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9.범천의 초대 경[아(我)를 주장하는 바까 범천의 악한 견해를 무아(無我)로써 타파…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9.범천의 초대 경[아(我)를 주장하는 바까 범천의 악한 견해를 무아(無我)로써 타파함](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316)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Hlv0BeMS74
바까 범천(梵天)은 ①이것은 상(常)하고, 이것은 안정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완전하고, 이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②이것은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옮겨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으며, ③이것보다 더 높은 다른 해방은 없다.’라는 악한 견해[아(我)]를 가졌고, 부처님은 바까 범천에게 무명이 스몄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마라 빠삐만뜨가 참견하여 바까 범천을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편들지만 부처님은 그에게도 적절히 반박합니다. 경의 후미에서 바까 범천과 능력을 견주는 장면에서 신통행을 펼치는 용례가 나타나고, 특히, 일체가 가진 일체의 속성에 의해 경험하지 않는 일체(一切)를 벗어난 식(識)의 선언은 주목해야 합니다.
● 바까 범천(梵天)의 악한 견해 ― ‘이것은 상(常)하고, 이것은 안정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완전하고, 이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참으로 이것은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옮겨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이것보다 더 높은 다른 해방은 없다.’
• 참고 1 : (SN 6.1-범천의 요청 경) ― 두 가지 토대 ― ①여기[중생 세상]에서의 조건성인 연기(緣起)와 ②열반(涅槃)
• 참고 2 : (SN 22.94-꽃 경) ― ①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인 오온(五蘊)은 없고, 무상(無常)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인 오온(五蘊)은 있음 → 고(苦)=안정되지 않고 영원하지 않음, 락(樂)=안정되고 영원한 것
②세상에 있는 세상의 법 = 오온(五蘊)[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오온(五蘊) = 세상의 법(法)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
상(常) |
안정-영원 |
변하지 않음 |
무상(無常) |
고(苦) |
변함 |
※ 상(常)-락(樂)-아(我)-정(淨)의 성질을 가진다고 설정된 아(我-attan/atman)는 없음
1. 부처님의 반박 ― 바까 범천은 무명이 스몄음
①무상(無常)한 것을 상(常)하다고, 불안정한 것을 안정된 것이라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완전하지 않은 것을 완전하다고,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고,
②태어나고 늙고 죽고 옮겨가고 다시 태어나는 곳에서 ‘이것은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옮겨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이고,
※ 태어나고 늙고 죽고 옮겨가고 다시 태어나는 곳 = 중생 세상 = 여기 = 무명(無明)의 영역
③더 높은 해방이 있는 것을 더 높은 해방이 없다고 말할 것 → 무상(無常)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인 오온(五蘊)의 세상에는 여기에서 벗어나 실현되는 열반이라는 더 높은 해방이 있음
2. 마라 빠삐만뜨의 참견
• 바까 범천 ― 대범천(大梵天), 정복자, 정복당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권능 가진 자, 창시자, 창조자, 으뜸 된 자, 신분을 부여하는 자, 주인, 과거와 미래의 것들의 아버지
• 부처님 이전에 세상에 땅-물-불-바람-활성 존재-신-빠자빠띠-범천에서 흠을 보고 탐탁찮아 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었음 → 몸이 무너져 생명이 끊어진 뒤에 낮은 몸으로 태어남
(*) 흠을 보고 탐탁찮아 한 ― 무아(無我)의 관점을 가진
• 부처님 이전에 세상에 땅-물-불-바람-활성 존재-신-빠자빠띠-범천을 찬양하고 기뻐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었음 → 몸이 무너져 생명이 끊어진 뒤에 뛰어난 몸 태어남
(*) 찬양하고 기뻐한 ― 아(我)의 관점을 가진
⇒ 그 범천이 말한 것을 행하고, 이 세상에서 범천의 말을 넘어서지 마시오!
3. 마라 빠삐만뜨에 대한 부처님의 반박
• 빠삐만뜨여, 나는 그대를 안다. 그대는 ‘그는 나를 모른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는 마라 빠삐만뜨다.
