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hānidānasuttaṃ, paṭiccasamuppādo (DN 15.1-대인연경(大因緣經) 연기(緣起))
mahānidānasuttaṃ, paṭiccasamuppādo (DN 15.1-대인연경(大因緣經) 연기(緣起))
이렇게 나는 들었다. ㅡ 한때 세존은 꾸루에서 깜마사담마라는 이름의 꾸루의 마을에 머물렀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에게 갔다. 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대덕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대덕이시여, 최고로 심오하고 이 연기(緣起)는 심오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저에게 분명하고 분명하게 드러납니다.”라고.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이 연기(緣起)는 심오하고 심오하게 드러난다. 아난다여, 이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실타래처럼 얽혀있고, 가문으로 매듭지어졌고, 문자 풀 같은 존재인 사람들은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윤회를 넘어서지 못한다.
“아난다여, ‘여기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가 있습니까?’라는 이런 질문이 있으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한다. 만약 ‘어떤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가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해진다면 ‘생(生)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가 있다.’라고 이렇게 대답해야한다.
“아난다여, ‘여기의 조건으로부터 생(生)이 있습니까?’라는 이런 질문이 있으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한다. 만약 ‘어떤 조건으로부터 생(生)이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해진다면 ‘유(有)의 조건으로부터 생(生)이 있다.’라고 이렇게 대답해야한다.
“아난다여, ‘여기의 조건으로부터 유(有)가 있습니까?’라는 이런 질문이 있으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한다. 만약 ‘어떤 조건으로부터 유(有)가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해진다면 ‘취(取)의 조건으로부터 유(有)가 있다.’라고 이렇게 대답해야한다.
“아난다여, ‘여기의 조건으로부터 취(取)가 있습니까?’라는 이런 질문이 있으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한다. 만약 ‘어떤 조건으로부터 취(取)가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해진다면 ‘애(愛)의 조건으로부터 취(取)가 있다.’라고 이렇게 대답해야한다.
“아난다여, ‘여기의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있습니까?’라는 이런 질문이 있으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한다. 만약 ‘어떤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해진다면 ‘수(受)의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있다.’라고 이렇게 대답해야한다.
“아난다여, ‘여기의 조건으로부터 수(受)가 있습니까?’라는 이런 질문이 있으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한다. 만약 ‘어떤 조건으로부터 수(受)가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해진다면 ‘촉(觸)의 조건으로부터 수(受)가 있다.’라고 이렇게 대답해야한다.
“아난다여, ‘여기의 조건으로부터 촉(觸)이 있습니까?’라는 이런 질문이 있으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한다. 만약 ‘어떤 조건으로부터 촉(觸)이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해진다면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촉(觸)이 있다.’라고 이렇게 대답해야한다.
“아난다여, ‘여기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있습니까?’라는 이런 질문이 있으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한다. 만약 ‘어떤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해진다면 ‘식(識)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있다.’라고 이렇게 대답해야한다.
“아난다여, ‘여기의 조건으로부터 식(識)이 있습니까?’라는 이런 질문이 있으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한다. 만약 ‘어떤 조건으로부터 식(識)이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해진다면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식(識)이 있다.’라고 이렇게 대답해야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식(識)이 있다. 식(識)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있다.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촉(觸)이 있다. 촉(觸)의 조건으로부터 수(受)가 있다. 수(受)의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있다. 애(愛)의 조건으로부터 취(取)가 있다. 취(取)의 조건으로부터 유(有)가 있다. 유(有)의 조건으로부터 생(生)이 있다. 생(生)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긴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일어남이 있다.
“‘생(生)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가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생(生)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가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신들이 신으로, 간답바들이 간답바로, 약카들이 약카로, 존재들이 존재로, 사람들이 사람으로, 네발 달린 것들이 네발 달린 것으로, 새들이 새로, 파충류들이 파충류로 등과 같은 생(生)이 없다면, 그때 이런저런 중생들에게 그것을 위한 생(生)은 없을 것이다. 모두로부터 생(生)이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생(生)의 멸(滅)로부터 노사(老死)를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노사(老死)에게 오직 생(生)이 원인이고, 생(生)이 인연이고, 생(生)이 일어남이고, 생(生)이 조건이다.
‘유(有)의 조건으로부터 생(生)이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유(有)의 조건으로부터 생(生)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욕유(慾有)거나 색유(色有)거나 무색유(無色有) 등과 같은 유(有)가 없다면, 모두로부터 유(有)가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유(有)의 멸(滅)로부터 생(生)을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생(生)에게 오직 유(有)가 원인이고, 유(有)가 인연이고, 유(有)가 일어남이고, 유(有)가 조건이다.
