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vidho okāsādhigamo (DN 18.7-자나와사바 경, 세 가지 기회 얻음)
5. janavasabhasuttaṃ, tividho okāsādhigamo (DN 18.7-자나와사바 경, 세 가지 기회 얻음)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신(神) 존자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알려진 행복의 성취를 위한 세 가지 기회 얻음의 이해가 있습니다. 어떤 셋입니까?
존자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소유의 삶에 묶여 머물고, 불선법(不善法)들에 묶여 머뭅니다. 그는 나중에 성스러운 법을 배우고 여리(如理)하게 사고하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합니다. 그는 성스러운 법을 따르면서 여리작의(如理作意)와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의 실천으로 소유의 삶에 묶여 머물지 않고, 불선법(不善法)들에 묶여 머물지 않습니다. 소유의 삶에 묶여 머물지 않고, 불선법(不善法)들에 묶여 머물지 않는 그에게 행복과 행복을 넘어선 만족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존자들이여, 기쁨은 환희를 생겨나게 합니다. 이처럼, 존자들이여, 소유의 삶에 묶여 머물지 않고, 불선법(不善法)들에 묶여 머물지 않는 그에게 행복과 행복을 넘어선 만족이 생깁니다. 이것이, 존자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알려진 행복의 성취를 위한 깨달음의 첫 번째 기회 얻음입니다.
다시, 존자들이여, 여기 어떤 자에게 거친 신행(身行)들은 진정되지 않고, 거친 구행(口行)들은 진정되지 않고, 거친 심행(心行)들은 진정되지 않습니다. 그는 나중에 성스러운 법을 배우고 여리(如理)하게 사고하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합니다. 성스러운 법을 따르면서 여리작의(如理作意)와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는 그에게 거친 신행(身行)들이 진정되고, 거친 구행(口行)들이 진정되고, 거친 심행(心行)들이 진정됩니다. 거친 신행(身行)들이 진정되고, 거친 구행(口行)들이 진정되고, 거친 심행(心行)들이 진정된 그에게 행복과 행복을 넘어선 만족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존자들이여, 기쁨은 환희를 생겨나게 합니다. 이처럼, 존자들이여, 거친 신행(身行)들이 진정되고, 거친 구행(口行)들이 진정되고, 거친 심행(心行)들이 진정된 자에게 행복과 행복을 넘어선 만족이 생깁니다. 이것이, 존자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알려진 행복의 성취를 위한 깨달음의 두 번째 기회 얻음입니다.
다시, 존자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이것은 유익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무익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결점이 있는 것이고, 이것은 결점이 없는 것이고, 이것은 실천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저열한 것이고, 이것은 뛰어난 것이고, 이것은 악(惡)과 선(善)이 대응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는 나중에 성스러운 법을 배우고 여리(如理)하게 사고하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합니다. 성스러운 법을 따르면서 여리작의(如理作意)와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는 그는 ‘이것은 유익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은 무익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은 결점이 있는 것이고, 이것은 결점이 없는 것이고, 이것은 실천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저열한 것이고, 이것은 뛰어난 것이고, 이것은 악(惡)과 선(善)이 대응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에게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깁니다. 그에게 무명(無明)이 바래고 명(明)이 생겨날 때 행복과 행복을 넘어선 만족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존자들이여, 기쁨은 환희를 생겨나게 합니다. 이처럼, 존자들이여, 무명(無明)이 바래고 명(明)이 생겨날 때 행복과 행복을 넘어선 만족이 생깁니다. 이것이, 존자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알려진 행복의 성취를 위한 깨달음의 세 번째 기회 얻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