ādesanāpāṭihāriyaṃ (DN 11.3-께왓따 경, 신탁의 비범)
11. kevaṭṭasuttaṃ, ādesanāpāṭihāriyaṃ (DN 11.3-께왓따 경, 신탁의 비범)
그러면 께왓따여, 무엇이 신탁의 비범인가? 여기, 께왓따여, 비구는 다른 중생들, 다른 사람들의 심(心)을 말하고, 심(心)에 속한 것을 말하고, 생각이 떠오른 것을 말하고, 접근한 것을 말한다. ㅡ ‘그대의 의(意)는 이렇게도 있고, 그대의 의(意)는 이런 방법으로도 있고, 그대의 심(心)은 이렇게도 있다.’라고.
그 비구가 ‘그대의 의(意)는 이렇게도 있고, 그대의 의(意)는 이런 방법으로도 있고, 그대의 심(心)은 이렇게도 있다.’라고다른 중생들, 다른 사람들의 심(心)을 말하고, 심(心)에 속한 것을 말하고, 생각이 떠오른 것을 말하고, 접근한 것을 말하는 것을 믿음이 있고 분명함이 있는 어떤 비구가 본다.
그 믿음이 있고 분명함이 있는 비구는 어떤 믿음이 없고 분명함이 없는 자에게 말한다. ㅡ ‘존자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존자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사문에게 큰 신통과 큰 위엄이 있습니다. 나는 ‘그대의 의(意)는 이렇게도 있고, 그대의 의(意)는 이런 방법으로도 있고, 그대의 심(心)은 이렇게도 있다.’라고다른 중생들, 다른 사람들의 심(心)을 말하고, 심(心)에 속한 것을 말하고, 생각이 떠오른 것을 말하고, 접근한 것을 말하는 그런 비구를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그러면 그 믿음이 없고 분명함이 없는 자는 그 믿음이 있고 분명함이 있는 자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존자여, 마니까라는 이름의 명(明)이 있습니다. 그것에 의해 그 비구는 ‘그대의 의(意)는 이렇게도 있고, 그대의 의(意)는 이런 방법으로도 있고, 그대의 심(心)은 이렇게도 있다.’라고다른 중생들, 다른 사람들의 심(心)을 말하고, 심(心)에 속한 것을 말하고, 생각이 떠오른 것을 말하고, 접근한 것을 말합니다.’라고.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께왓따여, 믿음이 없고 분명함이 없는 그가 믿음이 있고 분명함이 있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말할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이렇게, 께왓따여, 신탁의 비범에 대한 위험을 보는 나는 신탁의 비범에 의해 걱정하고, 부끄러워하고, 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