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mahānidānasuttaṃ, nāttapaññatti (DN 15.3-아(我)를 선언하지 않음)
2. mahānidānasuttaṃ, nāttapaññatti (DN 15.3-아(我)를 선언하지 않음)
아(我)를 선언하지 않는 자는, 아난다여, 어디까지 선언하지 않는가? 색(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지 않는 자는 ‘나의 아(我)는 색(色)을 가졌고 작다.’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색(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지 않는 자는 ‘나의 아(我)는 색(色)을 가졌고 무한하다.’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무색(無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지 않는 자는 ‘나의 아(我)는 무색(無色)을 가졌고 작다.’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무색(無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지 않는 자는 ‘나의 아(我)는 무색(無色)을 가졌고 무한하다.’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거기서, 아난다여, 색(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지 않는 자는 여기[금생(今生)]에서 색(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지 않거나, ‘비록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거기[내생(來生)]에서 색(色)을 가진 작은 아(我)가 될 것을 선언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난다여, ‘색(色)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작은 아(我)라는 회의적 견해가 잠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거기서, 아난다여, 색(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지 않는 자는 여기[금생(今生)]에서 색(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지 않거나, ‘비록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거기[내생(來生)]에서 색(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가 될 것을 선언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난다여, ‘색(色)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무한한 아(我)라는 회의적 견해가 잠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거기서, 아난다여, 무색(無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지 않는 자는 여기[금생(今生)]에서 무색(無色)을 가진 작은 아(我)를 선언하지 않거나, ‘비록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거기[내생(來生)]에서 무색(無色)을 가진 작은 아(我)가 될 것을 선언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난다여, ‘무색(無色)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작은 아(我)라는 회의적 견해가 잠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거기서, 아난다여, 무색(無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지 않는 자는 여기[금생(今生)]에서 무색(無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를 선언하지 않거나, ‘비록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거기[내생(來生)]에서 무색(無色)을 가진 무한한 아(我)가 될 것을 선언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난다여, ‘무색(無色)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무한한 아(我)라는 회의적 견해가 잠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아(我)를 선언하지 않는 자는, 아난다여, 여기까지 선언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