‘취(取)의 조건으로부터 유(有)가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취(取)의 조건으로부터 유(有)가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욕취(慾取), 견취(見取), 계금취(戒禁取), 아어취(我語取) 등과 같은 취(取)가 없다면, 모두로부터 취(取)가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취(取)의 멸(滅)로부터 유(有)를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유(有)에게 오직 취(取)가 원인이고, 취(取)가 인연이고, 취(取)가 일어남이고, 취(取)가 조건이다.
‘애(愛)의 조건으로부터 취(取)가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애(愛)의 조건으로부터 취(取)가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색애(色愛), 성애(聲愛), 향애(香愛), 미애(味愛), 촉애(觸愛), 법애(法愛) 등과 같은 애(愛)가 없다면, 모두로부터 애(愛)가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애(愛)의 멸(滅)로부터 취(取)를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취(取)에게 오직 애(愛)가 원인이고, 애(愛)가 인연이고, 애(愛)가 일어남이고, 애(愛)가 조건이다.
‘수(受)의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수(受)의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수(受)가 없다면, 모두로부터 안촉생수(眼觸生受), 이촉생수(耳觸生受), 비촉생수(鼻觸生受), 설촉생수(舌觸生受), 신촉생수(身觸生受), 의촉생수(意觸生受) 등과 같은 수(受)가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수(受)의 멸(滅)로부터 애(愛)를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애(愛)에게 오직 수(受)가 원인이고, 수(受)가 인연이고, 수(受)가 일어남이고, 수(受)가 조건이다.
아난다여, 이렇게 이 수(受)를 연(緣)하여 애(愛)가 있다. 애(愛)를 연(緣)하여 조사가 있다. 조사를 연(緣)하여 습득이 있다. 습득을 연(緣)하여 차별이 있다. 차별을 연(緣)하여 욕탐(欲貪)이 있다. 욕탐을 연(緣)하여 묶임이 있다. 묶임을 연(緣)하여 잡음이 있다. 잡음을 연(緣)하여 인색이 있다. 인색을 연(緣)하여 보호가 있다. 보호를 위해 몽둥이를 들고 칼을 들고, 싸우고, 다투고, 분쟁하고, 서로서로 이간하고, 거짓말하는 여러 가지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이 생겨난다.
‘보호를 위해 몽둥이를 들고 칼을 들고, 싸우고, 다투고, 분쟁하고, 서로서로 이간하고, 거짓말하는 여러 가지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이 생겨난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보호를 위해 몽둥이를 들고 칼을 들고, 싸우고, 다투고, 분쟁하고, 서로서로 이간하고, 거짓말하는 여러 가지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이 생겨난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보호가 없다면, 모두로부터 보호가 없을 때, 그렇다 해도 보호의 멸(滅)로부터 ‘몽둥이를 들고 칼을 들고, 싸우고, 다투고, 분쟁하고, 서로서로 이간하고, 거짓말하는 여러 가지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이 생겨남‘이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몽둥이를 들고 칼을 들고, 싸우고, 다투고, 분쟁하고, 서로서로 이간하고, 거짓말하는 여러 가지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이 생겨남’에게 오직 보호가 원인이고, 보호가 인연이고, 보호가 일어남이고, 보호가 조건이다.
‘인색을 연(緣)하여 보호가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인색을 연(緣)하여 보호가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인색이 없다면, 모두로부터 인색이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인색의 멸(滅)로부터 보호를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보호에게 오직 인색이 원인이고, 인색이 인연이고, 인색이 일어남이고, 인색이 조건이다.
‘잡음을 연(緣)하여 인색이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잡음을 연(緣)하여 인색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잡음이 없다면, 모두로부터 잡음이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잡음의 멸(滅)로부터 인색을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인색에게 오직 잡음이 원인이고, 잡음이 인연이고, 잡음이 일어남이고, 잡음이 조건이다.
‘묶임을 연(緣)하여 잡음이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묶임을 연(緣)하여 잡음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묶임이 없다면, 모두로부터 묶임이 없을 때, 그렇다 해도 묶임의 멸(滅)로부터 잡음을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잡음에게 오직 묶임이 원인이고, 묶임이 인연이고, 묶임이 일어남이고, 묶임이 조건이다.
‘욕탐(欲貪)을 연(緣)하여 묶임이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욕탐(欲貪)을 연(緣)하여 묶임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욕탐(欲貪)이 없다면, 모두로부터 욕탐(欲貪)이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욕탐(欲貪)의 멸(滅)로부터 묶임을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묶임에게 오직 욕탐(欲貪)이 원인이고, 욕탐(欲貪)이 인연이고, 욕탐(欲貪)이 일어남이고, 욕탐(欲貪)이 조건이다.
