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kuladūsakasikkhāpadaṃ(승단잔류죄, 가문과 관련한 부정에 대한 학습계율) - 후반부
(*3) anekapariyāyena vigarahitvā dubbharatāya dupposatāya mahicchatāya asantuṭṭhitāya saṅgaṇikāya kosajjassa avaṇṇaṃ bhāsitvā anekapariyāyena subharatāya suposatāya appicchassa santuṭṭhassa sallekhassa dhutassa pāsādikassa apacayassa vīriyārambhassa vaṇṇaṃ bhāsitvā bhikkhūnaṃ tadanucchavikaṃ tadanulomikaṃ dhammiṃ kathaṃ katvā bhikkhū āmantesi — “tena hi, bhikkhave, bhikkhūnaṃ sikkhāpadaṃ paññapessāmi dasa atthavase paṭicca — saṅghasuṭṭhutāya, saṅghaphāsutāya, dummaṅkūnaṃ puggalānaṃ niggahāya, pesalānaṃ bhikkhūnaṃ phāsuvihārāya, diṭṭhadhammikānaṃ āsavānaṃ saṃvarāya, samparāyikānaṃ āsavānaṃ paṭighātāya, appasannānaṃ pasādāya, pasannānaṃ bhiyyobhāvāya, saddhammaṭṭhitiyā, vinayānuggahāya. evañca pana, bhikkhave, imaṃ sikkhāpadaṃ uddiseyyātha --
그러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으뜸으로 하는 비구상가는 끼따기리로 간 뒤에 ‘앗사지와 뿌납바수에 속하는 비구들은 끼따기리에 살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앗사지와 뿌납바수에 속하는 비구들을 끼따기리로부터 추방하는 절차를 행하였다. 그들은 상가에 의해 행해진 추방하는 절차 때문에 바르게 있지 못했다. 복종하지 않고, 비난하고, 비구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욕하고 중상했다. 찬다가 이끌고, 진(嗔)이 이끌고, 치(癡)가 이끌고,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떠나기도 하고, 환속하기도 했다. 바라는 것이 적고, 만족하고, 수치심이 있고, 성실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비구들은 속을 태우고 낙담하고 열을 내었다. ㅡ “참으로 어떻게 앗사지와 뿌납바수에 속하는 비구들은 상가에 의해 행해진 추방하는 절차 때문에 바르게 있지 못하는가! 복종하지 않고, 비난하고, 비구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가! 욕하고 중상하는가! 찬다가 이끌고, 진(嗔)이 이끌고, 치(癡)가 이끌고,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가! 떠나기도 하고, 환속하기도 하는가!”라고. 그래서 그 비구들은 앗사지와 뿌납바수에 속하는 비구들을 여러 방법으로 꾸짖은 뒤에 세존에게 이런 뜻을 알렸다. … “참으로, 비구들이여, 앗사지와 뿌납바수에 속하는 비구들이 상가에 의해 행해진 추방하는 절차 때문에 바르게 있지 못하였는가? 복종하지 않고, 비난하고, 비구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는가? 욕하고 중상하였는가? 찬다가 이끌고, 진(嗔)이 이끌고, 치(癡)가 이끌고,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는가? 떠나기도 하고, 환속하기도 하였는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불(佛)-세존(世尊)은 꾸짖었다. …(*3)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런 학습계율을 암송해야 한다. ㅡ
(*3) 그리고 세존은 ~ 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꾸짖은 뒤에 유지하기 어렵고, 부양하기 어렵고, 탐욕이 많고, 만족하지 못하고, 교제를 좋아하고, 게으른 것을 나무랐다. 다양한 방법으로 유지하기 쉽고, 부양하기 쉽고, 탐욕이 적고, 만족하고, 벗어남을 실천하고,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고, 모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찬탄하여 말한 뒤에 비구들에게 알맞고 적절한 법의 말씀을 말하고서 비구들에게 말했다. ㅡ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열 가지 이유를 연(緣)하여 비구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할 것이다. ㅡ ①상가의 뛰어남을 위하여, ②상가의 편안함을 위하여, ③침묵하기 힘든 자들을 억제하기 위하여, ④잘 행동하는 비구들의 편안한 머묾을 위하여, ⑤지금여기에 속하는 번뇌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⑥다음 생에 속하는 번뇌들을 저항하기 위하여, ⑦믿음이 없는 자들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하여, ⑧믿음이 있는 자들을 더욱 확대시키기 위하여, ⑨정법(正法)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⑩율(律)을 보조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런 학습계율을 암송해야 한다. ㅡ
“가문과 관련한 부정의 악한 행동을 하는 비구가 어떤 마을이나 번화가를 의지하여 머문다. 그의 악한 행동은 보이고 들린다. 그에 의해 가문이 불쾌해 하는 것이 보이고 들린다. 그 비구에게 비구들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ㅡ ‘존자는 가문과 관련한 부정의 악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존자의 악한 행동은 보이고 들립니다. 존자에 의해 가문이 불쾌해 하는 것이 보이고 들립니다. 존자는 이 주거지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그대는 이 주거지에서 충분히 살았습니다.’라고. 이렇게 비구들로부터 말을 들은 그 비구는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찬다가 이끄는 비구들이 있고, 진(嗔)이 이끄는 비구들이 있고, 치(癡)가 이끄는 비구들이 있고, 두려움이 이끄는 비구들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잘못 가운데 어떤 사람은 떠나게 하고 어떤 사람은 떠나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그 비구에게 비구들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ㅡ ‘존자는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비구들은 찬다가 이끌지 않습니다. 비구들은 진(嗔)이 이끌지 않습니다. 비구들은 치(癡)가 이끌지 않습니다. 비구들은 두려움이 이끌지 않습니다. 존자는 가문과 관련한 부정의 악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존자의 악한 행동은 보이고 들립니다. 존자에 의해 가문이 불쾌해 하는 것이 보이고 들립니다. 존자는 이 주거지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그대는 이 주거지에서 충분히 살았습니다.’라고. 그런데도 이렇게 비구들로부터 말을 들은 비구가 같은 말을 고집하면, 그의 포기를 위해 그 비구에게 비구들은 세 번까지 대화해야 한다. 세 번까지 대화한 그가 포기하면, 이렇게 이것은 유익하다. 만약 포기하지 않으면, 상가디세사[승단잔류죄]이다.”
