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nandakovādasuttaṃ (MN146-난다까의 가르침 경)
5. saḷāyatanavaggo, 4. nandakovādasuttaṃ (MN146-난다까의 가르침 경)
229. ... bhikkhunovādakānaṃ yadidaṃ nandako. catutthavaggo (AN 1.219-234)
비구들이여, 나의 비구 제자 가운데 비구니를 지도하는 측면에서 으뜸은 난다까이다.
• (MN 146-난다까의 가르침 경)/(AN 3.67-살하 경)/(AN 9.4-난다까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오백 명의 비구니들과 함께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니들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니들을 교육해주십시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니들에게 설법해주십시오.”라고.
그런데 그때 장로 비구들은 순서대로 비구니들을 가르쳤다. 난다까 존자는 순서대로 비구니들을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세존은 아난다 존자에게 말했다. ― “아난다여, 순서대로 비구니들을 가르치기 위한 오늘 순서는 누구인가?”라고. “대덕이시여, 순서대로 비구니들을 가르치기 위한 순서대로 모두 가르쳤습니다. 대덕이시여, 난다까 존자는 순서대로 비구니들을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세존은 난다까 존자에게 말했다. ― “난다까여, 비구니들을 가르치라. 난다까여, 비구니들을 교육하라. 바라문이여, 그대는 비구니들에게 설법하라.”라고.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난다까 존자는 세존에게 대답한 뒤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서 탁발을 위해 사왓티에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탁발을 위해 돌아다닌 뒤 오후에 탁발에서 돌아온 뒤 다른 한 사람과 함께 라자까라마로 갔다. 그 비구니들이 난다까 존자가 멀리서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 자리를 준비하고, 발 씻을 물을 마련했다. 난다까 존자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발을 씻었다. 그 비구니들도 난다까 존자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니들에게 난다까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 “자매들이여, 질문을 받으며 말하겠습니다(*). 거기서 아는 사람은 ‘우리는 압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뜻을 모르거나 불확실하거나 의심이 있으면 나에게 ‘어떻게 이렇습니까, 대덕이시여,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으십시오.”라고. “난다까 존자께서 저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신 때문에도, 대덕이시여, 저희는 난다까 존자 덕분에 즐겁고 기쁩니다.”
(*) paṭipucchakathā ― paṭipuccha-kathā 질문을 받으며 진행하는 대화
paṭipucchā: a question in return. (f.)
kathā: speech; story; talk. (f.)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안(眼)은 상(常)합니까, 무상(無常)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苦)입니까, 락(樂)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이(耳)는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비(鼻)는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설(舌)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신(身)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의(意)는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입니까, 락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의 원인의 무엇입니까?” “대덕이시여, 이전에 저희는 이것을 ‘이렇게 육내입처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았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자매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타당함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색(色)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입니까, 락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성(聲)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향(香)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미(味)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촉(觸)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법(法)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입니까, 락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의 원인의 무엇입니까?” “대덕이시여, 이전에 저희는 이것을 ‘이렇게 육외입처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았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자매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타당함이 있습니다.”
• cha viññāṇakāyā ― cakkhuviññāṇaṃ, sotaviññāṇaṃ, ghānaviññāṇaṃ, jivhāviññāṇaṃ, kāyaviññāṇaṃ, manoviññāṇaṃ (DN 33.9-합송경, 여섯으로 구성된 법들) → 육식신(六識身)으로 번역하지 않기!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안식(眼識)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입니까, 락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이식(耳識)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비식(鼻識)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설식(舌識)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신식(身識)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의식(意識)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입니까, 락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의 원인의 무엇입니까?” “대덕이시여, 이전에 저희는 이것을 ‘이렇게 육식(六識)의 무리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았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자매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타당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매들이여, 기름 등불이 타고 있을 때 기름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심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불꽃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빛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자매들이여, 어떤 사람이 ‘이러저러한 기름 등불이 타고 있을 때 기름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심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불꽃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지만 빛은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자매들이여, 그는 바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대덕이시여, 이러저러한 기름 등불이 타고 있을 때 기름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심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불꽃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빛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매들이여, 어떤 사람이 ‘이런 육내입처는 무상하다. 그러나 육내입처를 연하여 경험되는 락(樂)이나 고(苦)나 불고불락(不苦不樂)은 상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바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대덕이시여, 이러이러한 조건을 연하여 이러이러한 수가 생기고, 이러이러한 조건이 소멸할 때 이러이러한 수가 소멸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자매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타당함이 있습니다.”
