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hāpadānasuttaṃ, bodhisattābhiniveso (DN 14.11-대전기경, 보살의 희망)
1. mahāpadānasuttaṃ, bodhisattābhiniveso (DN 14.11-대전기경, 보살의 희망)
비구들이여, 외딴 곳에 가서 홀로 머무는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심(心)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다. ㅡ ‘참으로 세상에서 고통을 겪는 이 존재는 태어나고, 늙고, 죽고, 또 윤회하여 태어난다. 그러나 늙고 죽는 이 괴로움의 해방(解放)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언제나 늙고 죽는 이 괴로움의 해방(解放)이 꿰뚫어 알려질 것인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있을 때 노사(老死)가 있고, 무엇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가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생(生)이 있을 때 노사(老死)가 있고, 생(生)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가 생긴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있을 때 생(生)이 있고, 무엇의 조건으로부터 생(生)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유(有)가 있을 때 생(生)이 있고, 유(有)의 조건으로부터 생(生)이 생긴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있을 때 유(有)가 있고, 무엇의 조건으로부터 유(有)가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취(取)가 있을 때 유(有)가 있고, 취(取)의 조건으로부터 유(有)가 생긴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있을 때 취(取)가 있고, 무엇의 조건으로부터 취(取)가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애(愛)가 있을 때 취(取)가 있고, 애(愛)의 조건으로부터 취(取)가 생긴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있을 때 애(愛)가 있고, 무엇의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수(受) 있을 때 애(愛)가 있고, 수(受)의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생긴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있을 때 수(受)가 있고, 무엇의 조건으로부터 수(受)가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촉(觸)이 있을 때 수(受)가 있고, 촉(觸)의 조건으로부터 수(受)가 생긴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있을 때 촉(觸)이 있고, 무엇의 조건으로부터 촉(觸)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육입(六入)이 있을 때 촉(觸)이 있고, 육입(六入)의 조건으로부터 촉(觸)이 생긴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있을 때 육입(六入)이 있고, 무엇의 조건으로부터 육입(六入)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명색(名色)이 있을 때 육입(六入)이 있고,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육입(六入)이 생긴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있을 때 명색(名色)이 있고, 무엇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식(識)이 있을 때 명색(名色)이 있고, 식(識)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생긴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있을 때 식(識)이 있고, 무엇의 조건으로부터 식(識)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명색(名色)이 있을 때 식(識)이 있고,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식(識)이 생긴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이 식(識)은 되돌아간다. 명색(名色)으로부터 더 나아가지 못한다. 그 안에서 태어나거나, 늙거나, 죽거나, 또 윤회하여 태어난다. 즉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식(識)이 있다. 식(識)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있다.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육입(六入)이 있다. 육입(六入)의 조건으로부터 촉(觸)이 있다. …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무더기[고온(苦蘊)]의 자라남[집(集)]이 있다.
비구들이여, 위빳시 보살에게 ‘자라남, 자라남’이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다. 지(知)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명(明)이 생겼다. 광(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없을 때 노사(老死)가 없고, 무엇의 멸(滅)로부터 노사(老死)가 멸(滅)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생(生)이 없을 때 노사(老死)가 없고, 생(生)의 멸(滅)로부터 노사(老死)가 멸(滅)한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없을 때 생(生)이 없고, 무엇의 멸(滅)로부터 생(生)이 멸(滅)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유(有)가 없을 때 생(生)이 없고, 유(有)의 멸(滅)로부터 생(生)이 멸(滅)한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없을 때 유(有)가 없고, 무엇의 멸(滅)로부터 유(有)가 멸(滅)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취(取)가 없을 때 유(有)가 없고, 취(取)의 멸(滅)로부터 유(有)가 멸(滅)한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없을 때 취(取)가 없고, 무엇의 멸(滅)로부터 취(取)가 멸(滅)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애(愛)가 없을 때 취(取)가 없고, 애(愛)의 멸(滅)로부터 취(取)가 멸(滅)한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없을 때 애(愛)가 없고, 무엇의 멸(滅)로부터 애(愛)가 멸(滅)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수(受)가 없을 때 애(愛)가 없고, 수(受)의 멸(滅)로부터 애(愛)가 멸(滅)한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없을 때 수(受)가 없고, 무엇의 멸(滅)로부터 수(受)가 멸(滅)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촉(觸)이 없을 때 수(受)가 없고, 촉(觸)의 멸(滅)로부터 수(受)가 멸(滅)한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없을 때 촉(觸)이 없고, 무엇의 멸(滅)로부터 촉(觸)이 멸(滅)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육입(六入)이 없을 때 촉(觸)이 없고, 육입(六入)의 멸(滅)로부터 촉(觸)가 멸(滅)한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없을 때 육입(六入)이 없고, 무엇의 멸(滅)로부터 육입(六入)이 멸(滅)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명색(名色)이 없을 때 육입(六入)이 없고, 명색(名色)의 멸(滅)로부터 육입(六入)이 멸(滅)한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없을 때 명색(名色)이 없고, 무엇의 멸(滅)로부터 명색(名色)이 멸(滅)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식(識)이 없을 때 명색(名色)이 없고, 식(識)의 멸(滅)로부터 명색(名色)이 멸(滅)한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무엇이 없을 때 식(識)이 없고, 무엇의 멸(滅)로부터 식(識)이 멸(滅)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명색(名色)이 없을 때 식(識)이 없고, 명색(名色)의 멸(滅)로부터 식(識)이 멸(滅)한다.’라는 지혜의 관통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통해서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나에게 깨달음을 위한 이 길이 얻어졌다. 즉 명색(名色)의 멸(滅)로부터 식(識)의 멸(滅)이 있다. 식(識)의 멸(滅)로부터 명색(名色)의 멸(滅)이 있다. 명색(名色)의 멸(滅)로부터 육입(六入)의 멸(滅)이 있다. 육입(六入)의 멸(滅)로부터 촉(觸)의 멸(滅)이 있다. 촉(觸)의 멸(滅)로부터 수(受)의 멸(滅)이 있다. 수(受)의 멸(滅)로부터 애(愛)의 멸(滅)이 있다. 애(愛)의 멸(滅)로부터 취(取)의 멸(滅)이 있다. 취(取)의 멸(滅)로부터 유(有)의 멸(滅)이 있다. 유(有)의 멸(滅)로부터 생(生)의 멸(滅)이 있다. 생(生)의 멸(滅)로부터 노사(老死)의 멸(滅)이 있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무더기[고온(苦蘊)]의 멸(滅)이 있다.’라고.
비구들이여, 위빳시 보살에게 ‘소멸, 소멸’이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다. 지(知)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명(明)이 생겼다. 광(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그런 위빳시 보살은 나중에 오취온(五取蘊)에서 자라남-줄어듦을 이어 보면서 머물렀다. ㅡ ‘이렇게 색(色)이 있고, 이렇게 색(色)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색(色)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수(受)가 있고, 이렇게 수(受)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수(受)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상(想)이 있고, 이렇게 상(想)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상(想)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행(行)들이 있고, 이렇게 행(行)들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행(行)들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식(識)이 있고, 이렇게 식(識)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식(識)의 줄어듦이 있다.’라고. 오취온(五取蘊)에서 자라남-줄어듦을 이어 보면서 머무는 그에게 오래지 않아서 집착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번뇌들로부터 심(心)이 해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