‘비구 … 어떤 마을이나 번화가’라는 것은 마을도, 번화가도, 도시도 마을과 번화가이다.
‘의지하여 머문다.’라는 것은 거기서 가사와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病)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들을 의지하는 것이다.
가문은 네 가지 가문이다. ㅡ 끄샤뜨리야 가문, 바라문 가문, 와이샤 가문, 수드라 가문.
‘가문과 관련한 부정’은 꽃이나 과일이나 분말이나 점토거나 칫솔이나 대나무거나 약이거나 전령에 의해 가문들을 오염하는 것이다.
‘악한 행동’이란 꽃나무를 심기도 하고, 심게 하기도 하고, 물을 주기도 하고, 물을 주게 하기도 하고, 뽑기도 하고, 뽑게 하기도 하고, 묶기도 하고, 묶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보이고 들린다.’라는 것은 눈앞에 있는 자들은 보이고, 없는 자들은 들린다는 것이다.
‘그에 의해 가문이 불쾌해 하는 것’이란 예전에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가 믿음이 없게 되고, 분명함이 있었지만 분명함이 없게 된 것이다.
dissanti ceva suyyanti cāti ye saṃmukhā te passanti, ye tirokkhā te suṇanti.
‘보이고 들린다.’라는 것은 눈앞에 있는 자들은 보이고, 없는 자들은 들린다는 것이다.
so bhikkhūti yo so kuladūsako bhikkhu.
‘그 비구’란 가문과 관련해 부정한 비구다.
‘비구들에 의해’란 보고, 들은 다른 비구들에 의해서이다. 그들은 말해야 한다. ㅡ ‘존자는 가문과 관련한 부정의 악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존자의 악한 행동은 보이고 들립니다. 존자에 의해 가문이 불쾌해 하는 것이 보이고 들립니다. 존자는 이 주거지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그대는 이 주거지에서 충분히 살았습니다.’라고.
이렇게 비구들로부터 말을 들은 그 비구는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찬다가 이끄는 비구들이 있고, 진(嗔)이 이끄는 비구들이 있고, 치(癡)가 이끄는 비구들이 있고, 두려움이 이끄는 비구들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잘못 가운데 어떤 사람은 떠나게 하고 어떤 사람은 떠나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so bhikkhūti yo so kammakato bhikkhu.
‘그 비구’란 절차를 받은 비구다.
‘비구들에 의해’란 다른 비구들에 의해서이다. 보고, 들은 그들은 말해야 한다. ㅡ ‘존자는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비구들은 찬다가 이끌지 않습니다. 비구들은 진(嗔)이 이끌지 않습니다. 비구들은 치(癡)가 이끌지 않습니다. 비구들은 두려움이 이끌지 않습니다. 존자는 가문과 관련한 부정의 악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존자의 악한 행동은 보이고 들립니다. 존자에 의해 가문이 불쾌해 하는 것이 보이고 들립니다. 존자는 이 주거지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그대는 이 주거지에서 충분히 살았습니다.’라고. 두 번째도 말해야 하고, 세 번째도 말해야 한다.
