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처분석] 7. saḷāyatanavibhaṅgasuttaṃ(MN 137-육처(六處) 분석 경)
4. vibhaṅgavaggo, 7. saḷāyatanavibhaṅgasuttaṃ(MN 137-육처(六處) 분석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부처님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거기서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육처(六處)의 분석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 kāya: a heap; a collection; the body. (m.)
육내입처(六內入處)는 알려져야 한다. 육외입처(六外入處)는 알려져야 한다. 육식(六識)의 모임은 알려져야 한다. 육촉(六觸)의 모임은 알려져야 한다. 열여덟 가지 의(意)의 행보(行步)는 알려져야 한다. 서른여섯 가지 중생의 발길은 알려져야 한다. 거기서 이것을 의지하여 이것을 버려라. 성자가 실천하는 세 가지 염처(念處)가 있으니 그것을 실천한 성자는 스승이 되어 무리를 지도할 수 있다. 그는 실천행(實踐行)을 위한 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라고 불린다. — 이것이 육처의 분석에 대한 요약이다.
‘육내입처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안처(眼處), 이처(耳處), 비처(鼻處), 설처(舌處), 신처(身處), 의처(意處)가 있다. - ‘육내입처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육외입처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색처(色處), 성처(聲處), 향처(香處), 미처(味處), 촉처(觸處), 법처(法處)가 있다. - ‘육외입처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육식의 모임은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이 있다. - ‘육식의 모임은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육촉의 모임은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안촉(眼觸), 이촉(耳觸), 비촉(鼻觸), 설촉(舌觸), 신촉(身觸), 의촉(意觸)이 있다. - 육촉의 모임은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이다.
• upavicarati ― upa-vicarati
upa ― ①on upon, up. ②higher, above. ③close by, close to, near.
vicarati [vi+carati] to go or move about in (loc.), to walk (a road=acc.), to wander
• manopavicāra ― mano-upavicāra(upa-vicāra)
‘열여덟 가지 의의 행보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안으로 색을 보고서 만족을 주는 색으로 다가가고, 불만족을 주는 색으로 다가가고, 평정을 주는 색으로 다가간다. 이로 성을 듣고서 … 비로 향을 맡고서 … 설로 미를 맛보고서 … 신으로 촉을 닿고서 … 의로 법을 인식하고서 만족을 주는 법으로 다가가고, 불만족을 주는 법으로 다가가고, 평정을 주는 법으로 다가간다. — 열여덟 가지 의의 행보는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 somanassaṭṭhānīyaṃ — somanassa-ṭ-ṭhānīyaṃ
• thānīya (adj.) [grd. of tiṭṭhati] standing, having a certain position, founded on or caused by
[초기불전연구원] “‘열여덟 가지 마노의 고찰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한 말인가? 눈으로 형색을 보고 기쁨을 일으킬 형색을 고찰하고 슬픔을 일으킬 형색을 고찰하고 평온을 일으킬 형색을 고찰한다.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을 알고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 마노[意]로 법을 지각하고 기쁨을 일으킬 법을 고찰하고 슬픔을 일으킬 법을 고찰하고 평온을 일으킬 법을 고찰한다. 이처럼 여섯 가지 기쁨의 고찰과 여섯 가지 슬픔의 고찰과 여섯 가지 평온의 고찰이 있다. ‘열여덟 가지 마노의 고찰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한 말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열여덟 가지 정신적 경험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시각으로 형상을 보고 쾌락을 주는 형상을 경험하고 불쾌를 주는 형상을 경험하고 평정을 주는 형상을 경험한다. … [청각과 소리 – 후각과 냄새 – 미각과 맛 – 촉각과 감촉 – 정신과 사실에 반복] … 이와 같이 여섯 가지 쾌락의 경험, 여섯 가지 불쾌의 경험, 여섯 가지 평정의 경험이 있어, 열여덟 가지 정신적 경험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Bhikkhu Bodhi] “’The eighteen kinds of mental exploration should be understand.‘ So it was said. And with reference to what was this said?
