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tattāyoguḷaupamā (DN 23.11-가열된 쇠구슬 비유)
10. pāyāsisuttaṃ, santattāyoguḷaupamā (DN 23.11-가열된 쇠구슬 비유)
"대신(大臣)이여, 그렇다면 그대에게 비유를 들겠습니다. 비유에 의해 여기 어떤 현명한 사람들은 말의 뜻을 이해합니다. 예를 들면, 대신이여, 어떤 사람이 낮 동안 가열되고 불 위에 놓여서 타오르고 불꽃을 일으키고 빛을 내는 쇠구슬을 저울로 달 것입니다. 나중에 차갑고 꺼진 그것을 저울로 달 것입니다. 언제 그 쇠구슬은 가볍고 부드럽고 어떤 작업을 위해 준비됩니까? 타오르고 불꽃을 일으키고 빛을 낼 때입니까, 차갑고 꺼진 때입니까?” “깟사빠 존자시여, 열과 함께하고 바람과 함께하여 타오르고 불꽃을 일으키고 빛을 낼 때 그 쇠구슬은 가볍고 부드럽고 어떤 작업을 위해 준비됩니다. 열과 함께하지 않고 바람과 함께하지 않아 차갑고 꺼진 때 그 쇠구슬은 무겁고 거칠고 어떤 작업을 위해 준비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대신이여, 이 몸은 생명과 함께하고 체열과 함께하고 식(識)과 함께할 때 가볍고 부드럽고 어떤 작업을 위해 준비됩니다. 그러나 이 몸은 생명과 함께하지 않고 체열과 함께하지 않고 식(識)과 함께하지 않을 때 무겁고 거칠고 어떤 작업을 위해 준비되지 않습니다. 대신이여, 이런 방법에 의해서도 그대는 '이렇게도 저 세상은 있다. 화생하는 중생은 있다. 선악(善惡)으로 지어진 업(業)들의 과(果)와 보(報)는 있다.'라고 알아야 합니다."
“깟사빠 존자께서 이렇게 말한다 해도 저는 '이렇게도 저 세상은 없다. 화생하는 중생은 없다. 선악(善惡)으로 지어진 업(業)들의 과(果)와 보(報)는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대신이여, 그대에게 '이렇게도 저 세상은 없다. 화생하는 중생은 없다. 선악(善惡)으로 지어진 업(業)들의 과(果)와 보(報)는 없다.'라고 그것에 의해 생각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깟사빠 존자여, 저에게 '이렇게도 저 세상은 없다. 화생하는 중생은 없다. 선악(善惡)으로 지어진 업(業)들의 과(果)와 보(報)는 없다.'라고 그것에 의해 생각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신이여, 그것은 어떤 것과 같습니까?”
"여기, 깟사빠 존자시여, 저의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 도둑을 붙잡아 '대덕이시여, 이 자는 범죄를 저지른 도둑입니다. 대신께서 원하시는 처벌을 명령하십시오.'라고 하면서 데려옵니다. 그러면 저는 '존자들이여, 그렇다면 이 사람을 상처 없이 피부와 가죽과 살점과 힘줄을 다치지 말고 생명을 빼앗으시오. 아마도 우리는 그의 생명이 떠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훌륭합니다.’라고 대답한 뒤 그 사람을 상처 없이 피부와 가죽과 살점과 힘줄을 다치지 않고 생명을 빼앗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ㅡ ‘그렇다면, 존자들이여, 이 사람을 등을 대고 눕히시오. 아마도 우리는 그의 생명이 떠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라고. 그들은 그 사람을 등을 대고 눕힙니다. 우리는 그의 생명이 떠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ㅡ ‘그렇다면, 존자들이여, 이 사람을 얼굴을 아래로 하여 눕히시오. … 옆으로 놓으시오 … 다른 쪽 옆으로 놓으시오 … 바로 세우시오 … 거꾸로 세우시오 … 손으로 두드리시오 … 흙덩어리로 두드리시오 … 몽둥이로 두드리시오 … 칼로 두드리시오 …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고 또 흔드시오. 아마도 우리는 그의 생명이 떠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라고. 그들은 그 사람을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고 또 흔듭니다. 우리는 그의 생명이 떠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에게 그 안(眼)과 그 색(色)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처(處)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 이(耳)와 그 성(聲)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처(處)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 비(鼻)와 그 향(香)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처(處)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 설(舌)과 그 향(香)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처(處)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 신(身)과 그 촉(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처(處)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깟사빠 존자시여, 이것도 제가 '이렇게도 저 세상은 없다. 화생하는 중생은 없다. 선악(善惡)으로 지어진 업(業)들의 과(果)와 보(報)는 없다.'라고 그것에 의해 생각하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