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 27.9-처음에 대한 앎 경, 음행(淫行)을 행함) aggaññasuttaṃ, methunadhammasamācāro
4. aggaññasuttaṃ, methunadhammasamācāro (DN 27.9-처음에 대한 앎 경, 음행(淫行)을 행함)
와셋타여, 그때는 비법(非法)이라고 인정된 것이 지금은 법(法)이라고 인정된다. 와셋타여, 그때 음행(淫行)을 한 중생들은 한 달도 두 달도 마을이나 번화가에 들어오지 못했다.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그 바르지 못한 법에 대해 지나치게 떨어졌을 때, 그들은 그 바르지 못한 법에 따르는 불편을 덮기 위해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와셋타여, 태생이 게으른 어떤 중생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여보게, 왜 나는 저녁에 저녁 식사를 위한, 아침에 아침 식사를 위한 쌀을 가져오면서 불편해하는가! 내가 저녁과 아침 식사를 위한 쌀을 한 번에 가져오면 어떨까?’라고.
그래서 와셋타여, 그 중생은 저녁과 아침 식사를 위한 쌀을 한 번에 가져왔다. 그러자 와셋타여, 다른 중생이 그 중생에게 왔다. 와서는 그 중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오시오, 중생 존자여, 쌀을 가지러 갑시다.’라고. ‘중생 존자여, 나는 저녁과 아침 식사를 위한 쌀을 한 번에 가져와서 충분합니다.’ 그러자 와셋타여, 그 중생을 흉내 내는 다른 중생들은 한 번에 이틀분의 쌀을 가져왔다. ‘존자여, 이렇게 해도 좋습니다.’라면서.
그리고 와셋타여, 어떤 중생이 그 중생에게 왔다. 와서는 그 중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오시오, 중생 존자여, 쌀을 가지러 갑시다.’라고. ‘중생 존자여, 나는 이틀분의 쌀을 한 번에 가져와서 충분합니다.’ 그러자 와셋타여, 그 중생을 흉내 내는 다른 중생들은 한 번에 나흘분의 쌀을 가져왔다. ‘존자여, 이렇게 해도 좋습니다.’라면서.
그리고 와셋타여, 어떤 중생이 그 중생에게 왔다. 와서는 그 중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오시오, 중생 존자여, 쌀을 가지러 갑시다.’라고. ‘중생 존자여, 나는 나흘분의 쌀을 한 번에 가져와서 충분합니다.’ 그러자 와셋타여, 그 중생을 흉내 내는 다른 중생들은 한 번에 여드레분의 쌀을 가져왔다. ‘존자여, 이렇게 해도 좋습니다.’라면서.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먹기 위해서 쌀을 축적하기 시작했을 때, 속겨가 낱알을 둘러싸고, 껍질도 낱알을 둘러쌌다. 거둬들인 것은 다시 자라지 않았고, 제거할 것이 나타났고, 벼들은 다발 지어 자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