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에 의한 혐오의 최상을 얻은 것, 정수를 얻은 것 ㅡ> 천안통
3. 오염원의 거부에 의한 청정 ㅡ 1) 조각을 얻음
1)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고행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그 고행에 의해서 만족해하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니그로다여, 고행을 받아 지니는 고행자가 그 고행에 의해서 만족해하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런 그는 그 경우에 청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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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다시 니그로다여, 고행자는 저주하지 않고 횡포 하지 않는 자입니다. … 질투하지 않고 인색하지 않은 자입니다. … 광기 없고 환상에 빠지지 않은 자입니다. … 고집스럽지 않고 오만하지 않은 자입니다. … 악한 바람을 가지지 않아서 악한 바람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입니다. … 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아서 극단의 삿된 견해를 구족하지 않은 자입니다. …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 견해의 테두리를 붙잡지 않아 놓아버리기 쉬운 자입니다. 니그로다여, 고행자가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지 않여 견해의 테두리를 붙잡지 않아 놓아버리기 쉬운 자인 이런 그는 그 경우에 청정이 있습니다.
니그로다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러하다면 이 경우에 이 고행에 의한 혐오는 청정입니까, 청정이 아닙니까?” “대덕이시여, 이 경우에 고행에 의한 혐오는 청정입니다. 청정 아님이 아닙니다. 최상을 얻은 것이고 정수를 얻은 것입니다.” “니그로다여, 참으로 이 정도의 고행에 의한 혐오는 최상을 얻은 것이 아니고 정수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겨우 조각을 얻은 것입니다.”
4.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과 사무량심(四無量心) ㅡ 2) 껍질을 얻음
“대덕이시여, 그러면 어느 정도의 고행에 의한 혐오가 최상을 얻은 것이고 정수를 얻은 것입니까? 대덕이시여, 저에게 고행에 의한 혐오의 최상을 얻게 해주시고 정수를 얻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āsīsati → āsiṃsati: hopes for; desires. (ā + siṃs + a)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으로 단속합니다. 그러면 니드로다여, 어떻게 고행자는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으로 단속합니까?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생명을 해치지 않고, 생명을 해치게 하지 않고, 생명을 해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게 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게 하지 않고 거짓을 말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얻어진 것을 갈망하지 않고 얻어진 것을 갈망하게 하지 않고 얻어진 것을 갈망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니그로다여, 이렇게 고행자는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으로 단속합니다.
니그로다여, 고행자가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으로 단속하기 때문에 그 수행자다움의 이러함이 있습니다. 그는 향상을 가져오지 낮은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숲, 나무 밑, 산, 동굴, 골짜기, 묘지, 깊은 숲속, 노지, 짚 더미 등 외딴 처소에서 지냅니다. 그는 오후에 탁발에서 돌아와서 앉아 있습니다. ㅡ 다리를 교차하고 몸을 곧게 하여 가다듬고, 콧구멍 주위를 지향하고, 사띠[염(念)]을 준비한 채. 그는 세상에 대한 간탐(慳貪)을 버린 뒤에 간탐을 여읜 마음으로 머물고, 간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진에(瞋恚)의 오점을 버린 뒤에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고 연민하는 진에 않는 마음으로 머물고, 진에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해태-혼침을 버린 뒤에 광명상(光明想)을 가진 자로서 해태-혼침 없이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해태-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들뜸-후회를 버린 뒤에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뜨지 않고 머물고, 들뜸-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의심을 버린 뒤에 유익한 법들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자로서 의심을 건너서 머물고,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그는 지혜를 무력화하는 마음의 오염원인 이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린 뒤에 자(慈)가 함께한 심(心)으로 한 방향을 채우면서 머뭅니다. 그렇게 두 방향을, 그렇게 세 방향을, 그렇게 네 방향을. 이렇게 위로 아래로 중간방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에게 펼쳐서 모든 세상을 방대하고 거대하고 제한 없고 원망 없고 진에(瞋恚) 없는 자(慈)가 함께한 심(心)으로 채우면서 머뭅니다. 비(悲)가 함께한 심(心)으로 … 희(喜)가 함께한 심(心)으로 … 사(捨)가 함께한 심(心)으로 한 방향을 채우면서 머뭅니다. 그렇게 두 방향을, 그렇게 세 방향을, 그렇게 네 방향을. 이렇게 위로 아래로 중간방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에게 펼쳐서 모든 세상을 방대하고 거대하고 제한 없고 원망 없고 진에(瞋恚) 없는 사(捨)가 함께한 심(心)으로 채우면서 머뭅니다.
니그로다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러하다면 이 경우에 이 고행에 의한 혐오는 청정입니까, 청정이 아닙니까?” “대덕이시여, 이 경우에 고행에 의한 혐오는 청정입니다. 청정 아님이 아닙니다. 최상을 얻은 것이고 정수를 얻은 것입니다.” “니그로다여, 참으로 이 정도의 고행에 의한 혐오는 최상을 얻은 것이 아니고 정수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겨우 껍질을 얻은 것입니다.”
