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ṅgītisuttaṃn, catukkaṃ (DN 33.7-합송경, 네 가지로 구성된 법들) 306~310
10. saṅgītisuttaṃn, catukkaṃ (DN 33.7-합송경, 네 가지로 구성된 법들)
도반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바르게 선언된 넷으로 구성된 법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오직 모두에 의해 합송되어야 하며, 분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이 범행이 오래 유지되고 오래 머물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번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넷으로 구성된 법입니까?
사념처(四念處) ㅡ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몸[신(身)]에서 몸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 대한 간탐(慳貪)과 고뇌(苦惱)를 제거한다. 경험[수(受)]에서 경험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 대한 간탐(慳貪)과 고뇌(苦惱)를 제거한다. 마음[심(心)]에서 마음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 대한 간탐(慳貪)과 고뇌(苦惱)를 제거한다. 법(法)에서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세상에 대한 간탐(慳貪)과 고뇌(苦惱)를 제거한다.
사정근(四正勤) ㅡ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①생겨나지 않은 악한 불선법들을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관심을 생기게 하고, 노력하고, 힘을 다하고, 심(心)을 돌보고, 애쓴다. ②생겨난 악한 불선법들을 버리기 위하여, 관심을 생기게 하고, 노력하고, 힘을 다하고, 심(心)을 돌보고, 애쓴다. ③생겨나지 않은 선법들을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관심을 생기게 하고, 노력하고, 힘을 다하고, 심(心)을 돌보고, 애쓴다. ④생겨난 선법들을 유지하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점점 더 커지게 하고, 닦아서 완성하기 위하여 관심을 생기게 하고, 노력하고, 힘을 다하고, 심(心)을 돌보고, 애쓴다.
사여의족(四如意足) ㅡ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관심의 삼매와 노력의 행(行)들을 갖춘 여의족(如意足)을 닦는다. 심(心)의 삼매와 노력의 행(行)들을 갖춘 여의족을 닦는다. 정진의 삼매와 노력의 행(行)들을 갖춘 여의족을 닦는다. 관찰의 삼매와 노력의 행(行)들을 갖춘 여의족을 닦는다.
사선(四禪) ㅡ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소유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로부터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기쁨의 빛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네 가지 삼매수행(三昧修行) ㅡ 도반들이여, 닦고 많이 행하면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이 있다. 도반들이여, 닦고 많이 행하면 지(知)와 견(見)의 얻음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이 있다. 도반들이여, 닦고 많이 행하면 염(念)-정지(正知)로 이끄는 삼매수행이 있다. 도반들이여, 닦고 많이 행하면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이 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닦고 많이 행하면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소유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로부터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기쁨의 빛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도반들이여, 이것이 닦고 많이 행하면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이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닦고 많이 행하면 지(知)와 견(見)의 얻음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인가?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광명상(光明想)을 작의(作意)하고,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 낮의 상(想)을 확립한다. 이렇게 열려있고 덮이지 않은 심(心)으로 빛을 가진 심(心)을 닦는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닦고 많이 행하면 지(知)와 견(見)의 얻음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이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닦고 많이 행하면 념(念)-정지(正知)로 이끄는 삼매수행인가?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에게 보여진 수(受)들이 생기고, 보여진 수(受)들이 있고, 보여진 수(受)들이 없어진다. 보여진 상(想)들이 생기고, 보여진 상(想)들이 있고, 보여진 상(想)들이 없어진다. 보여진 위딱까들이 생기고, 보여진 위딱까들이 있고, 보여진 위딱까들이 없어진다. 이것이, 도반들이여, 닦고 많이 행하면 념(念)-정지(正知)로 이끄는 삼매수행이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닦고 많이 행하면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인가?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오취온(五取蘊)에서 자라남과 줄어듦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ㅡ ‘이렇게 색(色)이 있고, 이렇게 색(色)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색(色)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수(受)가 있고, 이렇게 수(受)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수(受)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상(想)이 있고, 이렇게 상(想)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상(想)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행(行)들이 있고, 이렇게 행(行)들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행(行)들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식(識)이 있고, 이렇게 식(識)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식(識)의 줄어듦이 있다.’라고. 도반들이여, 이것이 닦고 많이 행하면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이다.
사무량(四無量) ㅡ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자(慈)가 함께한 심(心)으로 한 방향을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그렇게 두 방향을, 그렇게 세 방향을, 그렇게 네 방향을. 이렇게 위로 아래로 중간방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에게 펼쳐서 모든 세상을 크고 귀하고 무량한, 원망 없고 거슬림 없는 자(慈)가 함께한 심(心)으로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비(悲)가 함께한 심(心)으로 … 희(喜)가 함께한 심(心)으로 … 사(捨)가 함께한 심(心)으로 한 방향을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그렇게 두 방향을, 그렇게 세 방향을, 그렇게 네 방향을. 이렇게 위로 아래로 중간방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에게 펼쳐서 모든 세상을 크고 귀하고 무량한, 원망 없고 거슬림 없는 사(捨)가 함께한 심(心)으로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사무색(四無色) ㅡ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색상(色想)들의 완전한 초월로부터, 저항의 상(想)들의 줄어듦으로부터, 다양함의 상(想)들을 작의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아무 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네 가지 받침대 ㅡ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가늠하면서 그것을 수용한다. 가늠하면서 그것을 참는다. 가늠하면서 피한다. 가늠하면서 제거한다.
