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戒)와 혜(慧)의 관계
계(戒)와 혜(慧)의 관계 ― [소나단다 바라문과 부처님의 대화 - (DN 4-소나단다 경)]
이 대화는 계(戒)와 혜(慧)가 바라문이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두 요소라고 말합니다. 이때, 바라문은 단순히 브라만교의 사제 계급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전은 많은 곳에서 바라문을 힌두교의 사제라는 의미가 아닌 수행자 또는 아라한과 동등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DN 27-처음에 대한 앎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3_04&wr_id=15)은 「악한 불선법들을 나르게[제거하게] 한다.’라고 해서, 와셋타여, ‘바라문, 바라문’이라는 첫 번째 단어가 생겼다.」라고 하며,
(DN 8.5-사자후 큰 경, 고행의 실천이 이익되지 않음에 관한 이야기)는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원망 없음과 거슬림 없음과 자심(慈心)을 닦고, 번뇌가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때, 깟사빠여, 비구는 사문이라고도 바라문이라고도 불립니다.」
라고 하여, 바라문에서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정의를 제시합니다. ⇒ 「바라문 = 아라한」
이 경에서 소나단다 바라문은 브라만교의 사제 계급으로의 바라문에 대한 이해로써 대화합니다. 소나단다 바라문은 ‘계를 가진 자에게 지혜가 있고 지혜를 가진 자에게 계가 있습니다.’라고 해서 계와 혜가 바라문이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두 요소라고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바라문이기 위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브라만교의 사제 계급으로 전락(세속화)하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부처님은 (DN 2-사문과경)의 수행체계도(修行體系圖)로써 이 주제를 설명합니다. 진정한 바라문이 되는 방법입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02&wr_id=90
그런데 이 경에서 주목해야 하는 내용은 계(戒)와 혜(慧)의 관계입니다. 소나단다 바라문의 답변에 이어 부처님도 「계에 의해 청정해지는 것이 지혜이고, 지혜에 의해 청정해지는 것이 계입니다. 계가 있을 때 지혜가 있고, 지혜가 있을 때 계가 있습니다. 계를 가진 자에게 지혜가 있고, 지혜를 가진 자에게 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와 지혜가 세상에서 으뜸이라고 선언됩니다.」라고 하여 계(戒)와 혜(慧)의 불가분 또는 서로 조건 되는 관계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 참고 ― 수행의 측면에서 혜(慧)와 대응하는 것
「수행(修行)의 중심 개념」에 의하면, 다섯 가지 장애는 혜(慧)를 무력하게 하는 심(心)의 오염원이고, 다섯 가지 장애의 제거로써 혜(慧)를 힘 있게 하는 것은 사념처(四念處)입니다. 혜(慧)와 대응하는 것이 부정의 측면에서는 다섯 가지 장애로,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사념처(四念處) 즉 사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띠는 이어보는 방법으로 삼매를 이끕니다.
그렇다면 긍정의 측면에서 혜(慧)와 대응하는 것은 계(戒)와 사띠와 삼매의 세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모두 단속의 역할에 의해서 하나의 의미로 연결됩니다. 몸과 말의 행위를 제어하는 것인 계(戒)는 깊은 의미로는 사띠에 의한 삶의 단속으로 확장되고, 수행에서는 삼매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이때, (DN 16-대반열반경)이 말하는 [계의 완성 → 삼매의 완성 → 지혜의 완성 ⇒ 심(心)이 완전하게 번뇌에서 해탈함]의 체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戒)의 완성이 사띠에 의한 삼매의 완성을 위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戒)와 혜(慧)의 관계는 [계(戒)-사띠-삼매]와 혜(慧)의 관계로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DN 4-소나단다 경) 발췌】
● 부처님의 질문 → (DN 4.5-소나단다 경, 바라문의 개념)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04&wr_id=11
“그런데 바라문이여, 몇 가지 요소를 갖춘 바라문들을 바라문으로 규정합니까? ‘나는 바라문이다.’라고 말하는 자가 바르게 말하는 것이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까?”
● 소나단다 바라문의 대답 – 바라문의 정의
“pañcahi, bho gotama, aṅgehi samannāgataṃ brāhmaṇā brāhmaṇaṃ paññapenti; ‘brāhmaṇosmī’ti ca vadamāno sammā vadeyya, na ca pana musāvādaṃ āpajjeyya. katamehi pañcahi?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춘 바라문들을 바라문으로 규정합니다. ‘나는 바라문이다.’라고 말하는 자가 바르게 말하는 것이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라고. 어떤 다섯 가지입니까?
여기, 고따마 존자여, 여기 바라문은
1)[태생]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으로부터 잘 태어난 순수한 혈통이고, 태생에 관한 토론에서 칠대의 선조까지 멸시당하지 않고 비난받지 않습니다.
