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jhānasuttaṃ(AN 9.36-선(禪) 경)
4. mahāvaggo, 5. jhānasuttaṃ (AN 9.36-선(禪) 경)
비구들이여, 초선을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제2선을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제3선을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제4선을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공무변처를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식무변처를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무소유처를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비상비비상처를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상수멸을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초선을 통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색(色)에 속하고, 수(受)에 속하고, 상(想)에 속하고, 행(行)들에 속하고, 식(識)에 속한 법들을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아픔이고 종기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결점이고 남(他)이고 부서지는 것이고 공(空)이고 무아(無我)라고 관찰한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心)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리면서 불사(不死)의 계(界)로 심을 집중한다. -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다. 즉 모든 행을 그침이고,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음이고, 애(愛)의 부서짐이고, 이탐이고, 소멸인 열반이다.’라고. 거기에 선 그는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한다. 만약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법을 좋아하고 그 법을 소망하기 때문에 ‘오하분결(五下分結)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화생(化生)하고,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가 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궁수나 궁수의 제자는 짚으로 만든 인형이나 점토 더미에서 훈련한 뒤, 나중에 멀리서 번개처럼 쏘아서 커다란 무리를 쳐부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색에 속하고, 수에 속하고, 상에 속하고, 행들에 속하고, 식에 속한 법들을 무상하고 고이고 아픔이고 종기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결점이고 남이고 부서지는 것이고 공이고 무아라고 관찰한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리면서 불사의 계로 심을 집중한다. -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다. 즉 모든 행을 그침이고,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음이고, 애의 부서짐이고, 이탐이고, 소멸인 열반이다.’라고. 거기에 선 그는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한다. 만약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법을 좋아하고 그 법을 소망하기 때문에 ‘오하분결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화생하고,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초선을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제2선을 의지한 … 제3선을 의지한 … 제4선을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의 제4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색에 속하고, 수에 속하고, 상에 속하고, 행들에 속하고, 식에 속한 법들을 무상하고 고이고 아픔이고 종기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결점이고 남이고 부서지는 것이고 공이고 무아라고 관찰한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리면서 불사의 계로 심을 집중한다. -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다. 즉 모든 행을 그침이고,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음이고, 애의 부서짐이고, 이탐이고, 소멸인 열반이다.’라고. 거기에 선 그는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한다. 만약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법을 좋아하고 그 법을 소망하기 때문에 ‘오하분결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화생하고,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가 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궁수나 궁수의 제자는 짚으로 만든 인형이나 점토 더미에서 훈련한 뒤, 나중에 멀리서 번개처럼 쏘아서 커다란 무리를 쳐부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의 제4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색에 속하고, 수에 속하고, 상에 속하고, 행들에 속하고, 식에 속한 법들을 무상하고 고이고 아픔이고 종기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결점이고 남이고 부서지는 것이고 공이고 무아라고 관찰한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리면서 불사의 계로 심을 집중한다. -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다. 즉 모든 행을 그침이고,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음이고, 애의 부서짐이고, 이탐이고, 소멸인 열반이다.’라고. 거기에 선 그는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한다. 만약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법을 좋아하고 그 법을 소망하기 때문에 ‘오하분결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화생하고,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제4선을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한 것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공무변처를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완전하게 색상(色想)을 넘어서고, 저항의 상(想)이 줄어들고, 다양한 상(想)을 작의(作意)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색에 속하고, 수에 속하고, 상에 속하고, 행들에 속하고, 식에 속한 법들을 무상하고 고이고 아픔이고 종기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결점이고 남이고 부서지는 것이고 공이고 무아라고 관찰한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리면서 불사의 계로 심을 집중한다. -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다. 즉 모든 행을 그침이고,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음이고, 애의 부서짐이고, 이탐이고, 소멸인 열반이다.’라고. 거기에 선 그는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한다. 만약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법을 좋아하고 그 법을 소망하기 때문에 ‘오하분결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화생하고,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가 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궁수나 궁수의 제자는 짚으로 만든 인형이나 점토 더미에서 훈련한 뒤, 나중에 멀리서 번개처럼 쏘아서 커다란 무리를 쳐부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완전하게 색상을 넘어서고, 저항의 상이 줄어들고, 다양한 상을 작의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그는 거기서 색에 속하고, 수에 속하고, 상에 속하고, 행들에 속하고, 식에 속한 법들을 무상하고 고이고 아픔이고 종기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결점이고 남이고 부서지는 것이고 공이고 무아라고 관찰한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리면서 불사의 계로 심을 집중한다. -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다. 즉 모든 행을 그침이고,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음이고, 애의 부서짐이고, 이탐이고, 소멸인 열반이다.’라고. 거기에 선 그는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한다. 만약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법을 좋아하고 그 법을 소망하기 때문에 ‘오하분결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화생하고,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공무변처를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식무변처를 의지한 … 무소유처를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색에 속하고, 수에 속하고, 상에 속하고, 행들에 속하고, 식에 속한 법들을 무상하고 고이고 아픔이고 종기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결점이고 남이고 부서지는 것이고 공이고 무아라고 관찰한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리면서 불사의 계로 심을 집중한다. -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다. 즉 모든 행을 그침이고,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음이고, 애의 부서짐이고, 이탐이고, 소멸인 열반이다.’라고. 거기에 선 그는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한다. 만약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법을 좋아하고 그 법을 소망하기 때문에 ‘오하분결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화생하고,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가 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궁수나 궁수의 제자는 짚으로 만든 인형이나 점토 더미에서 훈련한 뒤, 나중에 멀리서 번개처럼 쏘아서 커다란 무리를 쳐부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서 색에 속하고, 수에 속하고, 상에 속하고, 행들에 속하고, 식에 속한 법들을 무상하고 고이고 아픔이고 종기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결점이고 남이고 부서지는 것이고 공이고 무아라고 관찰한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린다. 그는 그 법들로부터 심을 돌리면서 불사의 계로 심을 집중한다. -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다. 즉 모든 행을 그침이고,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음이고, 애의 부서짐이고, 이탐이고, 소멸인 열반이다.’라고. 거기에 선 그는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한다. 만약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법을 좋아하고 그 법을 소망하기 때문에 ‘오하분결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화생하고,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무소유처를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도 나는 말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한 것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상(想)의 증득만큼 무위(無爲)의 앎을 꿰뚫는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비상비비상처의 증득과 상수멸의 두 경지를 의지한 번뇌들의 부서짐은, 비구들이여, 선(禪)을 닦는 자들이 증득의 능숙과 증득에서 일어남의 능숙에 의해 증득하고 일어선 뒤에 바르게 알려지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 ‘saṅkhārāvasesasamāpatti 남아있는 행(行)들의 증득’의 용례 ― (MN 102-다섯이면서 셋 경)/(SN 14.11-일곱 요소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