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에 대한 불교의 입장 - (DN 8)(기본기법회 180409)
▣ 고행에 대한 불교의 입장 - (DN 8)(기본기법회 180409)
[동영상] https://youtu.be/R9KlohpMmZA
mahāsīhanādasuttaṃ(DN 8-깟사빠 사자후 경)
ㅡ 세존은 전적으로 고행을 비난하나? 고행의 무의미함을 설명
고따마 존자시여,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ㅡ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모든 고행자와 거친 삶을 사는 자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비방한다.’라고.
깟사빠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모든 거친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비방한다.’라고 이렇게 말하는 자들은 나에 의해 말해진 것을 말하는 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하지 않는 것에 의해 거짓으로 나를 비난하는 것이다.
깟사빠여, 여기 나는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어떤 거친 삶을 사는 고행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여기 나는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어떤 거친 삶을 사는 고행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여기 나는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어떤 적은 고통의 삶을 사는 고행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여기 나는 인간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어떤 적은 고통의 삶을 사는 고행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이런 고행자들의 오고 감, 죽고 다시 태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아는 내가 어떻게 모든 고행을 비난하고, 모든 거친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비방하겠는가?
이렇게 말하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 고따마여, 이런 고행의 출발도 그 사문-바라문에게는 사문이라 불림이고 바라문이라 불림입니다. … [고행(苦行)①] … [고행(苦行)②] … [고행(苦行)③] … ”
“깟사빠여, [고행(苦行)①]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고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 이런 식으로 보름에 한 번만 음식을 먹으며 산다. 그에게 이것, 계(戒)의 구족과 심(心)의 구족과 혜(慧)의 구족은 닦아지지 않고 실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사문으로부터 멀고 바라문으로부터 멀다. 깟사빠여, 비구가 원망 없고 진에 없는 자애의 심(心)을 닦을 때 번뇌들의 부숨으로부터 번뇌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깟사빠여, 이것이 비구는 사문이라고도 바라문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 [고행(苦行)②] … [고행(苦行)③] …
이와 같이 말하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은 어렵고, 바라문은 어렵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세상에서 ‘사문은 어렵고, 바라문은 어렵다.’라는 것은 당연하다.
~ 그런데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물 긷는 하녀까지도 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고행(苦行)①] … [고행(苦行)②] … [고행(苦行)③] … 에 대해 ‘사문은 어렵고, 바라문은 어렵다.’라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고, 다른 것 즉 비구가 원망 없고 진에 없는 자애의 심(心)을 닦을 때 번뇌들의 부숨으로부터 번뇌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하다.
ayaṃ vuccati, kassapa, bhikkhu samaṇo itipi brāhmaṇo itipī”ti.
깟사빠여, 이것이 비구는 사문이라고도 바라문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고따마 존자시여, 무엇이 계(戒)의 구족이고, 무엇이 심(心)의 구족이고, 무엇이 혜(慧)의 구족입니까?”
⇒ 사문과경(沙門果經)의 수행체계로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