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goliyānisuttaṃ (MN 69-골리야니 경)
2. bhikkhuvaggo, 9. goliyānisuttaṃ (MN 69-골리야니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은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기르는 곳에 머물렀다. 그때 화합하지 못하는 골리야니라는 이름의 숲에 사는 비구가 무언가 할 일이 있어서 상가 가운데에 들어왔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골리야니 비구에 대하여 비구들에게 말했다. ―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존경하고 공손해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존경하지 않고 공손하지 않으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존경하지 않고 공손하지 않은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존경하고 공손해야 합니다.
• āraññiko bhikkhu의 용례 ― paṭhamānāgatabhayasuttaṃ (AN 5.77-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경1)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이렇게 장로 비구의 자리를 차지하여 앉지 않을 것이고, 신진 비구를 자리로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리에 능숙해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 자리에 능숙하지 않으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자리에 능숙하지 않은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자리에 능숙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바른 행실의 법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 바른 행실의 법을 모르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바른 행실의 법을 모르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바른 행실의 법을 알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너무 일찍 마을에 들어가지 말고 너무 늦게 돌아오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 너무 일찍 마을에 들어가고 너무 늦게 돌아오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너무 일찍 마을에 들어가고 너무 늦게 돌아오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너무 일찍 마을에 들어가지 말고 너무 늦게 돌아오지 않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식전이나 식후에 가정집을 방문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 식전이나 식후에 가정집을 방문하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식전이나 식후에 가정집을 방문하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식전이나 식후에 가정집을 방문하지 않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거만하지 않고 변덕스럽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 거만하고 변덕스러우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거만하고 변덕스러운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거만하지 않고 변덕스럽지 않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수다스럽지 않고 허튼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 수다스럽고 허튼 말을 하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수다스럽고 허튼 말을 하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수다스럽지 않고 허튼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유연하고 좋은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 완고하고 나쁜 친구가 있으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완고하고 나쁜 친구가 있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는 유연하고 좋은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는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해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지 않으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지 않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는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는 음식의 적당량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음식의 적당량을 모르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음식의 적당량을 모르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는 음식의 적당량을 알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는 깨어있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깨어있음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깨어있음을 실천하지 않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는 깨어있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게으르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게으른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는 사띠를 확립해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사띠를 잊으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사띠를 잊은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는 사띠를 확립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는 삼매를 닦아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삼매를 닦지 않으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삼매를 닦지 않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는 삼매를 닦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가 어리석으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어리석은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머무는 비구는 법(法)에 대한 것들과 율(律)에 대한 것들을 공부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에게 법에 대한 것들과 율에 대한 것들을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도반들이여, 법에 대한 것들과 율에 대한 것들을 질문받은 숲에 사는 비구가 설명하지 못하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법에 대한 것들과 율에 대한 것들을 질문받고 설명하지 못하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는 법에 대한 것들과 율에 대한 것들을 공부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머무는 비구는 색(色)을 넘어선 무색(無色)의 평화로운 해탈 위에서 공부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에게 색을 넘어선 무색의 평화로운 해탈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도반들이여, 색을 넘어선 무색의 평화로운 해탈에 대해 질문받은 숲에 사는 비구가 설명하지 못하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색을 넘어선 무색의 평화로운 해탈에 대해 질문받고 설명하지 못하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는 색을 넘어선 무색의 평화로운 해탈 위에서 공부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머무는 비구는 인간을 넘어선 법들을 공부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숲에 사는 비구에게 인간을 넘어선 법들을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도반들이여, 인간을 넘어선 법들을 질문받은 숲에 사는 비구가 설명하지 못하면 그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혼자 숲에 머물면서 인간을 넘어선 법들을 질문받고 설명하지 못하는 이 존자에게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그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숲에 사는 비구는 인간을 넘어선 법들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사리뿟따 존자여, 숲에 사는 비구만이 이 법들을 받아들여 실천해야 합니까 아니면 마을 경계에 사는 비구도 그렇습니까?” “도반 목갈라나여, 숲에 사는 비구도 이 법들을 받아들여 실천해야 하는데 마을 경계에 사는 비구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goliyānisuttaṃ niṭṭhitaṃ navamaṃ.
아홉 번째 골리야니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