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49. 육처에 속한 큰 경[알고 보지 못하는 자와 알고 보는 자 -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자리 -…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49. 육처에 속한 큰 경[알고 보지 못하는 자와 알고 보는 자 -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자리 - 심층적 사성제](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626)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0MwOg8_W7nI
부처님이 육처에 속한 큰 법문이라는 주제를 발의하는데, 내입처-외입처-식-촉-수의 범주에 대해 알고 보지 못하는 자는 신-심의 괴로움을 경험하고, 그에게 미래의 오취온들이 쌓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는 자는 신-심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더 높이 향상하는데, 일곱 가지 보리분법을 포괄하는 팔정도를 닦아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 두 가지 연결된 법인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나타나는데, 실답게 안 뒤의 심층적 사성제에 속합니다[실답게 안 뒤에 닦아야 하는 법들 ― 사마타와 위빳사나]. 그래서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자리가 사념처의 완성에 의한 여실지견 이후 딱까의 안을 제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saḷāyatana 육처(六處)/육입(六入)/육내입처(六內入處) → saḷāyatanika 육처에 속한 것
• saḷāyatanika의 다른 용례 ― (MN 121-공(空-텅 빔)의 작은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3_01&wr_id=16
so evaṃ pajānāti — ‘ye assu darathā kāmāsavaṃ paṭicca tedha na santi, ye assu darathā bhavāsavaṃ paṭicca tedha na santi, ye assu darathā avijjāsavaṃ paṭicca tedha na santi, atthi cevāyaṃ darathamattā yadidaṃ — imameva kāyaṃ paṭicca saḷāyatanikaṃ jīvitapaccayā’ti.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욕루(慾漏)를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유루(有漏)를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무명루(無明漏)를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생명의 조건 때문에 단지 이 몸을 연(緣)하여 육처(六處)에 속한 불안은 있다.’라고.
1. 부처님의 주제 발의 ― 육처(六處)에 속한 큰 법문
1) 알고 보지 못하는 자 ― 신-심의 괴로움을 경험
안(眼)-색(色)들-안식(眼識)-안촉(眼觸)-안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락-고-불고불락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할 때 안-색들-안식-안촉-안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락-고-불고불락의 수(受-경험)에서 친밀한다.(여섯에 반복)
→ 친밀하고 묶이고 미혹하고 매력을 이어 보면서(*) 머무는 그에게 미래의 오취온(五取蘊)들이 쌓인다.
(*) 주제의 확장 ― 「assādānupassī」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406
→ 다시 존재로 이끌고, 소망과 탐(貪)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인 애(愛)가 늘어난다.
→ 그에게 신(身)-심(心)에 속한 불안들-고통들-열기들도 커진다.
→ 신-심의 괴로움도 경험한다.
2) 알고 보는 자 ― 신-심의 즐거움을 경험 → 더 높은 향상
안(眼)-색(色)들-안식(眼識)-안촉(眼觸)-안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락-고-불고불락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볼 때 안-색들-안식-안촉-안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락-고-불고불락의 수(受-경험)에서 친밀하지 않는다.(여섯에 반복)
→ 친밀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미혹하지 않고 위험을 이어보면서 머무는 그에게 미래의 오취온들이 쌓이지 않는다.
→ 다시 존재로 이끌고, 소망과 탐(貪)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인 애(愛)가 버려진다.
→ 그에게 신(身)-심(心)에 속한 불안들-고통들-열기들도 버려진다.
→ 신-심의 즐거움도 경험한다.
→ 그와 같은 견해-사유-노력-사띠-삼매가 바른 견해-사유-노력-사띠-삼매이다. 그전에 이미 몸의 업과 말의 업과 생활은 아주 청정하다(*). 이렇게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은 닦아져 완성된다.
