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DN 25.4-우둠바리까 경, 청정의 바깥 껍질을 얻음 이야기) udumbarikasuttaṃ, parisuddhapa…
2. udumbarikasuttaṃ, parisuddhapapaṭikappattakathā (DN 25.4-우둠바리까 경, 청정의 바깥 껍질을 얻음 이야기)
“여기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고행을 실천합니다. 그는 그 고행으로 즐거워하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니그로다여, 고행을 실천하는 고행자가 그 고행으로 즐거워하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고행을 실천합니다. 그는 그 고행으로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고행을 실천합니다. 그는 그 고행으로 도취하지 않고 열중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습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고행을 실천합니다. 그는 그 고행으로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는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으로 즐거워하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고행을 실천합니다. 그는 그 고행으로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는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고행을 실천합니다. 그는 그 고행으로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얻습니다. 그는 그 얻음과 존경과 명성으로 도취하지 않고 열중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습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가 음식에 대해 차별하지 않습니다. ― ‘이것은 나에게 잘 맞다. 이것은 나에게 잘 맞지 않다.’라고. 그는 맞지 않는 것에 대한 배척은 버리고, 잘 맞는 것을 욕심내지 않고 열중하지 않고 습득하지 않으며, 위험을 보고, 해방의 지혜를 가지고 먹습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왕들도 왕의 대신들도 끄샤뜨리야들도 바라문들도 장자들도 외도의 신자들도 나를 존경할 것이다.’라고 얻음과 존경과 명성의 갈망을 원인으로 고행을 실천하지 않습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 ‘풍족하게 사는 이 자는 어떻게 모든 것을 먹는가! 말하자면, 뿌리로 번식하는 것, 줄기로 번식하는 것, 마디로 번식하는 것, 가지로 번식하는 것, 다섯 번째 씨앗으로 번식하는 것을 사문이라고 말하면서도 바퀴 없는 벼락과도 같은 이빨 끝으로.’라고.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가문들에서 존경받고 존중되고 높이 모셔지고 흠모 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봅니다. 본 뒤에 그는 ‘이 자는 풍족하게 사는 데도 가문들에서 존경하고 존중하고 높이 모시고 흠모한다. 그러나 나는 고행자로서 거칠게 사는 데도 가문들에서 존경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고 높이 모시지 않고 흠모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는 가문들에 대해서 질투와 인색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자신을 드러내며 앉아 있지 않습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나의 고행에는 이런 것도 있고, 나의 고행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드러내면서 가문들을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무언가 씌워진 것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이것은 잘 맞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잘 맞지 않으면 ‘잘 맞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잘 맞으면 ‘잘 맞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그는 알면서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법을 설할 때 평화의 법문이라고 인정된 것을 인정합니다. …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화를 내지 않고 원한 맺지 않는 자입니다. 니그로다여, 고행자가 화를 내지 않고 원한 맺지 않는 것도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위선적이지 않고 악의를 가지지 않은 자입니다. … 질투하지 않고 인색하지 않은 자입니다. … 교활하지 않고 사기 치지 않는 자입니다. … 고집스럽지 않고 오만하지 않은 자입니다. … 악한 원함을 가지지 않아서 악한 원함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입니다. … 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아서 극단의 삿된 견해를 갖추지 않은 자입니다. …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서 강하게 붙잡지 않아 놓기 쉬운 자입니다. 니그로다여, 고행자가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서 강하게 붙잡지 않아 놓기 쉬운 것도 그 경우에는 이렇게 그것이 청정입니다.
니그로다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럴 때 고행에 의한 혐오는 청정입니까, 청정이 아닙니까?” “대덕이시여, 이럴 때 확실히 고행에 의한 혐오는 청정입니다. 청정 아닌 것이 아닙니다. 최고를 얻고, 심재를 얻은 것입니다.” “니그로다여, 이만큼의 고행에 의한 혐오는 최고를 얻은 것이 아니고, 심재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바깥 껍질을 얻은 것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