“On seeing a form with the eye, one explores a form productive of joy, one explores(탐구하다/조사하다) a form productive of grief, one explores a form productive of equanimity. On hearing a sound with the ear … On smelling an odour with the nose … On tasting a flavour with the tongue … On touching a tangible with the body … On cognizing a mind-object with the mind, one explores a mind-object productive of joy, one explores a mind-object productive of grief, one explores a mind-object productive of equanimity. Thus there are six kinds of exploration with joy, six kinds of exploration with grief, six kinds of exploration with equanimity. So it was with reference to this that it was said: ‘The eighteen kinds of mental exploration should be understand.‘
[Thanissaro Bhikkhu] "'The eighteen explorations for the intellect should be known': thus was it said. And in reference to what was it said? Seeing a form via the eye, one explores(탐구하다/조사하다) a form that can act as the basis for happiness, one explores a form that can act as the basis for unhappiness, one explores a form that can act as the basis for equanimity. Hearing a sound via the ear ... Smelling an aroma via the nose ... Tasting a flavor via the tongue ... Feeling a tactile sensation via the body ... Cognizing an idea via the intellect, one explores an idea that can act as the basis for happiness, one explores an idea that can act as the basis for unhappiness, one explores an idea that can act as the basis for equanimity. The eighteen explorations for the intellect should be known': thus was it said. And in reference to this was it said.
[Sister Upalavanna] It was said that the eighteen ramblings of the mind should be known. Why was it said so? Seeing a form with the eye, the mind dwells(살다/거주하다) in pleasure, dwells in displeasure, and dwells in equanimity; Hearing a sound, ... re ... . Smelling ascent, ... re ... Tasting, ... re ... . Experiencing a touch ... re ... Cognizing an idea dwells in pleasure dwells in displeasure and dwells in equanimity. Thus there are six ramblings in pleasure, six in displeasure and six in equanimity If it was said the eighteen ramblings of the mindshould be known, it was said on account of this.
‘서른여섯 가지 중생의 발걸음은 알려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만족과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불만족과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평정과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이 있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만족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유쾌하고 물질 세상에 연결되어있는 안으로 인식되는 색들의 획득을 획득으로부터 보면서 혹은 이미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한 것을 회상하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재가에 의지한 만족이라고 한다. 이로 인식되는 성들을 … 비로 인식되는 향들을 … 설로 인식되는 미들을 … 신으로 인식되는 촉들을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유쾌하고 물질 세상에 연결되어있는 의로 인식되는 법들의 획득을 획득으로부터 보면서 혹은 이미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한 것을 회상하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재가에 의지한 만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만족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인가? 색들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바래고 소멸한다고 알아 이전의 색들이나 지금의 색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만족이라고 한다. 성들은 참으로 … 향들은 참으로 … 미들은 참으로 … 촉들은 참으로 … 법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만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불만족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유쾌하고 물질 세상에 연결되어있는 안으로 인식되는 색들을 획득하지 못함을 획득하지 못함으로부터 보면서 혹은 이미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하지 못한 것들을 회상하면서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재가에 의지한 불만족이라고 한다. 이로 인식되는 성들을 … 비로 인식되는 향들을 … 설로 인식되는 미들을 … 신으로 인식되는 촉들을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유쾌하고 물질 세상에 연결되어있는 의로 인식되는 법들을 획득하지 못함을 획득하지 못함으로부터 보면서 혹은 이미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이전에 획득하지 못한 것들을 회상하면서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재가에 의지한 불만족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불만족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인가? 색들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바래고 소멸한다고 알아 이전의 색들이나 지금의 색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위 없는 해탈에 관한 부러움을 일으킨다. ‘지금 성자들이 성취하여 머무는 경지를 나는 언제 성취하여 머물게 될 것인가?’라고 위 없는 해탈에 관한 부러움을 일으키면서 부러움을 조건으로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이라 한다. 성들은 참으로 … 향들은 참으로 … 미들은 참으로 … 촉들은 참으로 … 법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위 없는 해탈에 관한 부러움을 일으킨다. ‘지금 성자들이 성취하여 머무는 경지를 나는 언제 성취하여 머물게 될 것인가?’라고 위 없는 해탈에 관한 부러움을 일으키면서 부러움을 조건으로 불만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만족을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이라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평정인가? 안으로 색을 보면서 어리석고 미혹한 범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보를 극복하지 못하고 위험을 보지 못하는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평정이 생기는데, 이런 평정은 색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런 평정을 재가에 의지한 것이라고 한다. 이로 성을 들으면서 … 비로 향을 맡으면서 … 설로 미를 맛보면서 … 신으로 촉을 닿으면서 … 의로 법을 알면서 어리석고 미혹한 범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보를 극복하지 못하고 위험을 보지 못하는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평정이 생기는데, 이런 평정은 법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런 평정을 재가에 의지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평정이다.
