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01. 데와다하 경[니간타(과거 중심)와 불교(현재 중심)](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01. 데와다하 경[니간타(과거 중심)와 불교(현재 중심)](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30712)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uJBL2rSEN0
「락이든 고든 불고불락이든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이전에 행해진 것이 원인이다. 이렇게 이전의 업들은 고행으로 부수고,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 업의 부서짐이 있고, 업의 부서짐에서 고의 부서짐이 있다. 고의 부서짐에서 수의 부서짐이 있고, 수의 부서짐에서 일체 고의 다함이 있게 된다.」라고 니간타는 과거에 중심을 둔 고멸의 길을 주장하는데, 불교로 치면 중도 곧 팔정도에 해당하는 교리입니다. 부처님은 고멸의 길에 선행하는 삶의 해석[불교로 치면 연기]을 질문하는 등의 방법으로 니간타의 방법과 노력은 결실이 없음을 밝힌 뒤 현재에 중심을 둔 결실이 있는 방법과 노력을 설명합니다.
1. 니간타의 주장 ― 「락(樂)이든 고(苦)든 불고불락(不苦不樂)이든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이전에 행해진 것이 원인이다. 이렇게 이전의 업들은 고행으로 부수고,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 업의 부서짐이 있고, 업의 부서짐에서 고(苦)의 부서짐이 있다. 고(苦)의 부서짐에서 수(受)의 부서짐이 있고, 수(受)의 부서짐에서 일체 고(苦)의 다함이 있게 된다.」
; 고멸(苦滅)의 길 → 불교로 치면 중도(中道) 곧 팔정도(八正道)
※ (AN 3.62-근본 교리 등 경)의 삼종외도(三種外道) ― 사람이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①전생의 행위-②창조주의 창조가 원인이다. ③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무인무연(無因無緣)].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5_07&wr_id=1
2. 부처님의 논파① ― ‘압니까?’
1) 니간타들에게 “‘우리는 이전에 존재했다거나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우리는 이전에 악업(惡業)을 지었다거나 짓지 않았다.’라고, ‘우리는 이러저러한 악업(惡業)을 지었다.’라고, ‘이만큼의 고(苦)는 다했다거나, 이만큼의 고(苦)는 다해야 한다거나, 이만큼의 고(苦)가 다할 때 모든 고(苦)가 다할 것이다.’라고, ‘지금여기에서 불선법(不善法)이 버려지고 선법(善法)이 성취되는 것을 압니까?”라고 질문하고, 니간타들은 아니라고 대답함.
→ 니간타들이 이런 주제들을 안다면 주장이 적절하겠지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적절함.
; 불교의 중도(中道) 곧 팔정도(八正道)는 선행하는 연기(緣起)에 의해 삶이 잘 해석되어 알려짐. 그래서 팔정도의 실천은 바르게 고멸(苦滅)로 이끎. 그러나 니간타들은 고멸의 길에 선행하는 삶이 해석되지 않아 질문에 모른다고 답함. 그래서 바르게 고멸로 이끌지 못함. ― 이 경의 중심 주제임.
→ 독화살의 비유 ⇒ ▣ 주제의 확장 ― (63)「독화살의 비유」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139
2) 니간타들의 반발 ― 스승에 대한 공감-동의-신뢰로써 받아들인 것 ― ‘도반이여,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는 니간타 나따뿟따는 ‘나에게는 걸을 때도 서 있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항상 계속해서 앎과 봄이 나타난다.’라고 완전한 앎과 봄을 선언합니다. 그는 ‘니간타들이여, 이전에 그대들이 지은 악업이 있다. 그것을 이 심하고 행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부숴야 한다. 또한, 이제 여기서 신(身)으로 단속하고 구(口)로 단속하고 의(意)로 단속하는 것이 미래의 악업을 짓지 않는다. 이렇게 이전의 업들은 고행으로 부수고,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 업의 부서짐이 있고, 업의 부서짐에서 고(苦)의 부서짐이 있다. 고(苦)의 부서짐에서 수(受)의 부서짐이 있고, 수(受)의 부서짐에서 일체 고(苦)의 다함이 있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찬성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 주제의 확장 ― (60)「니까야에 나타나는 니간타의 용례」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129
▣ 주제의 확장 ― (60-1)「남김 없는 앎과 봄[전지(全知)]의 측면 ― 전지(全知)의 실제성」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180
3. 부처님의 논파② ― ‘가능합니까?’
