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ñhābyākaraṇaṃ (DN 29.13) ㅡ 설명의 기준 & 그래서 여래라 한다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 ‘사문 고따마는 과거에 대하여 제한 없는 지(知)와 견(見)을 선언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제한 없는 지(知)와 견(見)을 선언하지 않는다. 무엇에 대해 그러하고 어떻게 그러한가?’라고. 그러나 그 외도 유행승들은,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자처럼, 다른 것과 관련된 지(知)와 견(見)에 의해 다른 것과 관련된 지(知)와 견(見)이 선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쭌다여, 참으로 과거에 대하여 여래에게는 사띠를 가진 자를 따르는 앎이 있다. 그는 원하는 만큼을 기억한다. 미래에 대하여 여래에게는 깨달음에서 생긴 앎이 일어난다. ―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 쭌다여, 만약 과거가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으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쭌다여, 만약 과거가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끌면, 거기서 여래는 그 질문의 설명을 위해 적당한 시간을 안다. 쭌다여, 만약 미래가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으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 그 질문의 설명을 위해 적당한 시간을 안다. 쭌다여, 만약 현재가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으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쭌다여, 만약 현재가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끌면, 거기서 여래는 그 질문의 설명을 위해 적당한 시간을 안다.
쭌다여, 이렇게 과거-미래-현재의 법들에 대해 여래는 적절한 때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이익을 말하고, 법(法)을 말하고, 율(律)을 말한다. 그래서 여래(如來)라고 불린다. 그리고 쭌다여,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과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과 함께하는 존재들이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모든 것을 여래는 깨달았다. 그래서 여래라고 불린다. 쭌다여,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은 밤과 집착이 남아있지 않은 열반의 요소로 완전히 열반한 밤의 사이에 말하고 대화기하고 가르친 모든 것은 참이지 거짓이 아니다. 그래서 여래라고 불린다. 쭌다여, 여래는 말하는 대로 행하고, 행하는 대로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대로 행하고, 행하는 대로 말한다고 해서 여래라고 불린다. 쭌다여,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과 함께하는 존재들 가운데 여래는 정복자이고, 정복되지 않는 자이고, 다른 것이 있음을 보는 자이고, 지배자이다. 그래서 여래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