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ñca dhammā (DN 34.6-다섯 가지 법)
● pañca dhammā (DN 34.6-다섯 가지 법)
다섯 가지 법은 많은 것을 만들고, 다섯 가지 법은 닦아야 하고, 다섯 가지 법은 완전히 알아야 하고, 다섯 가지 법은 버려야 하고, 다섯 가지 법은 퇴보로 이끌고, 다섯 가지 법은 진보로 이끌고, 다섯 가지 법은 꿰뚫기 어렵고, 다섯 가지 법은 생기게 해야 하고, 다섯 가지 법은 실답게 알아야 하고, 다섯 가지 법은 실현해야 합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이 많은 것을 만듭니까?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①믿음이 있다. ‘이렇게 그분 세존(世尊)께서는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밝음과 실천을 갖추신 분, 진리의 길 보이신 분, 세상일을 모두 훤히 아시는 분,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분, 모든 천상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이시다.’라고 여래(如來)의 깨달음을 믿는다. ②그는 결점이 없고, 병이 없다. 정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너무 차지도 않고 너무 뜨겁지도 않은 중간의 좋은 소화력과 흡수력을 갖췄다. ③그는 교활하지 않고 사기 치지 않는다. 스승과 현명한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낸다. ④그는 불선법(不善法)들의 버림을 위해, 선법(善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이다. ⑤그는 지혜를 가졌다. 자라남-줄어듦으로 이끌고, 성스러운 꿰뚫음에 의해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바르게 이끄는 지혜를 갖추었다.」 이 다섯 가지 법이 많은 것을 만듭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을 닦아야 합니까? 다섯 요소를 갖춘 바른 삼매 ― 「희열의 충만, 행복의 충만, 심(心)의 충만, 광명의 충만, 상(相)의 관찰」 이 다섯 가지 법을 닦아야 합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합니까? 오취온(五取蘊) ― 「색취온(色取蘊), 수취온(受取蘊), 상취온(想取蘊), 행취온(行取蘊), 식취온(識取蘊)」 이 다섯 가지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을 버려야 합니까? 다섯 가지 장애 ― 「소유의 관심의 장애, 진에(瞋恚)의 장애, 해태-혼침의 장애, 들뜸-후회의 장애, 의심의 장애」 이 다섯 가지 법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이 퇴보로 이끕니까? 다섯 가지 심(心)의 방치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스승에 대해 불신하고, 의심하고, 분명히 알지 못하고, 기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스승에 대해 불신하고, 의심하고, 분명히 알지 못하고, 기뻐하지 않는 그 비구의 심(心)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않는다. 이렇게 심(心)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버려지지 않은 심(心)의 방치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법에 대해 불신하고, 의심하고, 분명히 알지 못하고, 기뻐하지 않는다. … 이렇게 심(心)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않는 것이 두 번째 버려지지 않은 심(心)의 방치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상가(僧伽)에 대해 불신하고, 의심하고, 분명히 알지 못하고, 기뻐하지 않는다. … 이렇게 심(心)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않는 것이 세 번째 버려지지 않은 심(心)의 방치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공부에 대해 불신하고, 의심하고, 분명히 알지 못하고, 기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공부에 대해 불신하고, 의심하고, 분명히 알지 못하고, 기뻐하지 않는 그 비구의 심(心)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않는다. 이렇게 심(心)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않는 것이 네 번째 버려지지 않은 심(心)의 방치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화내고, 만족하지 못하고, 심(心)이 지치고, 방치가 생긴 비구가 있다. 도반들이여,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화내고, 만족하지 못하고, 심(心)이 지치고, 방치가 생긴 그 비구의 심(心)은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않는다. 이렇게 심(心)이 노력으로, 실천으로, 지속으로, 정진으로 기울지 않는 것이 다섯 번째 버려지지 않은 심(心)의 방치이다. 이것이 버려지지 않은 다섯 가지 심(心)의 방치이다.」 이 다섯 가지 법이 퇴보로 이끕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이 진보로 이끕니까? 다섯 가지 기능 ―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사띠의 기능, 삼매의 기능, 지혜의 기능」 이 다섯 가지 법이 진보로 이끕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이 꿰뚫기 어렵습니까? 여섯 가지 해방되어야 하는 요소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가 소유의 사유를 작의(作意)할 때 심(心)은 소유의 삶에 대해 다가가지 않고 순일해지지 않고 안정되지 않고 해탈하지 않는다. 출리(出離)를 작의할 때 심(心)은 출리에 대해 다가가고 순일해지고 안정되고 해탈한다. 그에게 그 심(心)은 잘 행해졌고 잘 수행되었고 잘 일어났고 잘 해탈했고 소유의 삶에 의한 묶임에서 잘 풀려났다. 소유의 사유의 조건으로부터 번뇌들이 생기는 자들에게 걱정과 열기가 있다. 그는 그것들에서 벗어났고, 그 느낌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것이 소유의 삶의 해방이라고 선언된 것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가 분노를 작의(作意)할 때 심(心)은 분노에 대해 다가가지 않고 순일해지지 않고 안정되지 않고 해탈하지 않는다. 분노 않음을 작의할 때 심(心)은 분노 않음에 대해 다가가고 순일해지고 안정되고 해탈한다. 그에게 그 심(心)은 잘 행해졌고 잘 수행되었고 잘 일어났고 잘 해탈했고 진에에 의한 묶임에서 잘 풀려났다. 분노의 조건으로부터 번뇌들이 생기는 자들에게 걱정과 열기가 있다. 그는 그것들에서 벗어났고, 그 느낌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것이 분노의 해방이라고 선언된 것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가 폭력을 작의(作意)할 때 심(心)은 폭력에 대해 다가가지 않고 순일해지지 않고 안정되지 않고 해탈하지 않는다. 비폭력을 작의할 때 심(心)은 비폭력에 대해 다가가고 순일해지고 안정되고 해탈한다. 그에게 그 심(心)은 잘 행해졌고 잘 수행되었고 잘 일어났고 잘 해탈했고 폭력에 의한 묶임에서 잘 풀려났다. 폭력의 조건으로부터 번뇌들이 생기는 자들에게 걱정과 열기가 있다. 그는 그것들에서 벗어났고, 그 느낌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것이 폭력의 해방이라고 선언된 것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가 색(色)들을 작의(作意)할 때 심(心)은 색(色)들에 대해 다가가지 않고 순일해지지 않고 안정되지 않고 해탈하지 않는다. 