• 범천과 범천의 무리와 범천의 무리에 속한 자들 모두 그대의 손아귀 안에 있고, 모두 그대의 영향력 안에 있다. 그대는 ‘이 자도 나의 손아귀 안에 있고, 이 자도 나의 영향력 안에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대의 손아귀 안에 있지 않고, 나는 그대의 영향력 안에 있지 않다.
→ 마라의 영역이 범천의 영역보다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음 ―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즉 중생 세상의 꼭대기까지가 마라의 영역임
4. 바까 범천의 반발 ― ‘나는 ①상(常)한 것-안정된 것-영원한 것-완전한 것-변하지 않는 것을 상(常)-안정-영원-완전-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②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옮겨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곳에서 ‘참으로 이것은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옮겨가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③더 높은 다른 해방이 없는 것을 ‘더 높은 다른 해방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 반발의 이유 ― 오랜 시간 고행을 한 사문-바라문들이 ‘다른 더 높은 해방이 있을 때 다른 더 높은 해방이 있다, 다른 더 높은 해방이 없을 때 다른 더 높은 해방이 없다.’라고 알았을 것 → ‘그대는 더 높은 다른 해방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피곤하고 짜증이 나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땅-물-불-바람-활성 존재-신-빠자빠띠-범천에 묶이면 나에게 가까운 자, 나의 영역에서 쉬는 자,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해야 하는 자, 나를 위해 물러나는 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함
(*) 창조주 하나님 신앙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음
5. 부처님의 대응
① 만약 묶이면[무명(無明)이 스미면] 그렇게 될 것.
② 심지어 바까 범천의 갈 곳과 영광[큰 신통-큰 위엄-크나큰 힘이 있음]도 분명히 앎 → ‘달과 태양이 돌고, 비추어지는 방향들이 나타나는 만큼으로 천(千)의 세상이 있다. 여기가 그대의 영역이고 그대의 힘이 미친다. 그대는 높고 낮음을 알고, 또한, 탐(貪)의 바램을 안다. 여기의 존재와 다른 존재들을 알고, 중생들의 오고 감을 안다.’
⇒ 바까 범천의 정체를 더 잘 알고 있음
③범천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다른 무리의 제시 ― 광음천(光音天)-변정천(遍淨天)-광과천(廣果天)-승자천(勝者天)[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 → 그대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 그것을 나는 알고 본다. 범천이여, 이렇게도 나는 실다운 지혜에서 그대와 동등하지 않은데 어떻게 저열하겠는가? 내가 그대보다 더 뛰어나다.
⇒ 범천(梵天)-대범천(大梵天)이 광음천(光音天) 즉 제이선천(第二禪天) 이상의 경지를 모른다는 점에서 범천의 영역 즉 범천의 세상(brahmaloka)은 초선천(初禪天)의 영역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 수 있음.
(*) PTS본에는 승자천(勝者天)[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이 없이 세 가지 무리를 소개함.
④땅-물-불-바람-활성 존재-신-빠자빠띠-범천-광음천-변정천-광과천-승자천-일체[A]를 [A]로부터 실답게 알고, [A]가 [A]의 속성에 의해 경험하지 않을 만큼 실답게 알아서 [A]를 만족하지 않고, [A]에서 만족하지 않고, [A]로부터 만족하지 않고, [A]를 나의 것이라고 만족하지 않고, [A]를 선언하지 않았다. 범천이여, 이렇게도 나는 실다운 지혜에서 그대와 동등하지 않은데 어떻게 저열하겠는가? 내가 그대보다 더 뛰어나다.
6. 바까 범천의 역공 ― ‘일체가 가진 일체의 속성에 의해 경험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실답게 안 것 때문에 공허해지고 허망해지지 마시오.’
7. 일체(一切)를 벗어난 식(識)의 선언 ―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나는 식(識)(*)」 → 땅-물-불-바람-활성 존재-신-빠자빠띠-범천-광음천-변정천-광과천-승자천-일체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
※ 두 가지 토대(SN 6.1-범천의 요청 경) ― ①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緣起)[식(識)이 명색(名色)과 서로 조건 되어 나를 구성하는 영역], ②열반(涅槃)
※ 상수멸(想受滅)=락(樂)(MN 59-많은 경험 경) ― 「아난다여, ‘그 최상의 즐거움과 만족을 중생들은 경험한다.’라고 누가 말한다면,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그 즐거움보다 더 훌륭하고 더 뛰어난 다른 즐거움이 있다. 그러면 아난다여, 무엇이 그 즐거움보다 더 훌륭하고 더 뛰어난 다른 즐거움인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아난다여, 그 즐거움보다 더 훌륭하고 더 뛰어난 다른 즐거움이다.