(*) ‘그전에 이미(pubbeva)’라는 표현을 제4선의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와 연결하여 설명하였는데, 제4선에서 몸에 속한 느낌인 즐거움[락근(根)]과 괴로움[고근(菰根)]의 버림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사근(捨根)]과 청정한 사띠를 성취하여 머묾에서 심(心)에 속한 느낌인 만족[희근(喜根)]과 불만/고뇌[우근(憂根)]은 이미 줄어들었으므로 평정만이 남아있다는 설명입니다. → (SN 48.36-분석 경1) 참조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5_04&wr_id=6
한편, (MN 44-교리문답의 작은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5_04&wr_id=11)은 팔정도(八正道)를 설명하는데, 고멸도(苦滅道)인 팔정도가 유위(有爲)라는 점을 먼저 알려줍니다. 무위(無爲)인 열반 자체가 아니라 무위(無爲)에 닿기 위한 과정이므로 팔정도도 아직은 유위(有爲)에 속한다는 이해입니다.
경은 다시 계(戒)-정(定)-혜(慧) 삼온(三蘊)과 팔정도의 관계를 말해주는데, 삼온(三蘊)에 의해 팔정도가 구성됩니다. → 그전에 이미 청정해지는 것인 몸과 말의 업 그리고 생활은 계온(戒蘊)이고, 나머지는 정온(定蘊)과 혜온(慧蘊)임
“na kho, āvuso visākha, ariyena aṭṭhaṅgikena maggena tayo khandhā saṅgahitā; tīhi ca kho, āvuso visākha, khandhehi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aṅgahito.
도반 위사카여,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에 의해 삼온(三蘊)이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삼온(三蘊)에 의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 구성됩니다.
경은 삼온과 팔정도의 구성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yā cāvuso visākha, sammāvācā yo ca sammākammanto yo ca sammāājīvo ime dhammā sīlakkhandhe saṅgahitā. yo ca sammāvāyāmo yā ca sammāsati yo ca sammāsamādhi ime dhammā samādhikkhandhe saṅgahitā. yā ca sammādiṭṭhi yo ca sammāsaṅkappo, ime dhammā paññākkhandhe saṅgahitā”ti.
도반 위사카여, 정어(正語)와 정업(正業)과 정명(正命)의 이 법들은 계온(戒蘊)에서 구성된 것들입니다. 정정진(正精進)과 정념(正念)과 정정(正定)의 이 법들은 정온(定蘊)에서 구성된 것들입니다.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의 이 법들은 혜온(慧蘊)에서 구성된 것들입니다.
→ 이렇게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닦는 그에게 사념처(四念處)-사정근(四正勤)-사여의족(四如意足)-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지(七覺支)도 닦아져 완성된다.
→ 두 가지 연결된 법인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나타난다.
; 실답게 안 뒤에 완전히 알아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완전히 안다. 실답게 안 뒤에 버려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버린다. 실답게 안 뒤에 닦아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닦는다.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해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한다.
• 실답게 안 뒤에 완전히 알아야 하는 법들 ― 오취온(五取蘊)
• 실답게 안 뒤에 버려야 하는 법들 ― 무명(無明)과 유애(有愛)
• 실답게 안 뒤에 닦아야 하는 법들 ― 사마타와 위빳사나
•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해야 하는 법들 ― 명(明)과 해탈(解脫)
※ 사성제(四聖諦)의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과 비교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6&wr_id=126
[참고] 사성제(四聖諦) ― ①포괄적인 사성제(四聖諦)/②심층적인 사성제(四聖諦)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1&wr_id=215
이때,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연결된 법이라는 서술도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나타나서 진행되는 과정을 실답게 안 뒤 즉 실다운 지혜에 의한 여실지견(如實知見) 이후로 서술하고 있는데,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자리가 사념처(四念處)의 완성에 의한 여실지견(如實知見) 이후 takka의 안을 제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 「해피스님과의 대화(서울 240608) ― 2. 사마타-위빳사나의 위치 & 몸의 이해」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09&wr_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