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uddesavibhaṅgasuttaṃ (MN 138-대강의 분석 경) ― 밖으로 흩어짐과 안으로 멈춤
4. vibhaṅgavaggo, 8. uddesavibhaṅgasuttaṃ (MN 138-대강의 분석 경) ― 밖으로 흩어짐과 안으로 멈춤
도반들이여, 어떻게 ‘밖으로 흩어지고 산란한 식(識)’이라고 불립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가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색상(色相)을 따라가서 색상의 매력에 묶이고, 색상의 매력에 속박되고, 색상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입니다. 이것이 ‘밖으로 흩어지고 산란한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느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알면서 법상(法相)을 따라가서 법상의 매력에 묶이고, 법상의 매력에 속박되고, 법상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입니다. 이것이 ‘밖으로 흩어지고 산란한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밖으로 흩어지고 산란한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도반들이여, 어떻게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산란하지 않은 식(識)’이라고 불립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가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색상(色相)을 따라가지 않아서 색상의 매력에 묶이지 않고, 색상의 매력에 속박되지 않고, 색상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산란하지 않은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느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알면서 법상(法相)을 따라가지 않아서 법상의 매력에 묶이지 않고, 법상의 매력에 속박되지 않고, 법상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산란하지 않은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산란하지 않은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도반들이여, 어떻게 ‘안으로 멈춤’이라고 불립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가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의 식이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을 따라가서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에 묶이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에 속박되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입니다. 이것이 ‘안으로 멈춘 심(心)’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가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의 식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을 따라가서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에 묶이고,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에 속박되고,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입니다. 이것이 ‘안으로 멈춘 심(心)’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가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가지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의 식이 평정을 따라가서 평정의 행복의 매력에 묶이고, 평정의 행복의 매력에 속박되고, 평정의 행복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입니다. 이것이 ‘안으로 멈춘 심(心)’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가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의 식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따라가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매력에 묶이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매력에 속박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입니다. 이것이 ‘안으로 멈춘 심(心)’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안으로 멈춤’이라고 불립니다.
도반들이여, 어떻게 ‘안으로 멈추지 않음’이라고 불립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가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의 식이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을 따라가지 않아서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에 묶이지 않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에 속박되지 않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안으로 멈추지 않은 심(心)’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가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의 식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을 따라가지 않아서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에 묶이지 않고,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에 속박되지 않고,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안으로 멈추지 않은 심(心)’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가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가지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의 식이 평정을 따라가지 않아서 평정의 행복의 매력에 묶이지 않고, 평정의 행복의 매력에 속박되지 않고, 평정의 행복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안으로 멈추지 않은 심(心)’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가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의 식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따라가지 않아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매력에 묶이지 않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매력에 속박되지 않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매력이라는 족쇄에 채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안으로 멈추지 않은 심(心)’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안으로 멈추지 않음’이라고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