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kudhakaccāyanavādo (DN 2.7-사문과경, 빠꾸다 깟짜야나의 말)
● pakudhakaccāyanavādo (DN 2.7-사문과경, 빠꾸다 깟짜야나의 말)
이런 저는, 대덕이시여, 한때 빠꾸다 깟짜야나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빠꾸다 깟짜야나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습니다. 대덕이시여, 한 곁에 앉은 저는 빠꾸다 깟짜야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깟짜야나 존자여, 이런 다양한 기술 분야들 즉 코끼리를 다루는 사람, 말을 다루는 사람, 마차를 모는 사람, 궁수, 기수, 부관, 보급 담당, 고위관리, 왕자, 정찰대, 용사, 갑옷을 입은 전사, 하인의 아들, 요리사, 이발사, 목욕 보조사, 빵 만드는 사람, 화환 만드는 사람, 표백하는 사람, 베 짜는 사람, 바구니 만드는 사람, 옹기장이, 회계 보는 사람, 반지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다른 여러 가지 기술 분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여기에서 눈에 보이는 기술의 결실을 의지합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부모를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처자식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친구와 동료를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합니다. 삶을 향상케 하고 하늘로 이끌고 행복의 보(報)를 있게 하고 천상으로 이끄는 사문․바라문들에 대한 보시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깟짜야나 존자여, 지금 여기에서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했을 때, 대덕이시여, 빠꾸다 깟짜야나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대왕이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상태가 아니고, 창조된 것이 아니고, 창조자가 아니며, 결실을 맺지 못하고, 산봉우리처럼 서 있고, 기둥처럼 안정되게 서 있는 이런 일곱 가지 더미가있습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 간에 거슬리게 하지 않습니다. 서로 간의 즐거움이거나 괴로움이거나 그 둘 모두를 위해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곱 가지입니까? 땅의 더미, 물의 더미, 불의 더미, 바람의 더미, 즐거움, 괴로움, 그리고 일곱 번째로 생명 ― 이것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상태가 아니고, 창조된 것이 아니고, 창조자가 아니며, 결실을 맺지 못하고, 산봉우리처럼 서 있고, 기둥처럼 안정되게 서 있는 일곱 가지 더미입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서로 간에 거슬리지 않습니다. 서로 간의 즐거움이거나 괴로움이거나 그 둘 모두를 위해 충분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죽이는 자도 없고 죽이게 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고 알게 하는 자도 없습니다.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자른다고 해도 누구도 누구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일곱 가지 더미들의 사이에 의해 갈라진 틈을 칼이 지나간것입니다.’라고.
대덕이시여, 이렇게 지금여기에서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질문받은 빠꾸다 깟짜야나는 저에게 다른 것으로 다른 것을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면, 대덕이시여, 망고나무를 질문받은 자가 빵과일 나무를 설명할 것이고, 빵과일 나무를 질문받은 자가 망고나무를 설명할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지금여기에서 눈에 보이는 사문의 결실을 저에게서 질문받은 빠꾸다 깟짜야나는 다른 것으로 다른 것을 설명했습니다. 대덕이시여,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나의 영토에 거주하고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라고. 대덕이시여, 그래서 저는 빠꾸다 깟짜야나의 말을 동의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동의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말을 내뱉지 않고,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뒤집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