1) 지금여기에서 두 가지 보(報)가 있는 법들
지금여기에서 두 가지 보(報)가 있는 다섯 가지 법들(믿음, 성향, 소문, 떠오름의 출현, 견해와 통찰의 지속) ― 찬성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 기준이 될 수 없음 → 바른 스승[정등각(正等覺)] 아닌 자(*)의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 노력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없음
(*) 경은 니간타 나타뿟따를 과거에 중심을 둔 스승이라고 표현함. 여기에 비해 불교는 현재에 중심을 둔 가르침인데, (SN 36.21-시와까 경)을 참고할 수 있음.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02&wr_id=1
• (MN 95-짱끼 경) ‘진리의 보호’ 참조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0_05&wr_id=2
→ 힘든 방법으로 힘든 노력을 할 때 힘든 노력에서 생긴 괴롭고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느낌이 경험되고, 힘든 방법으로 힘든 노력을 하지 않을 때 힘든 노력에서 생긴 괴롭고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느낌이 경험되지 않음
; 고행으로 이전의 업이 부서진다면, 힘든 방법으로 힘든 노력을 할 때 고통스러운 느낌이 부서져 경험되지 않아야 함.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으므로 ‘고행으로 이전의 업을 부수고,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고(苦)가 부서진다.’라는 논리는 사실이 어긋남
; 이럴 때 「락(樂)이든 고(苦)든 불고불락(不苦不樂)이든 … 수(受)의 부서짐에서 일체 고(苦)의 다함이 있게 된다.」는 설명은 부적절함
→ 힘든 방법으로 힘든 노력을 할 때 힘든 노력에서 생긴 괴롭고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느낌이 경험되지 않고, 그대들이 힘든 방법으로 힘든 노력을 하지 않을 때 힘든 노력에서 생긴 괴롭고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느낌이 경험된다면, 이 논리가 사실에 부합할 것
; 이럴 때 「락(樂)이든 고(苦)든 불고불락(不苦不樂)이든 … 수(受)의 부서짐에서 일체 고(苦)의 다함이 있게 된다.」는 설명은 적절할 것
→ 힘든 노력 자체에서 생긴 괴롭고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경험하고 있는 니간타들은 ‘락(樂)이든 고(苦)든 불고불락(不苦不樂)이든 … 수(受)의 부서짐에서 일체 고(苦)의 다함이 있게 된다.’라고 무명(無明)과 무지(無知)와 혼란스러움을 익게 함
2) 업(業)의 보(報)의 바꿈 ― ‘가능합니까?’
니간타들에게 “‘지금여기에서 경험해야 하는 업을 방법이나 노력에 의해 다음 생에서 경험하게 하는 것’ ‘다음 생에서 경험해야 하는 업을 방법이나 노력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경험하게 하는 것’ ‘즐거움이 경험될 업을 방법이나 노력에 의해 괴로움이 경험되게 하는 것’ ‘괴로움이 경험될 업을 방법이나 노력에 의해 즐거움이 경험되게 하는 것’ ‘이미 성숙하여 경험되어야 하는 업을 방법이나 노력에 의해 이미 성숙하여 경험되어야 하지 않게 하는 것’ ‘이미 성숙하여 경험될 업이 아닌 것을 방법이나 노력에 의해 이미 성숙하여 경험되게 하는 것’ ‘많이 경험될 업을 방법이나 노력에 의해 조금 경험되게 하는 것’ ‘조금 경험될 업을 방법이나 노력에 의해 많이 경험되게 하는 것’ ‘경험될 업을 방법이나 노력에 의해 경험되지 않게 하는 것’ ‘경험되지 않을 업을 방법이나 노력에 의해 경험되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까?’라고 질문하고, 니간타들은 아니라고 대답함.
