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 서문] verañjakaṇḍaṃ[웨란자 이야기] 1.
Vinaya Piṭaka, pārājikapāḷi, verañjakaṇḍaṃ[웨란자 이야기]
그 때 불(佛) 세존(世尊)은 웨란자의 날레루 님바 나무 아래에서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머물렀다. 웨란자 바라문은 들었다 ㅡ “존자들이여, 사꺄의 후예이고 사꺄 가문에서 출가한 사문 고따마가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승가와 함께 웨란자의 날레루 님바 나무 아래에 머물고 계십니다. 참으로 세존이신 그분 고따마에게는 이런 좋은 명성이 퍼져있습니다. ㅡ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밝음과 실천을 갖추신 분, 진리의 길 보이신 분, 세상일을 모두 훤히 아시는 분,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분, 모든 천상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이시다.’라고. 그는 신과 함께하고 마라와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과 사문-바라문과 함께하고 신과 사람과 함께하는 존재를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선언합니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고,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냅니다. 참으로 그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라고.
그러자 웨란자 바라문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웨란자 바라문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고따마 존자여, 저는 '사문 고따마는 늙고 나이 들고 노후하고 삶의 기간을 건너 노쇠해진 바라문들에게 절을 하지도 않고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다.'라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것이 사실입니까? 참으로 고따마 존자는 늙고 나이 들고 노후하고 삶의 기간을 건너 노쇠해진 바라문들에게 절을 하지도 않고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습니까? 고따마 존자여, 그렇다면 그것은 바른 실천이 아닙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신과 함께하고 마라와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과 사문-바라문과 함께하고 신과 사람과 함께하는 존재에게서 내가 절을 해야 하거나 일어나 맞이해야 하거나 자리를 권해야 하는 어떤 자도 보지 못합니다. 바라문이여, 여래가 어떤 자에게 절을 해야 하거나 일어나 맞이해야 하거나 자리를 권해야 한다면 그의 머리가 떨어질 것입니다.”
“고따마 존자는 맛이 없는 자입니까?” “바라문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맛이 없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여래에게 색(色)의 맛들, 성(聲)의 맛들, 향(香)의 맛들, 미(味)의 맛들, 촉(觸)의 맛들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맛이 없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그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고따마 존자는 재물이 없는 자입니까?” “바라문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재물이 없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여래에게 색(色)의 재물들, 성(聲)의 재물들, 향(香)의 재물들, 미(味)의 재물들, 촉(觸)의 재물들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재물이 없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그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고따마 존자는 결실 없음을 말하는 자입니까?” “바라문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결실 없음을 말하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의(意)의 나쁜 행위의 얻을 바 없음을 말하고,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의 얻을 바 없음을 나는 말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결실 없음을 말하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그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고따마 존자는 단멸(斷滅)을 말하는 자입니까?” “바라문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단멸을 말하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탐(貪)과 진(嗔)과 치(癡)의 단멸을 말하고,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의 단멸을 말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단멸을 말하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그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고따마 존자는 혐오하는 자입니까?” “바라문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혐오하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혐오합니다.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의(意)의 나쁜 행위에 의한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의 달성을 나는 혐오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혐오하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그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 venayika: 1. a nihilist(허무주의자); 2. an expert in Vinaya(제거전문가). (m.)
“고따마 존자는 허무주의자입니까?” “바라문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허무주의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탐(貪)과 진(嗔)과 치(癡)를 제거하기 위한 법을 설하고,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을 제거하기 위한 법을 설합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허무주의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그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고따마 존자는 고행자입니까?” “바라문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고행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의(意)의 나쁜 행위, 악한 불선법들은 태워져야 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바라문이여, 어떤 자에게 태워져야하는 악한 불선법들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을 나는 고행자라고 말합니다. 바라문이여, 여래(如來)에게 태워져야하는 악한 불선법들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고행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그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고따마 존자는 더 이상 모태에 들지 않는 자입니까?” “바라문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더 이상 모태에 들지 않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어떤 자에게 미래에 자궁 속의 태아로서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남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을 나는 더 이상 모태에 들지 않는 자라고 말합니다. 바라문이여, 여래(如來)에게 미래에 자궁 속의 태아로서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남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바르게 말하는 자가 ‘사문 고따마는 더 이상 모태에 들지 않는 자다.’라고 나를 말할 수 있는 그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암탉에게 여덟 또는 열 또는 열두 개의 알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암탉에 의해 바르게 품어지고, 바르게 열을 받고, 바르게 다루어질 것입니다. 발톱 끝이나 부리로 달걀껍질을 잘 부순 뒤 안전하게 뚫고 나올 그 병아리들 가운데 첫 번째는 어떻게 불려야 합니까? 맏이입니까, 막내입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맏이라고 불려야 합니다. 참으로 그는 그들 가운데 맏이입니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나는 덮여있는 알의 상태인 무명에 속한 존재들 가운데 무명의 껍질을 부수고 세상에서 혼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습니다[정등각(正等覺)]. 바라문이여, 나는 참으로 세상의 맏이이고 으뜸입니다.
“바라문이여, 나에게 열심히 노력하여 게으르지 않음과 잊히지 않는 사띠의 확립과 몸이 진정되어 동요하지 않음과 삼매를 닦는 심(心)의 집중이 있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나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이전의 존재 상태에 대한 기억의 앎[전생의 기억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했습니다. 나는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했습니다. 즉 ㅡ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진화하는[줄어드는] 여러 겁, 세계가 퇴보하는[자라나는] 여러 겁, 세계가 진화하고 퇴보하는 여러 겁을 기억합니다. ㅡ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했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밤의 초삼분(初三分)에 나에게 얻어진 첫 번째 명(明)입니다. 방일하지 않고(不放逸)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자에게 무명(無明)이 부서지고 명(明)이 생긴 것입니다.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긴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병아리가 달걀 껍질로부터 나오듯이 이것이 세상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염오(厭惡)함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자기 활동성을 회복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죽고 다시 태어남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했습니다.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ㅡ ‘이들은 신(身)으로 나쁜 삶을 살고 구(口)로 나쁜 삶을 살고 의(意)로 나쁜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신(身)으로 좋은 삶을 살고 구(口)로 좋은 삶을 살고 의(意)로 좋은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밤의 중삼분(中三分)에 나에게 얻어진 두 번째 명(明)입니다. 방일하지 않고(不放逸)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자에게 무명(無明)이 부서지고 명(明)이 생긴 것입니다.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긴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병아리가 달걀 껍질로부터 나오듯이 이것이 세상에 대한 나의 두 번째 염오(厭惡)함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번뇌들의 부서짐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고(苦)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고집(苦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고멸(苦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루(漏)]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집(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소유의 번뇌[욕루(慾漏)]들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했고, 존재의 번뇌[유루(有漏)]들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했고, 무명(無明)의 번뇌[무명루(無明漏)]들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했습니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었습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밤의 후삼분(後三分)에 나에게 얻어진 세 번째 명(明)입니다. 방일하지 않고(不放逸)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자에게 무명(無明)이 부서지고 명(明)이 생긴 것입니다.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긴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병아리가 달걀 껍질로부터 나오듯이 이것이 세상에 대한 나의 세 번째 염오(厭惡)함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웨란자 바라문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고따마 존자께서는 맏이이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으뜸입니다!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에 의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해진 법이 있습니다. 이런 저는 의지처인 고따마 존자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 있는 동안 귀의한 남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에게 비구 승가와 함께 웨란자에서 안거를 지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동의하였다. 그러자 웨란자 바라문은 세존의 동의를 알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