒤에 존재[유(有)]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추구하는
어떤 존재도 드러내지 않았고, 소망을 붙잡지도 않았다.’
그러자 비구들이여, 범천과 범천의 무리와 범천의 무리에 속한 자들에게 놀랍고 신기한 심(心)이 생겼다. ― ‘존자들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사문 고따마는 큰 신통이 있고, 큰 위엄이 있습니다. 사꺄 가문에서 출가한 사꺄의 아들인 이분 사문 고따마처럼 이렇게 큰 신통이 있고 이렇게 큰 위엄이 있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이전에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존자들이여, 존재를 즐기고, 존재를 좋아하고, 존재를 기뻐하는 생명에게서 존재를 뿌리째 뽑아버렸습니다.’
그때, 비구들이여, 마라 빠삐만뜨가 범천의 무리에 속한 어떤 자에게 들어가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선생님, 만약 그대가 이렇게 분명히 알고, 만약 그대가 이렇게 깨달았다면 제자들을 가르치지 말고, 출가자들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말고, 출가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마십시오. 제자들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출가자들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마십시오. 비구여, 세상에는 그대 이전에 아라한-정등각을 선언한 사문-바라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출가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고, 출가자들에게 법을 설했습니다. 제자들에 대해 욕심을 부리고, 출가자들에 대해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출가자들을 가르친 뒤에,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고, 출가자들에게 법을 설한 뒤에 제자들과 출가자들에 대해 욕심부리는 심(心)을 가진 그들은 몸이 무너져 생명이 끊어진 뒤에 낮은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비구여, 세상에는 그대 이전에 아라한-정등각을 선언한 사문-바라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고, 출가자들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고, 출가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고, 출가자들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고, 출가자들을 가르치지 않은 뒤에,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고, 출가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은 뒤에 제자들과 출가자들에 대해 욕심부리는 심(心)을 가지지 않은 그들은 몸이 무너져 생명이 끊어진 뒤에 뛰어난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비구여, 나는 그대에게 ‘그대는 오십시오, 선생님, 활동하지 말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에 몰두하여 머무십시오. 유익(有益)을 선언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남을 가르치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나는 마라 빠삐만뜨에게 ‘빠삐만뜨여, 나는 그대를 안다. 그대는 ‘그는 나를 모른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는 마라 빠삐만뜨이다. 빠삐만뜨여, 그대는 이익과 연민을 가지고 나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빠삐만뜨여, 그대는 불이익과 연민하지 않음을 가지고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빠삐만뜨여, 그대에게 ‘사문 고따마가 설하는 법들은 나의 영역을 넘어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빠삐만뜨여, 그들은 정등각이 아니면서 ‘우리는 정등각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빠삐만뜨여, 나는 정등각이면서 ‘나는 정등각이다.’라고 선언한다. 참으로, 빠삐만뜨여, 여래는 제자들에게 법을 설할 때도 그러하고[정등각], 참으로, 빠삐만뜨여, 여래는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을 때도 그러하다[정등각]. 참으로, 여래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그러하고, 참으로, 빠삐만뜨여, 여래는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을 때도 그러하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빠삐만뜨여, 여래에게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보(報)가 괴로움인 번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예를 들면, 빠삐만뜨여,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는 다시 자라지 못한다. 이처럼, 빠삐만뜨여, 여래에게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보가 괴로움인 번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이것에 대해 마라는 말하지 못했고, 이것은 범천의 초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이 설명을 범천의 초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