그런데 아난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ㅡ '사문 고따마는 상수멸(想受滅)을 말했다. 그리고 즐거움의 영역에서 그것을 설명한다. 이것이 무슨 상황인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고. 아난다여, 이렇게 말하는 다른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즐거움의 영역에 대해서 즐거움의 경험만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도반들이여, 여래는 즐거움이 있는 어디에서든지 그것을 즐거움의 영역에서 설명합니다.'라고.」
(*) (DN 11.6-께왓따 경, 해안을 찾는 새의 비유)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11&wr_id=9와 답글 참조.
‘viññāṇaṃ anidassanaṃ, anantaṃ sabbatopabhaṃ.
ettha āpo ca pathavī, tejo vāyo na gādhati.
ettha dīghañca rassañca, aṇuṃ thūlaṃ subhāsubhaṃ.
ettha nāmañca rūpañca, asesaṃ uparujjhati.
viññāṇassa nirodhena, etthetaṃ uparujjhatī’ti.
‘식(識)이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나는
여기에서 물과 땅, 불과 바람은 공고한 기반이 없다.
여기에서 장(長)과 단(短), 극소(極小)와 극대(極大), 정(淨)과 부정(不淨)이
여기에서 명(名)과 색(色)이 남김없이 멈춘다.
식(識)의 멸(滅)에 의해서, 여기에서 이것이 멈춘다.’라고.
8. 능력을 견줌 ― 바까 범천은 부처님에게서 사라지지 못하지만, 부처님은 바까 범천에게서 사라지는 신통행을 펼치고(iddhābhisaṅkhāraṃ abhisaṅkhāsiṃ), 게송을 말함 ― 「나는 존재에서 두려움을 본 뒤에 존재[유(有)]와 비존재[무유(無有)]를 추구하는 어떤 존재도 드러내지 않았고, 소망을 붙잡지도 않았다.」
9. 범천과 범천의 무리와 범천의 무리에 속한 자들이 놀라워함 ― 「존재를 즐기고, 존재를 좋아하고, 존재를 기뻐하는 생명에게서 존재를 뿌리째 뽑아버렸습니다.」
10. 마라 빠삐만뜨의 회유
만약 그대가 이렇게 분명히 알고, 만약 그대가 이렇게 깨달았다면 제자들-출가자들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그들에게 법을 설하지 말고, 그들에게 욕심을 부리지 마십시오.(*)
(*) 벽지불(辟支佛)=독각(獨覺)의 특성
이전에도 세상에는 아라한-정등각을 선언한 사문-바라문들이 있었는데, 제자들-출가자들을 ①가르치고 법을 설하고 욕심을 부린 그들은 몸이 무너져 생명이 끊어진 뒤에 낮은 몸으로 태어났고, ②가르치지 않고 법을 설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은 그들은 몸이 무너져 생명이 끊어진 뒤에 뛰어난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그대는 활동하지 말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에 몰두하여 머물고, 유익(有益)을 선언하지 말고, 남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11. 부처님의 논파
그대는 이익과 연민이 아니라 불익과 연민하지 않음을 가지고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빠삐만뜨여, 그대에게 ‘사문 고따마가 설하는 법들은 나의 영역을 넘어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빠삐만뜨여, 그들은 정등각이 아니면서 ‘우리는 정등각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빠삐만뜨여, 나는 정등각이면서 ‘나는 정등각이다.’라고 선언한다. 참으로, 빠삐만뜨여, 여래는 제자들에게 법을 설할 때도 법을 설하지 않을 때도 그러하다[정등각]. 참으로, 여래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가르치지 않을 때도 그러하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빠삐만뜨여, 여래에게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보(報)가 괴로움인 번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12. 마라를 극복함 ― 마라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