2)[베다] 베다를 공부하고, 만뜨라를 전승합니다. 세 가지 베다와 제사어휘와 문자와 어원과 다섯 번째로 역사를 통달했고, 베다의 문장에 숙달됐고, 문법을 알고, 대중철학과 대인상(大人相)에 대해 부족함이 없습니다.
3)[외모] 잘생기고, 볼만하고, 온화하고, 뛰어난 아름다운 용모를 갖추고, 범천(梵天)의 외모와 범천의 정력적 인상을 가져 만나 뵙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4)[계(戒)] 계(戒)를 중시하고, 존경스러운 성품을 가졌고, 존경스러운 계(戒)를 갖추었습니다.
5)[혜(慧)] 현명하고 지혜로워서 제물을 담는 국자를 쥐는 자들 가운데 첫 번째이거나 두 번째입니다.
● 이어지는 문답(1) – 그 요소들 가운데 한 가지를 제외할 수 있습니까?
[①태생-②만뜨라-③외모-④계(戒)-⑤혜(慧)] → [①태생-②만뜨라-④계(戒)-⑤혜(慧)] → [①태생-④계(戒)-⑤혜(慧)] → [④계(戒)-⑤혜(慧)]
“고따마 존자여, 이런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태생을 제외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태생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이
① 계(戒)를 중시하고, 존경스러운 성품을 가졌고, 존경스러운 계(戒)를 갖추었습니다.
② 현명하고 지혜로워서 제물을 담는 국자를 쥐는 자들 가운데 첫 번째이거나 두 번째일 때,
고따마 존자여, 이런 두 가지 요소를 갖춘 바라문들을 바라문으로 규정합니다. ‘나는 바라문이다.’라고 말하는 자가 바르게 말하는 것이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 이어지는 문답(2) – 계(戒)와 혜(慧) 중에서는 어느 한 가지도 제외할 수 없음 → (DN 4.6-소나단다 경, 계와 지혜 이야기)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04&wr_id=4
“바라문이여, 그런데 이들 두 가지 요소들 가운데 한 가지를 제외하고서 한 가지 요소를 갖춘 바라문으로써 바라문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바르게 말하는 자로서 ‘나는 바라문이다.’라고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시여, 계에 의해 청정해지는 것이 지혜이고, 지혜에 의해 청정해지는 것이 계입니다. 계가 있을 때 지혜가 있고, 지혜가 있을 때 계가 있습니다. 계를 가진 자에게 지혜가 있고, 지혜를 가진 자에게 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와 지혜가 세상에서 으뜸이라고 선언됩니다.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손으로 손을 씻고, 발로 발을 씻을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시여, 계에 의해 청정해지는 것이 지혜이고, 지혜에 의해 청정해지는 것이 계입니다. 계가 있을 때 지혜가 있고, 지혜가 있을 때 계가 있습니다. 계를 가진 자에게 지혜가 있고, 지혜를 가진 자에게 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와 지혜가 세상에서 으뜸이라고 선언됩니다.”
“그것은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그것은 그렇습니다, 바라문이여. 계에 의해 청정해지는 것이 지혜이고, 지혜에 의해 청정해지는 것이 계입니다. 계가 있을 때 지혜가 있고, 지혜가 있을 때 계가 있습니다. 계를 가진 자에게 지혜가 있고, 지혜를 가진 자에게 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와 지혜가 세상에서 으뜸이라고 선언됩니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손으로 손을 씻고, 발로 발을 씻을 것입니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계에 의해 청정해지는 것이 지혜이고, 지혜에 의해 청정해지는 것이 계입니다. 계가 있을 때 지혜가 있고, 지혜가 있을 때 계가 있습니다. 계를 가진 자에게 지혜가 있고, 지혜를 가진 자에게 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와 지혜가 세상에서 으뜸이라고 선언됩니다.”
“그런데 바라문이여, 무엇이 그 계이고, 무엇이 그 지혜입니까?” “고따마 존자여, 그 뜻에 관해서는 이 정도가 저희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이 말씀의 뜻을 설명해주시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그러면 바라문이여,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여.”라고 소나단다 바라문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사문과경의 수행체계를 설명). ― “여기 바라문이여, 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佛)-세존(世尊)인 여래(如來)가 세상에 출현합니다. 그는 신과 함께하고 마라와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과 사문-바라문과 함께하고 신과 사람과 함께하는 존재-생명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선언합니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고,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냅니다 … 이렇게 계로써 잘 단속하는, 계를 갖춘 그 비구는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적을 쳐부순,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은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합니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계로써 잘 단속하는, 계를 갖춘 그 비구는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합니다. 이런 성스러운 계온(戒蘊)을 갖춘 그는 안으로 피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바라문이여, 비구는 계를 갖춘 자입니다. 참으로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계(戒)입니다. …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 제이선(第二禪)을 … 제삼선(第三禪)을 …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 지(知)와 견(見)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이것도 지혜로써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이것도 지혜로써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