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 dhammā (DN 34.7-여섯 가지 법)
● cha dhammā (DN 34.7-여섯 가지 법)
여섯 가지 법은 많은 것을 만들고, 여섯 가지 법은 닦아야 하고, 여섯 가지 법은 완전히 알아야 하고, 여섯 가지 법은 버려야 하고, 여섯 가지 법은 퇴보로 이끌고, 여섯 가지 법은 진보로 이끌고, 여섯 가지 법은 꿰뚫기 어렵고, 여섯 가지 법은 생기게 해야 하고, 여섯 가지 법은 실답게 알아야 하고, 여섯 가지 법은 실현해야 합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이 많은 것을 만듭니까?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하는 법들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에 대해서 자(慈)와 함께하는 신업(身業)을 행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에 대해서 자(慈)와 함께하는 구업(口業)을 행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에 대해서 자(慈)와 함께하는 의업(意業)을 행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적절하고 정당하고 법답게 얻은 것들은 그것이 비록 나누어 사용하지 못할 만큼 얻어진 발우에 담긴 적은 것일지라도 계(戒)를 중시하는 동료수행자들과 공동으로 사용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구속되지 않고, 지자들이 칭찬하고,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그런 계들을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갖추어 머문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성스럽고 구원으로 이끌고 그대로 실천하면 괴로움의 부숨으로 이끄는 견해에 대해서,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그런 견해를 갖추어 머문다. 이것도 사랑을 만드는 것이고, 공경을 만드는 것이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이 여섯 가지 법이 많은 것을 만듭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을 닦아야 합니까? 여섯 가지 계속해서 기억함의 토대 ― 「불(佛)을 계속해서 기억함, 법(法)을 계속해서 기억함, 승(僧)을 계속해서 기억함, 계(戒)를 계속해서 기억함, 보시(布施)를 계속해서 기억함, 천신(天神)을 계속해서 기억함」 이 여섯 가지 법을 닦아야 합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합니까? 육내입처(六內入處) ― 「안처(眼處), 이처(耳處), 비처(鼻處), 설처(舌處), 신처(身處), 의처(意處)」 이 여섯 가지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을 버려야 합니까? 여섯 가지 애(愛)의 무리 ― 「색애(色愛), 성애(聲愛), 향애(香愛), 미애(味愛), 촉애(觸愛), 법애(法愛)」 이 여섯 가지 법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이 퇴보로 이끕니까? 여섯 가지 공경하지 않음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스승에 대해서 공경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법에 대해서 공경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상가에 대해서 공경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공부에 대해서 공경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불방일(不放逸)에 대해서 공경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친절함에 대해서 공경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이 여섯 가지 법이 퇴보로 이끕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이 진보로 이끕니까? 여섯 가지 공경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스승에 대해서 공경하고 유순하게 머문다. 법에 대해서 공경하고 유순하게 머문다. 상가에 대해서 공경하고 유순하게 머문다. 공부에 대해서 공경하고 유순하게 머문다. 불방일(不放逸)에 대해서 공경하고 유순하게 머문다. 친절함에 대해서 공경하고 유순하게 머문다.」 이 여섯 가지 법이 진보로 이끕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이 꿰뚫기 어렵습니까? 여섯 가지 해방되어야 하는 요소 ― 「여기, 도반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 ‘나에게 닦고, 많이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이어 머물고, 쌓고, 잘 떠맡은 자심해탈(慈心解脫)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 분노는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그러지 마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 ‘존자여,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중상하지 마시오.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닦고, 많이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이어 머물고, 쌓고, 잘 떠맡은 자심해탈(慈心解脫)을 얻은 사람에게 분노가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 것이다.’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이여, 자심해탈(慈心解脫), 이것은 분노의 해방(解放)입니다.’라고.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 ‘나에게 닦고, 많이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이어 머물고, 쌓고, 잘 떠맡은 비심해탈(悲心解脫)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 폭력은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그러지 마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 ‘존자여,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중상하지 마시오.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닦고, 많이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이어 머물고, 쌓고, 잘 떠맡은 비심해탈(悲心解脫)을 얻은 사람에게 폭력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 것이다.’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이여, 비심해탈(悲心解脫), 이것은 폭력의 해방(解放)입니다.’라고.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 ‘나에게 닦고, 많이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이어 머물고, 쌓고, 잘 떠맡은 희심해탈(喜心解脫)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 불쾌는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그러지 마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 ‘존자여,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중상하지 마시오.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닦고, 많이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이어 머물고, 쌓고, 잘 떠맡은 희심해탈(喜心解脫)을 얻은 사람에게 불쾌가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 것이다.’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이여, 희심해탈(喜心解脫), 이것은 불쾌의 해방(解放)입니다.’라고.