ādesanavidhādesanā (DN 28.5-믿음을 고양하는 경, 신탁(神託)의 겹에 대한 가르침)
5. sampasādanīyasuttaṃ, ādesanavidhādesanā (DN 28.5-믿음을 고양하는 경, 신탁(神託)의 겹에 대한 가르침)
더 나아가,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신탁(神託)의 겹에 대한 법을 설하신 이것은 위없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이런 네 가지 신탁의 겹이 있습니다. 여기, 대덕이시여,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합니다. ㅡ ‘그대의 의(意)는 이렇다. 그대의 의(意)는 이러하다. 그대의 심(心)은 이러하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신탁입니다.
또한, 대덕이시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하지 않고, 사람이나 비인간(非人間)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서 말합니다. ㅡ ‘그대의 의(意)는 이렇다. 그대의 의(意)는 이러하다. 그대의 심(心)은 이러하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신탁입니다.
또한, 대덕이시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하지 않고, 사람이나 비인간(非人間)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서 말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위딱까로부터 위짜라로부터 위딱까가 발산하는 소리를 듣고서 말합니다. ㅡ ‘그대의 의(意)는 이렇다. 그대의 의(意)는 이러하다. 그대의 심(心)은 이러하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신탁입니다.
또한, 대덕이시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하지 않고, 사람이나 비인간(非人間)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서 말하지도 않고, 위딱까로부터 위짜라로부터 위딱까가 발산하는 소리를 듣고서 말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에 든 자의 심(心)으로부터 심(心)을 분별하여 분명히 압니다. ㅡ ‘이런 그대의 의행(意行)의 지향들처럼 이 심(心)의 이어짐들은 이러이러한 위딱까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신탁입니다. 대덕이시여, 신탁(神託)의 겹에 대한 이것도 위없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