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tevijjasuttaṃ, aciravatīnadīupamā (DN 13.6-삼명(三明) 경, 아찌라와띠 강의 비유)
13. tevijjasuttaṃ, aciravatīnadīupamā (DN 13.6-삼명(三明) 경, 아찌라와띠 강의 비유)
“예를 들면, 와셋타여, 이 아찌라와띠 강이 물이 가득차고,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댄다. 거기에 저쪽 강둑을 원하고, 저쪽 강둑을 갈망하고, 저쪽 강둑으로 가야하고, 저쪽 강둑으로 건너기를 원하는 어떤 사람이 올 것이다. 이쪽 강둑에 선 그는 ‘저쪽 강둑이여, 이쪽으로 오라. 저쪽 강둑이여, 이쪽으로 오라.’라고 요청할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와셋타여, 그 사람의 요청을 원인으로, 기도를 원인으로, 기대를 원인으로, 기뻐함을 원인으로 아찌라 강의 저쪽 강둑이 이쪽 강둑으로 오겠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와 같이, 와셋타여, 바라문이 행해야 하는 법을 버리고 바라문이 행하지 않아야 하는 법을 수용하는 삼명(三明) 바라문들은 이렇게 말한다. ㅡ ‘우리는 인다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소마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와루나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이사나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빠자빠띠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범천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마힛디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야마를 요청합니다.’라고.
와셋타여, ‘바라문이 행해야 하는 법을 버리고 바라문이 행하지 않아야 하는 법을 수용하는 그 삼명(三明) 바라문들이 요청을 원인으로, 기도를 원인으로, 기대를 원인으로, 기뻐함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의 동료로 태어날 것이다.’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
예를 들면, 와셋타여, 이 아찌라와띠 강이 물이 가득차고,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댄다. 거기에 저쪽 강둑을 원하고, 저쪽 강둑을 갈망하고, 저쪽 강둑으로 가야하고, 저쪽 강둑으로 건너기를 원하는 어떤 사람이 올 것이다. 튼튼한 사슬로 손이 등 뒤로 묶이고, 튼튼한 줄에 묶인 그가 이쪽 강둑에 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와셋타여, 그 사람이 아찌라 강의 이쪽 강둑에서 저쪽 강둑으로 갈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와 같이, 와셋타여, 성스러운 율(律)에서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은 사슬이라고도 족쇄라고도 불린다. 어떤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의 사유를 수반하며 좋아하기 마련인 안(眼)으로 인식되는 색(色)들, … 이(耳)로 인식되는 성(聲)들, … 비(鼻)로 인식되는 향(香)들, … 설(舌)로 인식되는 미(味)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의 사유를 수반하며 좋아하기 마련인 신(身)으로 인식되는 촉(觸)들이다.
와셋타여, 성스러운 율(律)에서 이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은 사슬이라고도 족쇄라고도 불린다. 와셋타여,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의 지혜가 없는 삼명(三明) 바라문들은 이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을 욕심내고, 푹 빠지고, 묶여있기 때문에 즐긴다. 와셋타여,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의 지혜가 없고, 즐기고, 소유의 사유의 사슬과 족쇄에 묶인, 바라문이 행해야 하는 법을 버리고 바라문이 행하지 않아야 하는 법을 수용하는 그 삼명(三明) 바라문들이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을 욕심내고, 푹 빠지고, 묶여있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의 동료로 태어날 것이다.’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
예를 들면, 와셋타여, 이 아찌라와띠 강이 물이 가득차고,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댄다. 거기에 저쪽 강둑을 원하고, 저쪽 강둑을 갈망하고, 저쪽 강둑으로 가야하고, 저쪽 강둑으로 건너기를 원하는 어떤 사람이 올 것이다. 그가 이쪽 강둑에서 머리까지 덮은 채 누워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와셋타여, 그 사람이 아찌라 강의 이쪽 강둑에서 저쪽 강둑으로 갈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와 같이, 와셋타여, 성스러운 율(律)에서 다섯 가지 장애는 덮개라고도 불리고, 장애라고도 불리고, 장막이라고도 불리고, 복개라고도 불린다. 어떤 다섯인가? 소유의 관심의 장애, 진에(瞋恚)의 장애, 해태-혼침의 장애, 들뜸-후회의 장애, 의심의 장애이다. 와셋타여, 성스러운 율(律)에서 이 다섯 가지 장애는 덮개라고도 불리고, 장애라고도 불리고, 장막이라고도 불리고, 복개라고도 불린다.
와셋타여, 삼명(三明) 바라문들은 이 다섯 가지 장애에 의해 덮여 있고, 장애받고 있고, 장막에 가려져 있고, 복개되어 있다. 와셋타여, ‘바라문이 행해야 하는 법을 버리고 바라문이 행하지 않아야 하는 법을 수용하는 그 삼명(三明) 바라문들이 다섯 가지 장애에 의해 덮여 있고, 장애받고 있고, 장막에 가려져 있고,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의 동료로 태어날 것이다.’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