(*) 타고 있는 기름 등불을 구성하는 것 = 기름-심지-불꽃 → 거기서 생겨나는 것 = 빛
“예를 들면, 자매들이여,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뿌리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줄기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가지와 잎사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그늘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자매들이여, 어떤 사람이 ‘이러저러한 심재를 가진 큰 나무가 서 있을 때 뿌리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줄기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가지와 잎사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지만 그늘은 상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자매들이여, 그는 바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대덕이시여, 이러저러한 심재를 가진 큰 나무가 서 있을 때 뿌리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줄기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가지와 잎사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늘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매들이여, 어떤 사람이 ‘이런 육외입처는 무상하다. 그러나 육외입처를 연하여 경험되는 락이나 고나 불고불락은 상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바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대덕이시여, 이러이러한 조건을 연하여 이러이러한 수가 생기고, 이러이러한 조건이 소멸할 때 이러이러한 수가 소멸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자매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타당함이 있습니다.”
(*) 큰 나무를 구성하는 것 = 뿌리-줄기-가지와 잎사귀 → 거기서 생겨나는 것 = 그늘
“예를 들면, 자매들이여, 능숙한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가 소를 잡은 뒤에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소를 안의 고기 무더기에 흠을 내지 않고 밖의 가죽 무더기에 흠을 내지 않고 해체할 것입니다. 거기서 안의 근육과 안의 힘줄과 안의 인대를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자르고 해체하고 가르고 베어낼 것입니다. 그가 자르고 해체하고 가르고 베어내고 밖의 가죽 무더기를 벗겨낸 뒤에 그 가죽으로 소를 덮고서 ‘그대로 이 소는 이 가죽으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한다면, 자매들이여, 그는 바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대덕이시여, 어떤 능숙한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가 소를 잡은 뒤에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소를 안의 고기 무더기에 흠을 내지 않고 밖의 가죽 무더기에 흠을 내지 않고 해체할 것입니다. 거기서 안의 근육과 안의 힘줄과 안의 인대를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자르고 해체하고 가르고 베어낼 것입니다. 그가 자르고 해체하고 가르고 베어내고 밖의 가죽 무더기를 벗겨낸 뒤에 그 가죽으로 소를 덮고서 ‘그대로 이 소는 이 가죽으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해도 그 소는 가죽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습니다.”
”자매들이여, 이 비유는 뜻을 알게 하기 위해서 내가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이것이 그 뜻입니다. ‘안의 고기 무더기’는, 자매들이여, 이 육내입처를 지시하고, ‘밖의 가죽 무더기’는, 자매들이여, 이 육외입처를 지시하고, ‘안의 근육과 안의 힘줄과 안의 인대’는, 자매들이여, 이 소망과 탐을 지시하고, ‘날카로운 소 잡는 칼’은 자매들이여, 이 성스러운 지혜를 지시합니다. 이 성스러운 지혜는 내면의 오염원과 내면의 족쇄와 내면의 속박을 자르고 해체하고 가르고 베어냅니다.
• 내입처와 외입처를 묶어주는 것 = 소망과 탐 = 애(愛) → 혜(慧)의 칼에 의해서는 내입처와 외입처에 흠을 내지 않고 오직 소망과 탐 즉 애(愛)와의 연결만 끊어냄
⇒ 혜(慧)의 역할 ― 공동주관인 욕탐(欲貪)의 제어
; 소망과 탐을 끊어냄 즉 애멸(愛滅)을 통해 내입처의 흠인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하지 않고, 외입처의 흠인 상(相-nimitta)를 만들지 않음
자매들이여, 칠각지(七覺支-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함으로부터 비구는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어떤 일곱 가지입니까? 여기 자매들이여, 비구는 떨침의 과정이고 이탐의 과정이고 소멸의 과정이고 쉼으로 귀결되는 염각지를 닦습니다. … 택법각지를 닦습니다 … 정진각지를 닦습니다 … 희각지를 닦습니다 … 경안각지를 닦습니다 … 정각지를 닦습니다 … 떨침의 과정이고 이탐의 과정이고 소멸의 과정이고 쉼으로 귀결되는 사각지를 닦습니다. 이것이, 자매들이여, 닦고 많이 행함으로부터 비구는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칠각지입니다.”라고.
