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제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에서 참고해야 하는 교리들
※ 참고할 교리 사항
1. 왜 남김 없는 소멸에 대한 질문이 적절하지 않은가?
“saṅkapparāgo purisassa kāmo,
nete kāmā yāni citrāni loke.
saṅkapparāgo purisassa kāmo,
tiṭṭhanti citrāni tatheva loke.
athettha dhīrā vinayanti chandan”ti. (AN 6.63-꿰뚫음 경)
사람의 소유의 사유는 탐(貪)이 함께한 사유이다.
세상에 있는 다채로운 것들은 소유의 사유들이 아니다.
사람의 소유의 사유는 탐(貪)이 함께한 사유이다.
세상에 있는 다채로운 것들은 단지 사실로서 머물 뿐이고,
여기서 현명한 사람들은 관심을 제어한다.
“na te kāmā yāni citrāni loke,
saṅkapparāgo purisassa kāmo.
tiṭṭhanti citrāni tatheva loke,
athettha dhīrā vinayanti chandaṃ. (SN 1.34-없음 경)
세상에 있는 다채로운 것들은 소유의 사유들이 아니다.
사람의 소유의 사유는 탐(貪)이 함께한 사유이다.
세상에 있는 다채로운 것들은 단지 사실로서 머물 뿐이고,
여기서 현명한 사람들은 관심을 제어한다.
2. 지수화풍(地水火風)의 공고한 기반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만약 덩어리진 자량(資糧)[단식(段食)]에 대한 탐(貪)이 있고 소망(所望)이 있고 애(愛)가 있으면 거기서 식(識)이 머물고 늘어난다. 식(識)이 머물고 늘어날 때 명색(名色)이 참여한다. 명색(名色)이 참여할 때 행(行)들이 성장한다. 행(行)들이 성장할 때 미래에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남이 있다. 미래에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남이 있을 때 미래의 생(生)과 노사(老死)가 있다. 미래의 생(生)과 노사(老死)가 있을 때, 비구들이여, 슬픔과 함께하고 고뇌와 함께하고 절망과 함께하는 그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
3. 식(識)이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나는 여기는 어디인가?
1) (AN 3.77-존재 경1) → 삼계(三界)[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 반복
“bhavo, bhavoti, bhante, vuccati. kittāvatā nu kho, bhante, bhavo hotī”ti?“대덕이시여, 존재, 존재라고 불립니다. 대덕이시여, 도대체 무엇이 존재입니까?”
“kāmadhātuvepakkañca, ānanda, kammaṃ nābhavissa, api nu kho kāmabhavo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iti kho, ānanda, kammaṃ khettaṃ, viññāṇaṃ bījaṃ, taṇhā sneho. avijjānīvaraṇānaṃ sattānaṃ taṇhāsaṃyojanānaṃ hīnāya dhātuyā viññāṇaṃ patiṭṭhitaṃ evaṃ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 hoti.
“아난다여, 욕계(慾界)의 보(報)를 초래하는 업(業)이 없다면 그래도 욕유(慾有)가 나타나지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아난다여, 이렇게 업(業)은 밭이고 식(識)은 씨앗이고 애(愛)는 양분-수분이다. 무명(無明)에 덮이고 갈애에 묶인 중생들에게 식(識)은 낮은 계(界)에 머문다. 이렇게 미래에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남이 있다.”
2) (SN 12.64-탐(貪) 있음 경) → 사식(四食)[단식(段食)-촉식(觸食)-의사(意思)식-식식(識食)]에 반복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북쪽이나 남쪽이나 동쪽으로 창이 있는 뾰족지붕 건물 또는 뾰족지붕 강당이 있다. 태양이 떠오를 때 창으로 빛이 들어오면 어디에 머물 것인가?" "서쪽 벽에 머물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약 서쪽 벽이 없다면 어디에 머물 것인가?" "땅에 머물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약 땅이 없다면 어디에 머물 것인가?" "물에 머물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약 물이 없다면 어디에 머물 것인가?" "머물지 못할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이처럼, 비구들이여, 만약 덩어리진 자량(資糧)[단식(段食)]에 대한 탐(貪)이 없고 소망(所望)이 없고 애(愛)가 없으면 … ”
4. 명(名)과 색(色)의 남김 없는 멈춤 → 형성하지 않음에 의한 해탈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에게 색(色)의 요소에 대한 탐(貪)이 버려지면, 탐(貪)의 버려짐 때문에 대상의 끊어짐이 있고, 식(識)의 머묾은 없다. 만약 수(受)의 요소에 대한 … 만약 상(想)의 요소에 대한 … 만약 행(行)의 요소에 대한 … 만약 비구에게 식(識)의 요소에 대한 탐(貪)이 버려지면, 탐(貪)의 버려짐 때문에 대상의 끊어짐이 있고, 식(識)의 머묾은 없다. 식(識)이 머물지 않고 자라지 않는 그것이 형성하지 않음에 의한 해탈이다. 해탈의 속성으로부터 안정이 있고, 안정의 속성으로부터 행복해지고, 행복의 속성으로부터 갈망하지 않는다. 갈망하지 않음에 의해 개별적으로 완전한 열반에 든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 해탈의 속성(vimuttatta) → 안정의 속성(ṭhitatta) → 행복의 속성(santusitatta) → 갈망하지 않음(na paritassati) → 개별적으로 완전히 꺼짐(paccattaññeva parinibbāyati)
• [(SN 22.78-사자 경) - 존재에 대한 외도의 관점] ‘aniccāva kira, bho, mayaṃ samānā niccamhāti amaññimha. addhuvāva kira, bho, mayaṃ samānā dhuvamhāti amaññimha. asassatāva kira, bho, mayaṃ samānā sassatamhāti amaññimha. mayampi kira, bho, aniccā addhuvā asassatā sakkāyapariyāpannā’ti. ‘존자들이여, 상(常)하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리는 무상(無常)합니다. 존자들이여, 안정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리는 안정되지 않습니다. 존자들이여, 우리는 영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리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우리는 무상(無常)하고, 안정되지 않고, 영원하지 않고, 유신(有身)에 속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