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pakavatthu (DN 21.4-삭까의 질문 경, 고빠까 이야기) 357-358.
8. sakkapañhasuttaṃ, gopakavatthu (DN 21.4-삭까의 질문 경, 고빠까 이야기) 357-358.
357. katāvakāso sakko devānamindo bhagavatā imaṃ bhagavantaṃ paṭhamaṃ pañhaṃ apucchi —
세존으로부터 기회를 얻은 신들의 왕 삭까는 세존에게 이런 첫 번째 질문을 했다. ㅡ
“존자시여, 신들과 인간들과 아수라들과 용들과 간답바들과 다른 각각의 무리들은 ‘원망 없고, 몽둥이를 들지 않고, 적대감 없고, 거슬림 없는 원망 없는 자로 머물 것이다.’라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족쇄 때문에 원망이 있고, 몽둥이를 들고, 적대감이 있고, 거슬림이 있는 원망하는 자로 머뭅니까?” 신들의 왕 삭까는 이렇게 세존에게 질문을 했다. 그의 질문을 받은 세존은 말했다. ㅡ
“신들의 왕이여, 신들과 인간들과 아수라들과 용들과 간답바들과 다른 각각의 무리들은 ‘원망 없고, 몽둥이를 들지 않고, 적대감 없고, 거슬림 없는 원망 없는 자로 머물 것이다.’라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질투와 인색의 족쇄 때문에 원망이 있고, 몽둥이를 들고, 적대감이 있고, 거슬림이 있는 원망하는 자로 머뭅니다.” 신들의 왕 삭까의 질문을 받은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신들의 왕 삭까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했다. ㅡ “그것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그렇습니다, 선서시여. 질문에 대한 세존의 설명을 듣고서 저에게 여기에 대한 의심은 극복되었고, 불확실함은 제거되었습니다.”
358. itiha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itvā anumoditvā bhagavantaṃ uttariṃ pañhaṃ apucchi —
이렇게 신들의 왕 삭까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세존에게 이어지는 질문을 했다. ㅡ
“존자시여, 질투와 인색은 무엇이 인연이고, 무엇에서 자라고, 무엇에서 생기고, 무엇이 근원입니까? 무엇이 있을 때 질투와 인색이 있고, 무엇이 없을 때 질투와 인색이 없습니까?” “신들의 왕이여, 질투와 인색은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이 인연이고,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에서 자라고,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에서 생기고,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이 근원입니다.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이 있을 때 질투와 인색이 있고,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이 없을 때 질투와 인색이 없습니다.”
“존자시여,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은 무엇이 인연이고, 무엇에서 자라고, 무엇에서 생기고, 무엇이 근원입니까? 무엇이 있을 때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이 있고, 무엇이 없을 때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이 없습니까?” “신들의 왕이여,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은 관심이 인연이고, 관심에서 자라고, 관심에서 생기고, 관심이 근원입니다. 관심이 있을 때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이 있고, 관심이 없을 때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이 없습니다.”
“존자시여, 관심은 무엇이 인연이고, 무엇에서 자라고, 무엇에서 생기고, 무엇이 근원입니까? 무엇이 있을 때 관심이 있고, 무엇이 없을 때 관심이 없습니까?” “신들의 왕이여, 관심은 위딱까가 인연이고, 위딱까에서 자라고, 위딱까에서 생기고, 위딱까가 근원입니다. 위딱까가 있을 때 관심이 있고, 위딱까가 없을 때 관심이 없습니다.”
“존자시여, 위딱까는 무엇이 인연이고, 무엇에서 자라고, 무엇에서 생기고, 무엇이 근원입니까? 무엇이 있을 때 위딱까가 있고, 무엇이 없을 때 위딱까가 없습니까?” “신들의 왕이여, 위딱까는 희론(戱論)의 상(想)에 의한 헤아림이 인연이고, 희론(戱論)의 상(想)에 의한 헤아림에서 자라고, 희론(戱論)의 상(想)에 의한 헤아림에서 생기고, 희론(戱論)의 상(想)에 의한 헤아림이 근원입니다. 희론(戱論)의 상(想)에 의한 헤아림이 있을 때 위딱까가 있고, 희론(戱論)의 상(想)에 의한 헤아림이 없을 때 위딱까가 없습니다.”
“kathaṃ paṭipanno pana, mārisa, bhikkhu papañcasaññāsaṅkhānirodhasāruppagāminiṃ paṭipadaṃ paṭipanno hotī”ti?
“존자시여, 어떻게 실천하는 비구가 희론(戱論)의 상(想)에 의한 헤아림의 소멸로 적절히 이끄는 실천을 실천하는 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