난다까 존자는 그 비구니들을 이렇게 가르친 뒤에 “때가 되었습니다. 자매들은 돌아가십시오.”라고 돌려보냈다. 그러자 그 비구니들은 난다까 존자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난다까 존자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에 세존에게 갔다. 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그 비구니들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때가 되었으니 비구니들은 돌아가라.”라고. 그러자 비구니들은 세존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에 돌아갔다. 세존은 그 비구니들이 돌아가고 오래지 않아서 비구들에게 말했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14일의 포살(*)에서 많은 사람은 ‘달이 아직 차지 않았는가? 달이 가득 찼는가?’라고 불확실해 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달은 아직 차지 않았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그 비구니들은 난다까의 설법이 즐겁지만, 목적한 만큼 채워지지는 않았다.”라고.
(*) 이 경이 유일한 용례
그래서 세존은 난다까 존자에게 말했다. ― “그러므로 난다까여, 그대는 내일도 그 비구니들에게 그 가르침으로 가르치라”라고.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난다까 존자는 세존에게 대답했다. 난다까 존자는 그 밤이 지난 뒤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서 탁발을 위해 사왓티에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탁발을 위해 돌아다닌 뒤 오후에 탁발에서 돌아온 뒤 다른 한 사람과 함께 라자까라마로 갔다. 그 비구니들이 난다까 존자가 멀리서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 자리를 준비하고, 발 씻을 물을 마련했다. 난다까 존자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발을 씻었다. 그 비구니들도 난다까 존자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니들에게 난다까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 “자매들이여, 질문을 받으며 말하겠습니다. 거기서 아는 사람은 ‘우리는 압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뜻을 모르거나 불확실하거나 의심이 있으면 나에게 ‘어떻게 이렇습니까, 대덕이시여,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으십시오.”라고. “난다까 존자께서 저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신 때문에도, 대덕이시여, 저희는 난다까 존자 덕분에 즐겁고 기쁩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안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입니까, 락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이는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비는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신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의는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입니까, 락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의 원인의 무엇입니까?” “대덕이시여, 이전에 저희는 이것을 ‘이렇게 육내입처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았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자매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타당함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색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입니까, 락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성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향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미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촉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법들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입니까, 락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의 원인의 무엇입니까?” “대덕이시여, 이전에 저희는 이것을 ‘이렇게 육외입처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았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자매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타당함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안식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입니까, 락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매들이여, 이식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비식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설식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신식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의식은 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무상한 것은 고입니까, 락입니까?”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의 원인의 무엇입니까?” “대덕이시여, 이전에 저희는 이것을 ‘이렇게 육식의 무리는 무상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았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자매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타당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매들이여, 기름 등불이 타고 있을 때 기름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심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불꽃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빛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자매들이여, 어떤 사람이 ‘이러저러한 기름 등불이 타고 있을 때 기름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심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불꽃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지만 빛은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자매들이여, 그는 바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대덕이시여, 이러저러한 기름 등불이 타고 있을 때 기름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심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불꽃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빛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매들이여, 어떤 사람이 ‘이런 육내입처는 무상하다. 