→ 이럴 때 니간타 존자들에게 방법은 결실이 없고, 노력은 결실이 없음
4. 이런 주장을 하는 니간타들에게 법다운 말들에 의해 열 가지로 비난의 이유가 생김
1) 지금 이렇게 괴롭고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경험하는 니간타들
① 중생들이 이전에 행해진 것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면, 이전에 나쁜 업을 지은 자들
② 중생들이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면, 지금 이렇게 괴롭고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경험하는 니간타들은 악한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자들
③ 중생들이 결합의 상태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면, 지금 이렇게 괴롭고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경험하는 니간타들은 나쁘게 결합 된 자들
④ 중생들이 출생[종(種)]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면, 출생[종(種)]이 나쁜 자들
⑤ 중생들이 지금여기의 방법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면, 이런[괴롭고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경험하게 하는] 지금여기의 방법을 가진 자들이다.
2) 니간타들은 비난받아야 함
⑥ 중생들이 이전에 행해진 것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⑦ 중생들이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⑧ 중생들이 결합의 상태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⑨ 중생들이 출생[종(種)]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⑩ 중생들이 지금여기의 방법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 이런 주장을 하는 니간타들에게 법다운 말들에 의해 이런 열 가지로 비난의 이유가 생김
→ 니간타의 방법은 결실이 없고, 노력은 결실이 없음
5. 어떻게 방법은 결실이 있고 노력은 결실이 있는가? ― 「이렇게도 방법은 결실이 있고, 노력은 결실이 있다.」
1) 묶이지 않은 자신을 괴로움에 의해 묶이게 하지 않고, 법다운(가르침의 실천에서 생기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 그 즐거움에 대해 기울지 않음
• 괴로움의 인연을 위해 행(行)으로 거듭 노력할 때 행(行)의 노력으로부터 바래는 이런 방법으로도 괴로움은 다함
• 괴로움의 인연을 위해 거듭 주의 깊게 관찰하고 평정을 닦을 때 바래는 이런 방법으로도 괴로움은 다함
; 여자에게 친밀하고 심(心)이 묶였고 강한 관심과 강한 기대를 가진 남자의 비유
2) ‘괴로움(의 극복)을 위해 자신에게 노력한다. 괴로움(의 극복)을 위해 자신에게 노력하는 그에게 불선법들은 줄어들고 선법들은 늘어난다. 나중에 그는 괴로움(의 극복)을 위해 자신에게 노력하지 않는다.’ ― 어떤 목적에서 괴로움(의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했던 그 목적이 달성되었기 때문
3) 여래의 출현으로부터 사선(四禪)-삼명(三明)에 의한 깨달음
6. 이런 주장을 하는 여래에게 법다움에 의한 열 가지 칭찬의 이유가 생김
1) 지금 이렇게 번뇌 없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는 여래
① 중생들이 이전에 행해진 것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면, 이전에 좋은 업을 지은 자
② 중생들이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면, 훌륭한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자
③ 중생들이 결합의 상태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면, 유익하게 결합 된 자
④ 중생들이 출생[종(種)]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면, 출생[종(種)]이 좋은 자
⑤ 지금여기의 방법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면, 지금여기에서 유익한 방법을 가진 자
2) 여래는 칭찬받아야 함
⑥ 중생들이 이전에 행해진 것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⑦ 중생들이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⑧ 중생들이 결합의 상태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⑨ 중생들이 출생[종(種)]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⑩ 중생들이 지금여기의 방법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 이런 주장을 하는 여래에게 법다움에 의해 이런 열 가지 칭찬의 이유가 생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