무색(無色)을 작의할 때 심(心)은 무색(無色)에 대해 다가가고 순일해지고 안정되고 해탈한다. 그에게 그 심(心)은 잘 행해졌고 잘 수행되었고 잘 일어났고 잘 해탈했고 색(色)들에 의한 묶임에서 잘 풀려났다. 색(色)의 조건으로부터 번뇌들이 생기는 자들에게 걱정과 열기가 있다. 그는 그것들에서 벗어났고, 그 느낌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것이 색(色)들의 해방이라고 선언된 것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가 유신(有身)을 작의(作意)할 때 심(心)은 유신(有身)에 대해 다가가지 않고 순일해지지 않고 안정되지 않고 해탈하지 않는다. 유신(有身)의 멸(滅)을 작의할 때 심(心)은 유신(有身)의 멸(滅)에 대해 다가가고 순일해지고 안정되고 해탈한다. 그에게 그 심(心)은 잘 행해졌고 잘 수행되었고 잘 일어났고 잘 해탈했고 유신(有身)에 의한 묶임에서 잘 풀려났다. 유신(有身)의 조건으로부터 번뇌들이 생기는 자들에게 걱정과 열기가 있다. 그는 그것들에서 벗어났고, 그 느낌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것이 유신(有身)의 해방이라고 선언된 것이다.」 이 다섯 가지 법이 꿰뚫기 어렵습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을 생기게 해야 합니까? 다섯 가지 앎을 가진 바른 삼매 ― 「‘이 삼매는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의 즐거운 보(報)가 있다.’라는 개별적인 앎이 생긴다. ‘이 삼매는 성스럽고 개발된 것이다.’라는 개별적인 앎이 생긴다. ‘이 삼매는 훌륭한 사람이 실천하는 것이다.’라는 개별적인 앎이 생긴다. ‘이 삼매는 평화롭고 뛰어나고 진정을 얻고 단일한 상태에 도달한 삼매이지 행에 의해 제한되고 장애가 있는 삼매가 아니다.’라는 개별적인 앎이 생긴다. ‘나는 사띠하면서 이 삼매를 증득하고 사띠하면서 나온다.’라는 개별적인 앎이 생긴다.」 이 다섯 가지 법을 생기게 해야 합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다섯 가지 해탈의 토대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한다.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한만큼 각각의 그 법에 대해 그는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한다.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하는 그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해탈하지 못한 심(心)은 해탈하거나, 완전히 부수어지지 않은 번뇌들이 완전히 부수어지거나, 얻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는 첫 번째 토대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한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한만큼 각각의 그 법에 대해 그는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한다.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하는 그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해탈하지 못한 심(心)은 해탈하거나, 완전히 부수어지지 않은 번뇌들이 완전히 부수어지거나, 얻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는 두 번째 토대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하지 않는다. 또한,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상세하게 되풀이한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상세하게 되풀이하는 만큼 각각의 그 법에 대해 그는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한다.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하는 그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해탈하지 못한 심(心)은 해탈하거나, 완전히 부수어지지 않은 번뇌들이 완전히 부수어지거나, 얻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는 세 번째 토대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하지 않는다.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또한,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상세하게 되풀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심(心)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고 의(意)로 주의 깊게 본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심(心)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고 의(意)로 주의 깊게 보는 만큼 각각의 그 법에 대해 그는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한다.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하는 그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해탈하지 못한 심(心)은 해탈하거나, 완전히 부수어지지 않은 번뇌들이 완전히 부수어지거나, 얻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는 네 번째 토대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하지 않는다.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상세하게 되풀이하지도 않는다. 또한,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심(心)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고 의(意)로 주의 깊게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어떤 삼매의 상(相)을 잘 취하고, 잘 작의(作意)하고, 잘 찾고, 지혜로써 잘 꿰뚫는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어떤 삼매의 상(相)을 잘 취하고, 잘 작의(作意)하고, 잘 찾고, 지혜로써 잘 꿰뚫는 만큼 각각의 그 법에 대해 그는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한다.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하는 그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해탈하지 못한 심(心)은 해탈하거나, 완전히 부수어지지 않은 번뇌들이 완전히 부수어지거나, 얻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는 다섯 번째 토대이다.」 이 다섯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을 실현해야 합니까? 오법온(五法蘊) ― 「계온(戒蘊), 정온(定蘊), 혜온(慧蘊), 해탈온(解脫蘊), 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 이 다섯 가지 법을 실현해야 합니다.
이렇게 이런 쉰 가지 법은 자연스럽고, 진실이고, 사실이고, 사실을 벗어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생겨나지 않는, 여래(如來)께서 바르게 깨달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