5. 숙명통(宿命通) ㅡ 3)중심을 둘러싼 부분을 얻음
“대덕이시여, 그러면 어느 정도의 고행에 의한 혐오가 최상을 얻은 것이고 정수를 얻은 것입니까? 대덕이시여, 저에게 고행에 의한 혐오의 최상을 얻게 해주시고 정수를 얻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으로 단속합니다. 그러면 니드로다여, 어떻게 고행자는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으로 단속합니까? …
니그로다여, 고행자가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으로 단속하기 때문에 그 수행자다움의 이러함이 있습니다. 그는 향상을 가져오지 낮은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숲, 나무 밑, 산, 동굴, 골짜기, 묘지, 깊은 숲속, 노지, 짚 더미 등 외딴 처소에서 지냅니다. …
그는 지혜를 무력화하는 마음의 오염원인 이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린 뒤에 자(慈)가 함께한 심(心)으로 … 비(悲)가 함께한 심(心)으로 … 희(喜)가 함께한 심(心)으로 … 방대하고 거대하고 제한 없고 원망 없고 진에(瞋恚) 없는 사(捨)가 함께한 심(心)으로 채우면서 머뭅니다.
그는 여러 이전의 존재상태[전생]을 기억합니다. 즉 ㅡ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고 수축하는 여러 겁을 기억합니다. ㅡ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상태[전생]을 기억합니다.
니그로다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러하다면 이 경우에 이 고행에 의한 혐오는 청정입니까, 청정이 아닙니까?” “대덕이시여, 이 경우에 고행에 의한 혐오는 청정입니다. 청정 아님이 아닙니다. 최상을 얻은 것이고 정수를 얻은 것입니다.” “니그로다여, 참으로 이 정도의 고행에 의한 혐오는 최상을 얻은 것이 아니고 정수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겨우 중심을 둘러싼 부분을 얻은 것입니다.”
6. 천안통(天眼通) ㅡ 4)최상과 정수를 얻음
“대덕이시여, 그러면 어느 정도의 고행에 의한 혐오가 최상을 얻은 것이고 정수를 얻은 것입니까? 대덕이시여, 저에게 고행에 의한 혐오의 최상을 얻게 해주시고 정수를 얻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으로 단속합니다. 그러면 니드로다여, 어떻게 고행자는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으로 단속합니까? … 니그로다여, 고행자가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으로 단속하기 때문에 그 수행자다움의 이러함이 있습니다. 그는 향상을 가져오지 낮은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숲, 나무 밑, 산, 동굴, 골짜기, 묘지, 깊은 숲속, 노지, 짚 더미 등 외딴 처소에서 지냅니다. … 그는 지혜를 무력화하는 마음의 오염원인 이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린 뒤에 자(慈)가 함께한 심(心)으로 … 방대하고 거대하고 제한 없고 원망 없고 진에(瞋恚) 없는 사(捨)가 함께한 심(心)으로 채우면서 머뭅니다. … 그는 다양한 전생의 삶들을 기억합니다. 즉 ㅡ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다양한 전생의 삶들을 기억합니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수승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봅니다.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압니다. ㅡ ‘이들은 신(身)으로 나쁜 삶을 살고 구(口)로 나쁜 삶을 살고 의(意)로 나쁜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의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신(身)으로 좋은 삶을 살고 구(口)로 좋은 삶을 살고 의(意)로 좋은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의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수승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봅니다.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압니다.
“taṃ kiṃ maññasi, nigrodha, yadi evaṃ sante tapojigucchā parisuddhā vā hoti aparisuddhā vā”ti? “addhā kho, bhante, evaṃ sante tapojigucchā parisuddhā hoti no aparisuddhā, aggappattā ca sārappattā cā”ti.
니그로다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러하다면 이 경우에 이 고행에 의한 혐오는 청정입니까, 청정이 아닙니까?” “대덕이시여, 이 경우에 고행에 의한 혐오는 청정입니다. 청정 아님이 아닙니다. 최상을 얻은 것이고 정수를 얻은 것입니다.”
“니그로다여, 참으로 이 정도의 고행에 의한 혐오는 최상을 얻은 것이고 정수를 얻은 것입니다. 니그로다여, 참으로 이렇게 그대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ㅡ ‘대덕이시여, 그것에 의해 세존이 제자들을 지도하는, 그것에 의해 세존으로부터 지도받고 위안을 얻은 제자들이 의지를 가지고 범행(梵行)의 시작을 약속하는 세존의 그 법은 무엇입니까?’라고. 니그로다여, 이렇게 그것에 의해 내가 제자들을 지도하는, 그것에 의해 나로부터 지도받고 위안을 얻은 제자들이 의지를 가지고 범행(梵行)의 시작을 약속하는 더 높고 더 수승한 그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 유행승들은 소란과 큰 소리의 시끄러움이 일었다. ㅡ “여기에 우리는 우리의 스승에게서 전승된 것이 없는가? 우리는 이것을 능가하는 더 높은 것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