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rantasahagatadiṭṭhinissayā (DN 29.17-미래와 연결되어 치우친 견해)
aparantasahagatadiṭṭhinissayā (DN 29.17-미래와 연결되어 치우친 견해)
쭌다여, 설명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한, 미래와 연결되어 치우친 견해는 무엇인가(그런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하겠는가)? 쭌다여,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ㅡ ‘색(色)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 아(我)가 죽은 뒤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쭌다여,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ㅡ ‘무색(無色)을 가지는 아(我)가 … 색(色)을 가지기도 하고 무색(無色)을 가지기도 하는 아(我)가 … 색(色)을 가지지도 않고 무색(無色)을 가지지도 않는 아(我)가 … 상(想)을 가지는 아(我)가 … 무상(無想)을 가지는 아(我)가 … 상(想)을 가지지도 않고 무상(無常)을 가지지도 않는 아(我)가 … 아(我)는 단멸(斷滅)하고 파괴되어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거기에, 쭌다여, ‘색(色)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 아(我)가 죽은 뒤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내가 가서 이렇게 말했다. ㅡ ‘색(色)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 아(我)가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고 말합니까?’라고.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쭌다여, 다른 상(想)을 가진 어떤 중생들이 여기에 있다. 쭌다여, 나는 이런 개념에 대해 나와 대등한 자를 관찰하지 못한다. 어디에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개념에 대해서 내가 더 뛰어나다.
거기에, 쭌다여, ‘무색(無色)을 가지는 아(我)가 … 색(色)을 가지기도 하고 무색(無色)을 가지기도 하는 아(我)가 … 색(色)을 가지지도 않고 무색(無色)을 가지지도 않는 아(我)가 … 상(想)을 가지는 아(我)가 … 무상(無想)을 가지는 아(我)가 … 상(想)을 가지지도 않고 무상(無常)을 가지지도 않는 아(我)가 … 아(我)는 단멸(斷滅)하고 파괴되어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내가 가서 이렇게 말했다. ㅡ ‘아(我)는 단멸(斷滅)하고 파괴되어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까?’라고.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쭌다여, 다른 상(想)을 가진 어떤 중생들이 여기에 있다. 쭌다여, 나는 이런 개념에 대해 나와 대등한 자를 관찰하지 못한다. 어디에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개념에 대해서 내가 더 뛰어나다. 쭌다여, 이것이 설명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한, 미래와 연결되어 치우친 견해이다. 그런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내가 그대들에게 설명하겠는가?
쭌다여, 이러한 과거와 연결되어 치우친 견해와 이러한 미래와 연결되어 치우친 견해를 버리고 극복하기 위해서 이렇게 나는 사념처(四念處)를 설명하고 선언하였다. 무엇이 넷인가? 쭌다여, 여기 비구는 몸[신(身)]에서 몸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 대한 간탐(慳貪)과 고뇌(苦惱)를 제거한다. 경험[수(受)]에서 경험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 대한 간탐(慳貪)과 고뇌(苦惱)를 제거한다. 마음[심(心)]에서 마음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 대한 간탐(慳貪)과 고뇌(苦惱)를 제거한다. 법(法)에서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 대한 간탐(慳貪)과 고뇌(苦惱)를 제거한다. 쭌다여, 이러한 과거와 연결되어 치우친 견해와 이러한 미래와 연결되어 치우친 견해를 버리고 극복하기 위해서 이렇게 나는 이 사념처(四念處)를 설명하고 선언하였다.
• pāsādika: [fr. pasāda] pleasing, pleasant, lovely, amiable.
• pāsāda: a mansion; place; castle. (m.)
• pasāda: clearness; brightness; joy; faith; the faculty of senses. (m.)
→ 소유를 나타내는 2차 명사화 : pasādika(pāsādika)ㅡ 청정함 또는 믿음을 가진 것
→ 청정함과 믿음 = 정신(淨信)
그때 우빠와나 존자가 세존에게 부채질을 하면서 세존의 뒤에 서있었다. 그리고 우빠와나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대덕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 법문은 참으로 즐겁습니다. 이 법문은 참으로 정말 즐겁습니다. 대덕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우빠와나여, 그대는 이 법문을 ‘청정함과 믿음을 가진 것[정신(淨信)]’이라고 이제 이것을 명심하라.”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우빠와나 존자는 아주 기뻐서 세존의 말씀을 즐거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