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ssatavādadesanā (DN 28.13-믿음을 고양하는 경, 영속론(永屬論)에 대한 가르침)
5. sampasādanīyasuttaṃ, sassatavādadesanā (DN 28.13-믿음을 고양하는 경, 영속론(永屬論)에 대한 가르침)
더 나아가,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영속론(永續論)에 대한 법을 설하신 이것은 위없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이런 세 가지 영속론이 있습니다. 여기, 대덕이시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하고 정진하고 실천하고 불방일하고 바르게 작의 한 것을 원인으로, 삼매를 닦을 때 여러 이전의 존재상태[전생]을 기억하는 그런 심(心)의 삼매[심삼매(心三昧)]를 성취합니다. 즉 ㅡ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수백 번의 생, 수천 번의 생, 수십만 번의 생을 기억합니다. ㅡ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상태[전생]을 기억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ㅡ ‘나는 ‘세상은 진화하거나 퇴보했다.’라고 과거세를 안다. 나는 ‘세상은 진화하거나 퇴보할 것이다.’라고 미래세를 안다. ‘영원한 아(我)와 세상은 낳지 못하고, 산봉우리처럼 서있고, 쇠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 중생들은 옮겨가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난다. 그러나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이것이 첫 번째 영속론입니다.
다시, 대덕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하고 정진하고 실천하고 불방일하고 바르게 작의 한 것을 원인으로, 삼매를 닦을 때 여러 이전의 존재상태[전생]을 기억하는 그런 심(心)의 삼매[심삼매(心三昧)]를 성취합니다. 즉 ㅡ 한 번의 진화와 퇴보도, 두 번이 진화와 퇴보도, 세 번의 진화와 퇴보도, 네 번의 진화와 퇴보도, 다섯 번의 진화와 퇴보도, 열 번의 진화와 퇴보도 기억합니다. ㅡ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상태[전생]을 기억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ㅡ ‘나는 ‘세상은 진화하거나 퇴보했다.’라고 과거세를 안다. 나는 ‘세상은 진화하거나 퇴보할 것이다.’라고 미래세를 안다. ‘영원한 아(我)와 세상은 낳지 못하고, 산봉우리처럼 서있고, 쇠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 중생들은 옮겨가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난다. 그러나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이것이 두 번째 영속론입니다.
다시, 대덕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하고 정진하고 실천하고 불방일하고 바르게 작의 한 것을 원인으로, 삼매를 닦을 때 여러 이전의 존재상태[전생]을 기억하는 그런 심(心)의 삼매[심삼매(心三昧)]를 성취합니다. 즉 ㅡ 열 번의 진화와 퇴보도, 스무 번이 진화와 퇴보도, 서른 번의 진화와 퇴보도, 마흔 번의 진화와 퇴보도 기억합니다. ㅡ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상태[전생]을 기억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ㅡ ‘나는 ‘세상은 진화하거나 퇴보했다.’라고 과거세를 안다. 나는 ‘세상은 진화하거나 퇴보할 것이다.’라고 미래세를 안다. ‘영원한 아(我)와 세상은 낳지 못하고, 산봉우리처럼 서있고, 쇠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 중생들은 옮겨가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난다. 그러나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이것이 세 번째 영속론입니다. 대덕이시여, 영속론(永續論)에 대한 이것도 위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