여기서 무엇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인가? 그러나 색들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바래고 소멸한다고 알아 이전의 색들이나 지금의 색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평정이 생기는데, 이런 평정은 색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이런 평정을 출리에 의지한 것이라고 한다. 성들은 참으로 … 향들은 참으로 … 미들은 참으로 … 촉들은 참으로 … 법들은 참으로 무상하고 변하고 바래고 소멸한다고 알아 이전의 법들이나 지금의 법들은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평정이 생기는데, 이런 평정은 법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이런 평정을 출리에 의지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이다. ‘서른여섯 가지 중생의 발걸음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여기서 이것을 의지하여 이것을 버려라.’라고 말했다.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거기서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렇게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불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렇게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여섯 가지 재가에 의지한 평정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렇게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불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렇게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평정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여섯 가지 출리에 의지한 만족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렇게 이것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이 있고,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이 있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인가? 비구들이여, 색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성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향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미들에서의 평정이 있고 촉들에서의 평정이 있다. ― 이것이, 비구들이여,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인가? 비구들이여, 공무변처를 의지한 평정이 있고 식무변처를 의지한 평정이 있고 무소유처를 의지한 평정이 있고 비상비비상처를 의지한 평정이 있다. ― 비구들이여, 이것이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이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렇게 이것을 넘어선다.
• atammayatā ― (MN 113-고결한 사람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2_03&wr_id=4
비구들이여, ‘그것에서 생겨남이 아닌 것(涅槃)’을 의지하고 원인으로 하여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을 버리고 넘어선다. 이렇게 이것을 버리고, 이렇게 이것을 넘어선다. ‘여기서 이것을 의지하여 이것을 버려라.’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성자가 실천하는 세 가지 염처가 있으니 그것을 실천하는 성자는 스승이 되어 무리를 지도할 수 있다.’라고 했다.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연민을 가지고 이익을 바라는 스승은 연민을 일으켜 제자들을 위해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법을 설한다.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무위의 앎을 위한 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서 살아간다. 그때 비구들이여, 여래는 불쾌해하지 않고, 불쾌를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갈망하지 않고,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성자가 실천하는 첫 번째 염처이니 그것을 실천한 성자는 스승이 되어 무리를 지도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연민을 가지고 이익을 바라는 스승은 연민을 일으켜 제자들을 위해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법을 설한다. 그의 어떤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무위의 앎을 위한 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서 살아간다. 어떤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무위의 앎을 위한 심을 일으킨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간다. 그때, 비구들이여, 여래는 불쾌해하지 않고, 불쾌를 경험하지 않는다. 유쾌해하지 않고, 유쾌를 경험하지 않는다. 불쾌와 유쾌 둘 다를 벗어나서 그는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평정을 가지고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성자가 실천하는 두 번째 염처이니 그것을 실천한 성자는 스승이 되어 무리를 지도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연민을 가지고 이익을 바라는 스승은 연민을 일으켜 제자들을 위해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법을 설한다.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무위의 앎을 위한 심을 일으킨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간다. 그때 비구들이여, 여래는 유쾌해하고, 유쾌를 경험한다. 그러나 갈망하지 않고,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성자가 실천하는 세 번째 염처이니 그것을 실천한 성자는 스승이 되어 무리를 지도할 수 있다. ‘성자가 실천하는 세 가지 염처가 있으니 그것을 실천한 성자는 스승이 되어 무리를 지도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그는 실천행을 위한 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라고 불린다.’라고 했다.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코끼리 조련사가 잘 조련한 코끼리는 달릴 때 동쪽이건 서쪽이건 북쪽이건 남쪽이건 한 방향으로 달린다. 비구들이여, 말 조련사가 잘 조련한 말은 달릴 때 동쪽이건 서쪽이건 북쪽이건 남쪽이건 한 방향으로 달린다. 비구들이여, 소 조련사가 잘 조련한 소는 달릴 때 동쪽이건 서쪽이건 북쪽이건 남쪽이건 한 방향으로 달린다.
• aṭṭha vimokkhā ― 팔해탈(八解脫) → (DN 33.11-합송경, 여덟 가지로 구성된 법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에 의해 잘 훈련된 사람은 여덟 방향으로 나아간다.
색계(色界)의 존재로서 물질을 본다. - 이것이 첫 번째 방향이다.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진[색상(色想)을 초월한] 자로서 밖으로 물질을 본다. - 이것이 두 번째 방향이다.
오직 깨끗함에 집중한다. - 이것이 세 번째 방향이다.
완전하게 색상(色想)을 넘어서고, 저항의 상(想)이 줄어들고, 다양한 상(想)을 작의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 이것이 네 번째 방향이다.
공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 이것이 다섯 번째 방향이다.
식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 이것이 여섯 번째 방향이다.
무소유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비상비비상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 이것이 일곱 번째 방향이다.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상수멸을 성취하여 머문다. - 이것이 여덟 번째 방향이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잘 훈련된 사람은 이러한 여덟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실천행을 위한 무상조어장부라고 불린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