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adahasuttaṃ (MN 101-데와다하 경) ㅡ 요약
devadahasuttaṃ (MN 101-데와다하 경) ㅡ 요약
경은
「bhagavā etadavoca —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yaṃ kiñcāyaṃ purisapuggalo paṭisaṃvedeti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sabbaṃ taṃ pubbekatahetu.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āyatiṃ anavassavo;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kammakkhayā dukkhakkhayo; dukkhakkhayā vedanākkhayo;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evaṃvādino, bhikkhave, nigaṇṭh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ㅡ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ㅡ ‘사람이 락(樂)이거나 고(苦)거나 불고불락(不苦不樂)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이전에 행한 것이 원인이다. 이렇게 고행(苦行)으로 과거의 업(業)을 부수고, 새로운 업(業)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미래의 결과를 만들지 않으며, 미래의 결과를 만들지 않음으로부터 업(業)의 부숨이 있고, 업(業)의 부숨으로부터 고(苦)의 부숨이 있고, 고(苦)의 부숨으로부터 수(受)의 부숨이 있고, 수(受)의 부숨으로부터 모든 고(苦)의 부서짐이 있게 된다,’라고.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이렇게 말한다.」
라고 니간타들의 주장을 요약하면서
「그들이 예전에 존재 했는지 존재하지 않았는지, 이전에 악업(惡業)을 지었는지 악업(惡業)을 짓지 않았는지 알지 못하고, 이 고행(苦行)을 통해 악업(惡業)을 만들지 않았는지, 얼마만큼의 고(苦)가 부수어졌고, 얼마만큼의 고(苦)가 부수어져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고(苦)의 부서짐에서 모든 고(苦)의 부서짐이 있게 되는지, 지금여기에서의 불선법(不善法)들의 버림과 선법(善法)들의 구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멸(苦滅)을 위한 노력으로의 고행(苦行)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파합니다. ⇒ 「니간타들의 방법은 결실이 없고, 노력은 결실이 없다.」
이 과정에서 만약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독화살을 맞은 자가 의사의 도움으로 혹독한 치료과정을 통해서라도 독화살을 뽑아내고 치료함으로써 완치하여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타당한 것처럼, 비록 혹독한 고행일지라도 고멸(苦滅)을 위한 노력으로의 의미를 가질 것이겠지만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에 직접 대응하지 못하는 이런 노력은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경의 독화살의 비유는 이런 설명의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ㅡ 「①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독화살이라는 특정된 원인을 뽑아내고 치료하여 낫듯이 ②고(苦)를 결과 맺는 전생의 업들이 특정될 수 있다면 고행을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겠지만 ③전생에 존재했는지도 전생에 어떤 악업을 지었는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여기에서 경험되는 고(苦)의 원인은 특정되지 않고 ④지금의 고행을 통해 업(業)과 고(苦)가 얼마나 소멸하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⑤지금의 고행을 통해 불선법들이 얼마나 버려지고 선법들이 얼마나 구족되는지도 알지 못하는 현실에 의하면 ⑥니간타들의 방법으로 삶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⑦그러므로 니간타들의 방법은 결실이 없고, 노력은 결실이 없다.」
예를 들면 도반 니간타여, 어떤 사람이 독이 진하게 칠해진 화살에 맞았다면, 그는 화살을 맞은 것을 원인으로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가혹한 느낌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친구들과 동료들과 친척들과 인척들이 와서 그를 외과의사에게 치료받게 할 것입니다. 그 외과의사가 칼로 그 상처 부위를 도려낸다면, 그는 상처 부위를 도려내는 것을 원인으로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가혹한 느낌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 외과의사가 화살을 조사하면, 그는 화살을 조사하는 것을 원인으로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가혹한 느낌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 외과의사가 화살을 뽑으면, 그는 화살을 뽑는 것을 원인으로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가혹한 느낌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 외과의사가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면, 그는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는 것을 원인으로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가혹한 느낌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상처 부위에 새살이 돋아나면, 건강하고 행복하고 자유롭고 자재하여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와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ㅡ ‘예전에 나는 독이 진하게 칠해진 화살에 맞았다. 나는 화살을 맞은 것을 원인으로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가혹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래서 나의 친구들과 동료들과 친척들과 인척들이 와서 나를 외과의사에게 치료받게 했다. 그 외과의사가 칼로 그 상처 부위를 도려냈는데, 나는 상처 부위를 도려내는 것을 원인으로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가혹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 외과의사가 화살을 조사했는데, 나는 화살을 조사하는 것을 원인으로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가혹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 외과의사가 화살을 뽑았는데, 나는 화살을 뽑는 것을 원인으로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가혹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 외과의사가 상처 부위에 약을 발랐는데, 나는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는 것을 원인으로 고통스럽고 예리하고 가혹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처 부위에 새살이 돋아났는데, 건강하고 행복하고 자유롭고 자재하여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다.’라고.