만약 그가 포기하면, 이렇게 이것은 유익하다. 만약 포기하지 않으면, 둑까따[악작죄(惡作罪)]의 잘못이다. 듣고서 말하지 않으면 악작죄(惡作罪)의 잘못이다. 그 비구는 상가 가운데로 이끌린 뒤에 들어야 한다. ㅡ ‘존자는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비구들은 찬다가 이끌지 않습니다. 비구들은 진(嗔)이 이끌지 않습니다. 비구들은 치(癡)가 이끌지 않습니다. 비구들은 두려움이 이끌지 않습니다. 존자는 가문과 관련한 부정의 악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존자의 악한 행동은 보이고 들립니다. 존자에 의해 가문이 불쾌해 하는 것이 보이고 들립니다. 존자는 이 주거지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그대는 이 주거지에서 충분히 살았습니다.’라고. 두 번째도 들어야 하고, 세 번째도 들어야 한다. 만약 그가 포기하면, 이렇게 이것은 유익하다. 만약 포기하지 않으면, 둑까따[악작죄(惡作罪)]의 잘못이다. 그 비구는 대화되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대화되어야 한다. 경험이 있는 적합한 비구가 상가에 알려야 한다. ㅡ
“대덕들이시여, 상가는 나의 말을 들으십시오. 상가에 의해 추방하는 절차가 행해진 이런 이름의 이 비구는 비구들을 찬다가 이끌고, 진(嗔)이 이끌고, 치(癡)가 이끌고,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게 합니다. 그는 그 영역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만약 상가에 옳다면, 상가는 이런 이름의 비구에게 그의 영역의 포기를 위해 대화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안입니다.
대덕들이시여, 상가는 나의 말을 들으십시오. 상가에 의해 추방하는 절차가 행해진 이런 이름의 이 비구는 비구들을 찬다가 이끌고, 진(嗔)이 이끌고, 치(癡)가 이끌고,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게 합니다. 그는 그 영역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상가는 이런 이름의 비구에게 그의 영역의 포기를 위해 대화합니다. 이런 이름의 비구에게 그의 영역의 포기를 위해 대화하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은 침묵해야 하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말해야 합니다.
“dutiyampi etamatthaṃ vadāmi ... pe ... tatiyampi etamatthaṃ vadāmi ... pe ....
두 번째도 나는 이 뜻을 말합니다. … 세 번째도 나는 이 뜻을 말합니다. …
이런 이름의 비구는 그의 영역의 포기를 위해 상가에 의해 대화되었습니다. 상가의 비구들은 동의하여 침묵하였습니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받아들입니다.”라고.
제안에 의해서 둑까따[악작죄(惡作罪)], 두 번의 제청에 의해서 툴랏짜야[추악죄], 제청의 끝냄에 의해서 상가디세사[승단잔류죄]가 된다. 상가디세사를 범한 자에게는 제안에 의한 둑까따, 두 번 제청에 의한 툴랏짜야는 배제된다.
‘상가디세사[승단잔류죄]’란 상가가 그 잘못 때문에 시험 기간을 주고, 원인을 제거하고, 참회의 기회를 주고, 복귀시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어서 ‘상가디세사’라고 불린다. 그 잘못의 집합을 위한 절차의 이름을 지칭함에 의해서도 ‘상가디세사’라고 불린다.
440. dhammakamme dhammakammasaññī na paṭinissajjati, āpatti saṅghādisesassa.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는 절차에 대해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는 절차의 표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상가디세사의 잘못이다.
dhammakamme vematiko na paṭinissajjati, āpatti saṅghādisesassa.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는 절차에 대한 의심을 포기하지 않으면 상가디세사의 잘못이다.
dhammakamme adhammakammasaññī na paṭinissajjati, āpatti saṅghādisesassa.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는 절차에 대해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지 않는 절차의 표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상가디세사의 잘못이다.
adhammakamme dhammakammasaññī, āpatti dukkaṭassa.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지 않는 절차에 대해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는 절차의 표기기 있으면 둑까따의 잘못이다.
adhammakamme vematiko, āpatti dukkaṭassa.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지 않는 절차에 대한 의심이 있으면 둑까따의 잘못이다.
adhammakamme adhammakammasaññī, āpatti dukkaṭassa.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지 않는 절차에 대한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지 않는 절차의 표기가 있으면 둑까따의 잘못이다.
441. anāpatti asamanubhāsantassa, paṭinissajjantassa, ummattakassa, ādikammikassāti.
대화되지 못한 자, 포기한 자, 미친 자, 초범자에게는 잘못을 범함이 아니다.
kuladūsakasikkhāpadaṃ niṭṭhitaṃ terasamaṃ.
열세 번째 가문과 관련한 부정에 대한 학습계율이 끝났다.
“존자들이여, 열세 개의 상가디세사를 암송하였습니다. 아홉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고, 넷은 세 번의 대화까지로 잘못이 됩니다. 비구가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이든 잘못하면 알면서 감춘 그만큼 비구가 원하지 않아도 그에 따라 격리되어야 합니다. 비구는 격리된 시험 기간이 지나면 육 일 동안 참회의 과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참회를 마친 비구는 스무 명이 있어야 하는 비구상가에서 복귀되어야 합니다. 만약 스무 명에서 한 명이라도 부족한 비구상가가 그 비구를 복귀시킨다면, 그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거기서 바른 과정입니다. 거기서 존자들에게 나는 묻습니다. ㅡ ‘그대들은 청정합니까?’ 두 번째도 나는 묻습니다. ㅡ ‘그대들은 청정합니까?’ 세 번째도 나는 묻습니다. ㅡ ‘그대들은 청정합니까?’ 여기서 존자들에게 청정함이 있으므로 침묵하였습니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terasakaṃ niṭṭhitaṃ.
열세 가지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