그러나 육내입처를 연하여 경험되는 락이나 고나 불고불락은 상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바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대덕이시여, 이러이러한 조건을 연하여 이러이러한 수가 생기고, 이러이러한 조건이 소멸할 때 이러이러한 수가 소멸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자매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타당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매들이여,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뿌리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줄기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가지와 잎사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그늘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자매들이여, 어떤 사람이 ‘이러저러한 심재를 가진 큰 나무가 서 있을 때 뿌리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줄기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가지와 잎사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지만 그늘은 상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자매들이여, 그는 바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대덕이시여, 이러저러한 심재를 가진 큰 나무가 서 있을 때 뿌리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줄기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고, 가지와 잎사귀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늘도 무상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매들이여, 어떤 사람이 ‘이런 육외입처는 무상하다. 그러나 육외입처를 연하여 경험되는 락이나 고나 불고불락은 상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바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대덕이시여, 이러이러한 조건을 연하여 이러이러한 수가 생기고, 이러이러한 조건이 소멸할 때 이러이러한 수가 소멸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자매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타당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매들이여, 능숙한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가 소를 잡은 뒤에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소를 안의 고기 무더기에 흠을 내지 않고 밖의 가죽 무더기에 흠을 내지 않고 해체할 것입니다. 거기서 안의 근육과 안의 힘줄과 안의 인대를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자르고 해체하고 가르고 베어낼 것입니다. 그가 자르고 해체하고 가르고 베어내고 밖의 가죽 무더기를 벗겨낸 뒤에 그 가죽으로 소를 덮고서 ‘그대로 이 소는 이 가죽으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한다면, 자매들이여, 그는 바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대덕이시여, 어떤 능숙한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가 소를 잡은 뒤에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소를 안의 고기 무더기에 흠을 내지 않고 밖의 가죽 무더기에 흠을 내지 않고 해체할 것입니다. 거기서 안의 근육과 안의 힘줄과 안의 인대를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자르고 해체하고 가르고 베어낼 것입니다. 그가 자르고 해체하고 가르고 베어내고 밖의 가죽 무더기를 벗겨낸 뒤에 그 가죽으로 소를 덮고서 ‘그대로 이 소는 이 가죽으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해도 그 소는 가죽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습니다.”
”자매들이여, 이 비유는 뜻을 알게 하기 위해서 내가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이것이 그 뜻입니다. ‘안의 고기 무더기’는, 자매들이여, 이 육내입처를 지시하고, ‘밖의 가죽 무더기’는, 자매들이여, 이 육외입처를 지시하고, ‘안의 근육과 안의 힘줄과 안의 인대’는, 자매들이여, 이 소망과 탐을 지시하고, ‘날카로운 소 잡는 칼’은 자매들이여, 이 성스러운 지혜를 지시합니다. 이 성스러운 지혜는 내면의 오염원과 내면의 족쇄와 내면의 속박을 자르고 해체하고 가르고 베어냅니다.
자매들이여, 칠각지를 닦고 많이 행함으로부터 비구는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어떤 일곱 가지입니까? 여기 자매들이여, 비구는 떨침의 과정이고 이탐의 과정이고 소멸의 과정이고 쉼으로 귀결되는 염각지를 닦습니다. … 택법각지를 닦습니다 … 정진각지를 닦습니다 … 희각지를 닦습니다 … 경안각지를 닦습니다 … 정각지를 닦습니다 … 떨침의 과정이고 이탐의 과정이고 소멸의 과정이고 쉼으로 귀결되는 사각지를 닦습니다. 이것이, 자매들이여, 닦고 많이 행함으로부터 비구는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칠각지입니다.”라고.
난다까 존자는 그 비구니들을 이렇게 가르친 뒤에 “때가 되었습니다. 자매들은 돌아가십시오.”라고 돌려보냈다. 그러자 그 비구니들은 난다까 존자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난다까 존자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에 세존에게 갔다. 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그 비구니들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때가 되었으니 비구니들은 돌아가라.”라고. 그러자 비구니들은 세존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에 돌아갔다. 세존은 그 비구니들이 돌아가고 오래지 않아서 비구들에게 말했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15일의 포살에서 많은 사람은 ‘달이 아직 차지 않았는가? 달이 가득 찼는가?’라고 불확실해 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달은 오직 가득 찼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그 비구니들은 난다까의 설법이 즐겁고 또 목적한 만큼 채워졌다. 비구들이여, 그 오백 명의 비구니 가운데 가장 낮은 비구니가 예류자여서 떨어지지 않는 자, 확실한 자, 깨달음을 겨냥한 자이다.”라고.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
번역하신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