‘차별을 연(緣)하여 욕탐(欲貪)이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차별을 연(緣)하여 욕탐(欲貪)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차별이 없다면, 모두로부터 차별이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차별의 멸(滅)로부터 욕탐(欲貪)을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욕탐(欲貪)에게 오직 차별이 원인이고, 차별이 인연이고, 차별이 일어남이고, 차별이 조건이다.
‘습득을 연(緣)하여 차별이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습득을 연(緣)하여 차별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습득이 없다면, 모두로부터 습득이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습득의 멸(滅)로부터 차별을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차별에게 오직 습득이 원인이고, 습득이 인연이고, 습득이 일어남이고, 습득이 조건이다.
‘조사를 연(緣)하여 습득이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조사를 연(緣)하여 습득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조사가 없다면, 모두로부터 조사가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조사의 멸(滅)로부터 습득을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습득에게 오직 조사가 원인이고, 조사가 인연이고, 조사가 일어남이고, 조사가 조건이다.
‘애(愛)를 연(緣)하여 조사가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애(愛)를 연(緣)하여 조사가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욕애(慾愛), 색애(色愛), 무유애(無有愛) 등과 같은 애(愛)가 없다면, 모두로부터 애(愛)가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애(愛)의 멸(滅)로부터 조사를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조사에게 오직 애(愛)가 원인이고, 애(愛)가 인연이고, 애(愛)가 일어남이고, 애(愛)가 조건이다. 아난다여, 이렇게 이 두 개의 법들은 한 쌍의 수(受)에 의한 하나의 합류점이 된다.
‘촉(觸)을 연(緣)하여 수(受)가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촉(觸)을 연(緣)하여 수(受)가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모두에게 안촉(眼觸), 이촉(耳觸), 비촉(鼻觸), 설촉(舌觸), 신촉(身觸), 의촉(意觸) 등과 같은 촉(觸)이 없다면, 모두로부터 촉(觸)이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촉(觸)의 멸(滅)로부터 수(受)를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수(受)에게 오직 촉(觸)이 원인이고, 촉(觸)이 인연이고, 촉(觸)이 일어남이고, 촉(觸)이 조건이다.
‘명색(名色)을 연(緣)하여 촉(觸)이 있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명색(名色)을 연(緣)하여 촉(觸)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명(名)의 무리의 개념을 있게 하는 상태, 표시, 상(相), 징후가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색(色)의 무리에 대해 이름을 초래하는 촉(觸)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아난다여, 색(色)의 무리의 개념을 있게 하는 상태, 표시, 상(相), 징후가 없을 때, 그렇다 해도 명(名)의 무리에 대해 저항을 초래하는 촉(觸)을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아난다여, 명(名)의 무리와 색(色)의 무리의 개념을 있게 하는 상태, 표시, 상(相), 징후가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이름을 초래하는 촉(觸)[이름의 촉(觸)]이나 저항을 초래하는 촉(觸)[저항의 촉(觸)]을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아난다여, 명색(名色)의 개념을 있게 하는 상태, 표시, 상(相), 징후가 없을 때, 그렇다 해도 촉(觸)을 선언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촉(觸)에게 오직 명색(名色)이 원인이고, 명색(名色)이 인연이고, 명색(名色)이 일어남이고, 명색(名色)이 조건이다.
“‘식(識)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식(識)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식(識)이 모태(母胎)에 들어오지 않는데도 명색(名色)이 모태(母胎)에서 공고해지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아난다여, 식(識)이 모태에 들어온 뒤에 잘못되었는데도 명색(名色)이 금생(今生)을 위해 재현되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아난다여, 식(識)이 어린 남녀 아이에게서 끊어졌는데도 명색이 늘어나고 자라고 충만하게 되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명색(名色)에게 오직 식(識)이 원인이고, 식(識)이 인연이고, 식(識)이 일어남이고, 식(識)이 조건이다.”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식(識)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명색을 조건으로 식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식이 명색에 머묾을 얻지 못했는데도 미래에 생(生)과 노사(老死)라는 고(苦)의 자라남을 위한 근본을 선언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오직 명색이 식의 원인이고, 명색이 식의 인연이고, 명색이 식의 자라남이고, 명색이 식의 조건이다. 아난다여, 명색의 식과 함께 서로 조건 됨이 지속되는 그 범위에서 태어나고, 늙고, 죽고, 옮겨가고, 다시 태어난다. 그 범위에서 이름이 적용되고, 그 범위에서 언어가 적용되고, 그 범위에서 개념이 적용되고, 그 범위가 지혜의 영역이고, 그 범위에서 금생(今生)을 선언함으로써 윤회를 지속한다."(241219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