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mahānidānasuttaṃ, attapaññatti (DN 15.2-아(我)의 선언)
2. mahānidānasuttaṃ, attapaññatti (DN 15.2-아(我)의 선언)
아(我)를 선언하는 자는, 아난다여, 어디까지 선언하는가? 색(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는 자는, ‘나의 아(我)는 색(色)을 가졌고 작다.’라고 선언한다. 색(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는 자는, ‘나의 아(我)는 색(色)을 가졌고 무한하다.’라고 선언한다. 무색(無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는 자는, ‘나의 아(我)는 무색(無色)을 가졌고 작다.’라고 선언한다. 무색(無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는 자는, ‘나의 아(我)는 무색(無色)을 가졌고 무한하다.’라고 선언한다.
거기서, 아난다여, 색(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는 자는 여기[금생(今生)]에서 색(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거나, ‘비록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거기[내생(來生)]에서 색(色)을 가진 작은 아(我)가 될 것을 선언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색(色)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작은 아(我)라는 회의적 견해가 잠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거기서, 아난다여, 색(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는 자는 여기[금생(今生)]에서 색(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거나, ‘비록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거기[내생(來生)]에서 색(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가 될 것을 선언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색(色)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무한한 아(我)라는 회의적 견해가 잠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거기서, 아난다여, 무색(無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는 자는 여기[금생(今生)]에서 무색(無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거나, ‘비록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거기[내생(來生)]에서 무색(無色)을 가진 작은 아(我)가 될 것을 선언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무색(無色)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작은 아(我)라는 회의적 견해가 잠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거기서, 아난다여, 무색(無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는 자는 여기[금생(今生)]에서 무색(無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거나, ‘비록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거기[내생(來生)]에서 무색(無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가 될 것을 선언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무색(無色)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무한한 아(我)라는 회의적 견해가 잠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아(我)를 선언하는 자는, 아난다여, 여기까지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