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hiccasuttaṃ, lohiccabrāhmaṇānuyogo (DN 12.2-로힛짜 경, 로힛짜 바라문에 대한 질문)
12. lohiccasuttaṃ, lohiccabrāhmaṇānuyogo (DN 12.2-로힛짜 경, 로힛짜 바라문에 대한 질문)
509. atha kho lohicco brāhmaṇo bhagavantaṃ bhuttāviṃ onītapattapāṇiṃ aññataraṃ nīcaṃ āsanaṃ gah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aṃ kho lohiccaṃ brāhmaṇaṃ bhagavā etadavoca — “saccaṃ kira te, lohicca, evarūpaṃ pāpakaṃ diṭṭhigataṃ uppannaṃ — ‘idha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kusalaṃ dhammaṃ adhigaccheyya, kusalaṃ dhammaṃ adhigantvā na parassa āroceyya — kiñhi paro parassa karissati. seyyathāpi nāma purāṇaṃ bandhanaṃ chinditvā aññaṃ navaṃ bandhanaṃ kareyya, evaṃ sampadamidaṃ pāpakaṃ lobhadhammaṃ vadāmi, kiñhi paro parassa karissatī’” ti? “evaṃ, bho gotama”. “taṃ kiṃ maññasi lohicca nanu tvaṃ sālavatikaṃ ajjhāvasasī”ti? “evaṃ, bho gotama”. “yo nu kho, lohicca, evaṃ vadeyya — ‘lohicco brāhmaṇo sālavatikaṃ ajjhāvasati. yā sālavatikāya samudayasañjāti lohiccova taṃ brāhmaṇo ekako paribhuñjeyya, na aññesaṃ dadeyyā’ti. evaṃ vādī so ye taṃ upajīvanti, tesaṃ antarāyakaro vā hoti, no vā”ti?
식사를 마친 세존이 발우에서 손을 떼자 로힛짜 바라문은 다른 낮은 자리를 잡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로힛짜 바라문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로힛짜여, 그대에게 ‘여기, 사문이나 바라문이 선법(善法)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선법을 얻은 뒤에 남을 위해 가르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남이 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예를 들면, 앞에 있던 속박을 자른 뒤에 새로운 다른 속박을 만들 것이다. 이런 악(惡)한 탐법(貪法)[탐(貪)과 함께한 행위 → 십악업(十惡業)]이 이렇게 얻어진다고 나는 말한다. 남이 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악한 견해가 생긴 것이 사실입니까?”라고.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어떤 사람이 ‘로힛짜 바라문은 살라와띠까에 정착해서 산다. 로힛짜 바라문은 살라와띠에서 생산되고 산출되는 것을 오직 혼자서 사용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그대를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장애를 만드는 자입니까, 아닙니까?”
“장애를 만드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어.” “장애를 만드는 자는 그들에게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는 자입니까, 아니면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입니까?”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에게 그들에 대해 있었던 심(心)은 자애(慈愛)입니까, 아니면 적의(敵意)입니까?[어떤 심(心)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까?]” “적의(敵意)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의의 심(心)이 있었을 때 삿된 견해가 있습니까, 아니면 바른 견해가 있습니까?” “삿된 견해가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 지옥이나 축생의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한 곳을 나는 말합니다.”
“로힛짜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까시꼬살라에 정착해서 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어떤 사람이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꼬살라에 정착해서 산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꼬살라에서 생산되고 산출되는 것을 오직 혼자서 사용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을 의지하는 그대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장애를 만드는 자입니까, 아닙니까?”
“장애를 만드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어.” “장애를 만드는 자는 그들에게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는 자입니까, 아니면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입니까?”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에게 그들에 대해 있었던 심(心)은 자애(慈愛)입니까, 아니면 적의(敵意)입니까?[어떤 심(心)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까?]” “적의(敵意)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의의 심(心)이 있었을 때 삿된 견해가 있습니까, 아니면 바른 견해가 있습니까?” “삿된 견해가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 지옥이나 축생의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한 곳을 나는 말합니다.”
“그렇듯, 로힛짜여, 어떤 사람이 ‘로힛짜 바라문은 살라와띠까에 정착해서 산다. 로힛짜 바라문은 살라와띠까에서 생산되고 산출되는 것을 오직 혼자서 사용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그대를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장애를 만드는 자입니다. 장애를 만드는 자는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입니다,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에게 있었던 심(心)은 적의(敵意)입니다[적의의 심(心)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적의의 심(心)이 있었을 때 삿된 견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로힛짜여, 어떤 사람이 ‘여기, 사문이나 바라문이 선법(善法)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선법을 얻은 뒤에 남을 위해 가르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남이 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예를 들면, 앞에 있던 속박을 자른 뒤에 새로운 다른 속박을 만들 것이다. 이런 악(惡)한 탐법(貪法)[탐(貪)과 함께한 행위 → 십악업(十惡業)]이 이렇게 얻어진다고 나는 말한다. 남이 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여래(如來)에 의해 선언된 법(法)과 율(律)로 온 것을 원인으로 이렇게 고귀한 차이를 성취하여 예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일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불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아라한 됨을 실현하기도 하는 그들 좋은 가문의 아들들, 그리고 신들의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 신들의 모태가 성숙되는 사람들에게 장애를 만드는 자입니다. 장애를 만드는 자는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입니다,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에게 있었던 심(心)은 적의(敵意)입니다[적의의 심(心)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적의의 심(心)이 있었을 때 삿된 견해가 있습니다.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 지옥이나 축생의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한 곳을 나는 말합니다.”
“그렇듯, 로힛짜여, 어떤 사람이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까시꼬살라에 정착해서 산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까시꼬살라에서 생산되고 산출되는 것을 오직 혼자서 사용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을 의지하는 그대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장애를 만드는 자입니다. 장애를 만드는 자는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입니다,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에게 있었던 심(心)은 적의(敵意)입니다[적의의 심(心)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적의의 심(心)이 있었을 때 삿된 견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로힛짜여, 어떤 사람이 ‘여기, 사문이나 바라문이 선법(善法)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선법을 얻은 뒤에 남을 위해 가르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남이 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예를 들면, 앞에 있던 속박을 자른 뒤에 새로운 다른 속박을 만들 것이다. 이런 악(惡)한 탐법(貪法)[탐(貪)과 함께한 행위 → 십악업(十惡業)]이 이렇게 얻어진다고 나는 말한다. 남이 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여래(如來)에 의해 선언된 법(法)과 율(律)로 온 것을 원인으로 이렇게 고귀한 차이를 성취하여 예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일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불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아라한 됨을 실현하기도 하는 그들 좋은 가문의 아들들, 그리고 신들의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 신들의 모태가 성숙되는 사람들에게 장애를 만드는 자입니다. 장애를 만드는 자는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입니다, 연민에 의한 이익을 주지 않는 자에게 있었던 심(心)은 적의(敵意)입니다[적의의 심(心)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적의의 심(心)이 있었을 때 삿된 견해가 있습니다.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 지옥이나 축생의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한 곳을 나는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