여기에 비해 「부처님의 방법은 결실이 있고 노력은 결실이 있다.」고 설해집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방법은 결실이 있고 노력은 결실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묶이지 않은 자신을 괴로움에 의해 묶이게 하지 않고 가르침의 실천에서 생기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 그 즐거움에서 얼이 빠진 자도 아니 대해 기울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ㅡ ‘내가 이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행(行)으로 애쓸 때에, 행(行)으로 애씀으로부터 빛바랜다. 내가 이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관찰할 때에 평정의 닦음으로부터 빛바랜다.’라고. 그는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행(行)으로 애쓸 때에, 행(行)으로 애씀으로부터 빛바래는 거기서 행(行)으로 애쓰고, 괴로움의 원인에 대하여 관찰할 때에, 평정의 닦음을 통해 빛바래는 거기서 평정을 닦는다. 거듭거듭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행(行)으로 애쓸 때에, 행(行)으로 애씀으로부터 빛바랜다. ㅡ 이렇게도 그에게 괴로움을 부숨이 있다. 거듭거듭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관찰할 때에 평정의 닦음으로부터 빛바랜다. ㅡ 이렇게도 그에게 괴로움을 부숨이 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여자에게 친밀하고 심(心)이 묶였고 강한 관심과 강한 기대를 가진 남자가 있다, 그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 대화하고 농담하고 웃고 있는 그 여자를 볼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 대화하고 농담하고 웃고 있는 그 여자를 보고서 그 남자에게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인가?” “대덕이시여, 참으로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친밀하고 심(心)이 묶였고 강한 관심과 강한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 대화하고 농담하고 웃고 있는 그 여자를 보고서 그에게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비구들이여, 그 남자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ㅡ ‘나는 그 여자에게 친밀하고 심(心)이 묶였고 강한 관심과 강한 기대를 가졌다. 그런 나에게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 대화하고 농담하고 웃고 있는 그 여자를 보고서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긴다. 나는 그 여자에 대한 나의 욕탐(欲貪)을 버려야겠다.’라고. 그는 그 여자에 대한 욕탐(欲貪)을 버릴 것이다. 그가 나중에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 대화하고 농담하고 웃고 있는 그 여자를 볼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 대화하고 농담하고 웃고 있는 그 여자를 보고서 그 남자에게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기지 않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인가?” “대덕이시여, 참으로 그 남자는 그 여자에 대해 바랬습니다. 그래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 대화하고 농담하고 웃고 있는 그 여자를 보고서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묶이지 않은 자신을 괴로움에 의해 묶이게 하지 않고 가르침의 실천에서 생기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 그 즐거움에서 얼이 빠진 자도 아니 대해 기울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ㅡ ‘내가 이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행(行)으로 애쓸 때에, 행(行)으로 애씀으로부터 빛바랜다. 내가 이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관찰할 때에 평정의 닦음으로부터 빛바랜다.’라고. 그는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행(行)으로 애쓸 때에, 행(行)으로 애씀으로부터 빛바래는 거기서 행(行)으로 애쓰고, 괴로움의 원인에 대하여 관찰할 때에, 평정의 닦음을 통해 빛바래는 거기서 평정을 닦는다. 거듭거듭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행(行)으로 애쓸 때에, 행(行)으로 애씀으로부터 빛바랜다. ㅡ 이렇게도 그에게 괴로움을 부숨이 있다. 거듭거듭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관찰할 때에 평정의 닦음으로부터 빛바랜다. ㅡ 이렇게도 그에게 괴로움을 부숨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방법은 결실이 있고 노력은 결실이 있다.
비구들이여, 또한 비구가 이렇게 숙고한다. ㅡ ‘내가 즐겁게 머물 때 불선법(不善法)들은 늘어나고 선법(善法)들은 버려진다. 내가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쓰면, 불선법들은 버려지고 선법들은 늘어난다. 참으로 나는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써야겠다.’라고. 그는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쓴다.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쓰는 그에게 불선법들은 버려지고 선법들은 늘어난다. 그는 나중에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쓰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 비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써야겠다는 그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방법은 결실이 있고 노력은 결실이 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화살 기술자가 두 불꽃 사이에 화살촉을 가열하고 달구어 사용할 수 있도록 곧게 만든다. 비구들이여, 화살 기술자가 두 불꽃 사이에 화살촉을 가열하고 달구어 사용할 수 있도록 곧게 만들면, 나중에 화살 기술자는 두 불꽃 사이에 화살촉을 가열하고 달구어 사용할 수 있도록 곧게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화살 기술자가 두 불꽃 사이에 화살촉을 가열하고 달구어 사용할 수 있도록 곧게 만든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화살 기술자는 두 불꽃 사이에 화살촉을 가열하고 달구어 사용할 수 있도록 곧게 만들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ㅡ ‘내가 즐겁게 머물 때 불선법(不善法)들은 늘어나고 선법(善法)들은 버려진다. 내가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쓰면, 불선법들은 버려지고 선법들은 늘어난다. 참으로 나는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써야겠다.’라고. 그는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쓴다.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쓰는 그에게 불선법들은 버려지고 선법들은 늘어난다. 그는 나중에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쓰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 비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써야겠다는 그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스스로 괴로움에 대해 애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방법은 결실이 있고 노력은 결실이 있다.
경은 이어서 부처님의 방법을 설명하는데, 여래의 출현으로부터 사선(四禪)-삼명(三明)에 의한 깨달음의 과정입니다, → 「사문과경(沙門果經)의 수행체계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