네 가지 성자의 계보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는 것에 대해 칭찬한다. 그는 옷을 원인으로 부적절한 잘못된 방법을 저지르지 않는다. 옷을 얻지 못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옷을 얻더라도 속박되지 않고 기울지 않고 묶이지 않으며 위험을 보는 자, 해방의 지혜를 가진 자로서 사용한다. 또한, 그는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는 것 때문에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도반들이여, 거기에 대해 참으로 현명하고 게으르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정지(正知)], 빈틈없이 알아차리는[밀착된 념(念)] 자는 ‘고대로부터 전해오고, 가장 높은 것이라고 알려진 성자의 계보에 서 있는 비구’라고 불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는 것에 대해 칭찬한다. 그는 탁발 음식을 원인으로 부적절한 잘못된 방법을 저지르지 않는다. 탁발 음식을 얻지 못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탁발 음식을 얻더라도 속박되지 않고 기울지 않고 묶이지 않으며 위험을 보는 자, 해방의 지혜를 가진 자로서 사용한다. 또한, 그는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는 것 때문에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거기에 대해 참으로 현명하고 게으르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정지(正知)], 빈틈없이 알아차리는[밀착된 념(念)] 자는 ‘고대로부터 전해오고, 가장 높은 것이라고 알려진 성자의 계보에 서 있는 비구’라고 불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떤 잠잘 자리로도 만족하고, 어떤 잠잘 자리로도 만족하는 것에 대해 칭찬한다. 그는 잠잘 자리를 원인으로 부적절한 잘못된 방법을 저지르지 않는다. 잠잘 자리를 얻지 못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잠잘 자리를 얻더라도 속박되지 않고 기울지 않고 묶이지 않으며 위험을 보는 자, 해방의 지혜를 가진 자로서 사용한다. 또한, 그는 어떤 잠잘 자리로도 만족하는 것 때문에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거기에 대해 참으로 현명하고 게으르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정지(正知)], 빈틈없이 알아차리는[밀착된 념(念)] 자는 ‘고대로부터 전해오고, 가장 높은 것이라고 알려진 성자의 계보에 서 있는 비구’라고 불린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버림을 좋아하고 버림을 기뻐한다. 수행을 좋아하고 수행을 기뻐한다. 또한, 그는 버림을 좋아하고 버림을 기뻐하고, 수행을 좋아하고 수행을 기뻐하는 것 때문에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거기에 대해 참으로 현명하고 게으르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정지(正知)], 빈틈없이 알아차리는[밀착된 념(念)] 자는 ‘고대로부터 전해오고, 가장 높은 것이라고 알려진 성자의 계보에 서 있는 비구’라고 불린다.
네 가지 노력 ㅡ 단속의 노력, 버림의 노력, 수행의 노력, 보호의 노력. 그러면 도반들이여, 무엇이 단속의 노력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상(相)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것[수(受)]을 붙잡지 않는다. 그 안근(眼根)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간탐(慳貪)과 고뇌(苦惱)와 악(惡)한 불선법(不善法)들이 흘러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단속을 위해 실천한다. 안근(眼根)을 보호하고, 안근(眼根)에서 단속한다.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닿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인식하면서 상(相)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것[수(受)]을 붙잡지 않는다. 그 의근(意根)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간탐(慳貪)과 고뇌(苦惱)와 악(惡)한 불선법(不善法)들이 흘러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단속을 위해 실천한다. 의근(意根)을 보호하고, 의근(意根)에서 단속한다. 이것이, 도반들이여, 단속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도반들이여, 무엇이 버림의 노력인가?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일어난 소유의 생각을 떠오르게 두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장내고 존재하지 않게 한다. 일어난 분노의 생각을 … 일어난 폭력의 생각을 … 거듭 일어나는 불선법(不善法)들을 떠오르게 두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장내고 존재하지 않게 한다. 이것이, 도반들이여, 버림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도반들이여, 무엇이 수행의 노력인가?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떨침의 과정이고, 이탐(離貪)의 과정이고, 소멸의 과정이고, 쉼으로 귀결되는 염각지(念覺支)를 닦는다. … 택법각지(擇法覺支)를 닦는다. … 정진각지(精進覺支)를 닦는다. …희각지(喜覺支)를 닦는다. … 경안각지(輕安覺支)를 닦는다. … 정각지(定覺支)를 닦는다. … 떨침의 과정이고, 이탐(離貪)의 과정이고, 소멸의 과정이고, 쉼으로 귀결되는 사각지(捨覺支)를 닦는다. 이것이, 도반들이여, 수행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도반들이여, 무엇이 보호의 노력인가?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일어난 행운의 삼매의 상(相)을 보호한다. ㅡ 해골의 상(想), 벌레들이 버글거리는 상(想), 검푸른 빛을 띤 상(想), 구멍이 숭숭 뚫린 상(想), 부푼 상(想). 이것이, 도반들이여, 보호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cattāri ñāṇāni — dhamme ñāṇaṃ, anvaye ñāṇaṃ, pariye ñāṇaṃ, sammutiyā ñāṇaṃ.
네 가지 앎 ㅡ 법에 대한 앎, 뒤따르는 앎, 남들에 대한 앎, 일반적인 앎
다른 네 가지 앎 ㅡ 괴로움에 대한 앎, 괴로움의 자라남에 대한 앎, 괴로움이 소멸에 대한 앎,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에 대한 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