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다] ānandācchariyadhammo (DN 16.32)
7) 아난다를 위로함 & 아난다의 네 가지 놀랍고 경이로운 법 ㅡ 3. mahāparinibbānasuttaṃ, ānandācchariyadhammo (DN 16.32-대반열반경, 아난다의 놀라운 법)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거처로 들어가서 인방(引枋)을 붙잡고 ‘나는 참으로 더 닦아야 하는 유학(有學)이다. 그런데 나를 연민하시는 나의 스승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이다.’라고 후회하며 서 있었다. 그때 세존이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했다. “대덕이시여, 아난다 존자는 거처로 들어가서 인방(引枋)을 붙잡고 ‘나는 참으로 더 닦아야 하는 유학(有學)이다. 그런데 나를 연민하시는 나의 스승의 완전한 열반이 있을 것이다.’라고 후회하며 서 있습니다.” 그러자 세존은 어떤 비구에게 말했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나의 이름으로 아난다를 불러오라. — ‘도반 아난다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라고.”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에게 대답한 뒤 아난다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도반 아난다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그 비구에게 대답한 뒤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되었다,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비탄하지 말라. 아난다여, 참으로 내가 전에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으로부터 헤어져야 하고 갈라져야 하고 달라져야 한다.’라고. 아난다여, 그렇게 한들 여기서 무엇을 얻겠는가? 아난다여, 참으로 ‘태어났고 존재했고 유위이고 부서지는 것인 여래의 몸을 두고 무너지지 말라.’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 아난다여, 그대는 오랜 세월 동안 이롭고 행복하고 둘이 아니고 한량이 없는 자(慈)와 함께하는 신업(身業)과, 이롭고 행복하고 둘이 아니고 한량이 없는 자(慈)와 함께하는 구업(口業)과, 이롭고 행복하고 둘이 아니고 한량이 없는 자(慈)와 함께하는 의업(意業)으로 여래와 함께했다. 아난다여, 그대는 공덕을 지었다. 정진에 힘쓰면 그대는 곧 번뇌로부터 해탈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세존은 비구들에게 말했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나에게 아난다가 있듯이, 과거에 있었던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세존들에게도 각각 최고의 시자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나에게 아난다가 있듯이, 미래에 있을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세존들에게도 각각 최고의 시자들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현명하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지혜롭다. ‘지금은 여래를 뵙기 위해 다가갈 비구들을 위한 시간이다. … 지금은 비구니들을 위한 시간이다. … 지금은 남신자들을 위한 시간이다. … 지금은 여신자들을 위한 시간이다. … 지금은 왕들을 위한 시간이다. … 지금은 왕의 대신들을 위한 시간이다. … 지금은 외도들을 위한 시간이다. 지금은 여래를 뵙기 위해 다가갈 외도의 제자들을 위한 시간이다.’라고 안다.”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네 가지 놀랍고 신기한 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의 무리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으로 그들은 기뻐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으로도 그들은 기뻐진다. 비구들이여, 그때 아난다가 침묵하면 비구의 무리는 불만스럽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니의 무리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으로 그들은 기뻐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으로도 그들은 기뻐진다. 그때 아난다가 침묵하면 비구니의 무리는 불만스럽다. 만일 남신자의 무리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으로 그들은 기뻐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으로도 그들은 기뻐진다. 그때 아난다가 침묵하면 남신자의 무리는 불만스럽다. 만일 여신자의 무리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으로 그들은 기뻐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으로도 그들은 기뻐진다. 그때 아난다가 침묵하면 여신자의 무리는 불만스럽다.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이런 네 가지 놀랍고 신기한 법이 있다.
비구들이여, 전륜성왕에게는 네 가지 놀랍고 신기한 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만일 끄샤뜨리아의 무리가 전륜성왕을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으로 그들은 기뻐진다. 만일 거기서 전륜성왕이 말을 하면 말하는 것으로도 그들은 기뻐진다. 그때 전륜성왕이 침묵하고 있으면 끄샤뜨리아의 무리는 불만스럽다. 비구들이여, 만일 바라문의 무리가 … 장자의 무리가 … 사문의 무리가 전륜성왕을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으로 그들은 기뻐진다. 만일 거기서 전륜성왕이 말을 하면 말하는 것으로도 그들은 기뻐진다. 그때 전륜성왕이 침묵하면 사문의 무리는 불만스럽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네 가지 놀랍고 신기한 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의 무리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으로 그들은 기뻐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으로도 그들은 기뻐진다. 비구들이여, 그때 아난다가 침묵하면 비구의 무리는 불만스럽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니의 무리가 … 남신자의 무리가 … 여신자의 무리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으로 그들은 기뻐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으로도 그들은 기뻐진다. 그때 아난다가 침묵하면 여신자의 무리는 불만스럽다.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이런 네 가지 놀랍고 신기한 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