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 ‘나에게 닦고, 많이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이어 머물고, 쌓고, 잘 떠맡은 사심해탈(捨心解脫)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 탐(貪)은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그러지 마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 ‘존자여,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중상하지 마시오.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닦고, 많이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이어 머물고, 쌓고, 잘 떠맡은 사심해탈(捨心解脫)을 얻은 사람에게 탐(貪)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 것이다.’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이여, 사심해탈(捨心解脫), 이것은 탐(貪)의 해방(解放)입니다.’라고.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 ‘나에게 닦고, 많이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이어 머물고, 쌓고, 잘 떠맡은 무상심해탈(無相心解脫)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 상(相)을 따르는 식(識)이 있다.’라고. 그에게 ‘그러지 마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 ‘존자여,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중상하지 마시오.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닦고, 많이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이어 머물고, 쌓고, 잘 떠맡은 무상심해탈(無相心解脫)을 얻은 사람에게 상(相)을 따르는 식(識)이 있을 것이다.’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이여, 무상심해탈(無相心解脫), 이것은 모든 상(相)의 해방(解放)입니다.’라고.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 ‘나에게 ‘나는 있다.’가 제거되었고, ‘나는 이것이다.’라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의심과 불확실함의 화살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그러지 마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 ‘존자여,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중상하지 마시오.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나는 있다.’가 제거된 곳에서 ‘나는 이것이다.’라고 관찰하지 않는 자에게 의심과 불확실함의 화살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 것이다.’라는 것은 경우가 아니고, 여지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이여, ‘나는 있다’라는 자기화가 뿌리 뽑힘, 이것은 의심과 불확실함의 화살의 해방(解放)입니다.’라고.」 이 여섯 가지 법이 꿰뚫기 어렵습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을 생기게 해야 합니까? 여섯 가지 지속하는 머묾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평정과 사띠와 삼빠자나를 가진 자로 머문다.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닿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인식하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평정과 사띠와 삼빠자나를 가진 자로 머문다.」 이 여섯 가지 법을 생기게 해야 합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여섯 가지 위없음 ― 「봄의 위 없음, 들음의 위 없음, 얻음의 위 없음, 공부의 위 없음, 섬김의 위 없음, 기억의 위 없음」 이 여섯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을 실현해야 합니까? 여섯 가지 실다운 지혜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합니다. ―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도 하고, 분말과 성벽과 산을 가로지르기를 허공에서처럼 닿지 않고 갑니다. 땅에서도 물에서처럼 떠오르고 들어갑니다. 물에서도 땅에서처럼 빠지지 않고 갑니다. 허공에서도 가부좌하고 날개 달린 새처럼 갑니다. 이렇게 강력하고 웅장한 저 달과 해를 손으로 닿아 쓰다듬습니다.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으로 나아갑니다.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멀든 가깝든 하늘과 인간 양쪽의 소리를 듣습니다.
다른 중생들과 다른 사람들의 심(心)을 심(心)으로 분별하여 분명히 압니다. ― ①탐(貪)이 있는 심(心)을 ‘탐(貪)이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②탐(貪)이 없는 심(心)을 ‘탐(貪)이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③진(嗔)이 있는 심(心)을 ‘진(嗔)이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④진(嗔)이 없는 심(心)을 ‘진(嗔)이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⑤치(癡)가 있는 심(心)을 ‘치(癡)가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⑥치(癡)가 없는 심(心)을 ‘치(癡)가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⑦수축된 심(心)을 ‘수축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⑧흩어진 심(心)을 ‘흩어진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⑨개발된 심(心)을 ‘개발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⑩개발되지 않은 심(心)을 ‘개발되지 않은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⑪위가 있는 심(心)을 ‘위가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⑫위가 없는 심(心)을 ‘위가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⑬삼매를 닦는 심(心)을 ‘삼매를 닦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⑭삼매를 닦지 않는 심(心)을 ‘삼매를 닦지 않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⑮해탈된 심(心)을 ‘해탈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⑯해탈되지 않은 심(心)을 ‘해탈되지 않은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합니다. 즉 ―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진화[소멸]하는 여러 겁, 세계가 퇴보하는[일어나는] 여러 겁, 세계가 진화하고 퇴보하는 여러 겁을 기억합니다. ―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합니다.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봅니다. 그는 그와 같이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압니다. ― ‘이들은 신(身)으로 나쁜 삶을 살고 구(口)로 나쁜 삶을 살고 의(意)로 나쁜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신(身)으로 좋은 삶을 살고 구(口)로 좋은 삶을 살고 의(意)로 좋은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봅니다. 그는 그와 같이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압니다.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 여섯 가지 법을 실현해야 합니다.
이렇게 이런 예순 가지 법은 자연스럽고, 진실이고, 사실이고, 사실을 벗어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생겨나지 않는, 여래(如來)께서 바르게 깨달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