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a dhammā (DN 34.10-아홉 가지 법)
● nava dhammā (DN 34.10-아홉 가지 법)
아홉 가지 법은 많은 것을 만들고, 아홉 가지 법은 닦아야 하고, 아홉 가지 법은 완전히 알아야 하고, 아홉 가지 법은 버려야 하고, 아홉 가지 법은 퇴보로 이끌고, 아홉 가지 법은 진보로 이끌고, 아홉 가지 법은 꿰뚫기 어렵고, 아홉 가지 법은 생기게 해야 하고, 아홉 가지 법은 실답게 알아야 하고, 아홉 가지 법은 실현해야 합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이 많은 것을 만듭니까? 아홉 가지 여리작의(如理作意)를 뿌리로 하는 법들 ― 「여리작의하는 자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심(心)이 삼매를 닦을 때 있는 그대로 알고 본다.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는 염오(厭惡)한다. 염오하는 자는 이탐(離貪)한다. 이탐으로부터 해탈한다.」 이 아홉 가지 법이 많은 것을 만듭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을 닦아야 합니까? 아홉 가지 청정을 위한 정진의 요소 ― 「계(戒) 청정(淸淨)의 청정을 위한 정진의 요소, 심(心) 청정의 청정을 위한 정진의 요소, 견해 청정의 청정을 위한 정진의 요소, 불확실 극복 청정의 청정을 위한 정진의 요소, 길과 길 아님의 앎과 봄 청정의 청정을 위한 정진의 요소, 실천의 앎과 봄 청정의 청정을 위한 정진의 요소, 앎과 봄 청정의 청정을 위한 정진의 요소, 지혜 청정의 청정을 위한 정진의 요소, 해탈(解脫) 청정의 청정을 위한 정진의 요소」 이 아홉 가지 법을 닦아야 합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합니까? 아홉 가지 중생의 거처 ― 「도반들이여, 다양한 몸과 다양한 상(想)을 가진 중생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인간들, 어떤 신(神)들, 어떤 벌 받는 상태에 태어난 자들이다. 이것이 첫 번째 중생의 거처이다.
도반들이여, 다양한 몸과 통일된 상(想)을 가진 중생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초선(初禪)에 의해 태어나는 범신천(梵身天)의 신들이다. 이것이 두 번째 중생의 거처이다.
도반들이여, 통일된 몸과 다양한 상(想)을 가진 중생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광음천(光音天)의 신들이다. 이것이 세 번째 중생의 거처이다.
도반들이여, 통일된 몸과 통일된 상(想)을 가진 중생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변정천(遍淨天)의 신들이다. 이것이 네 번째 중생의 거처이다.
도반들이여, 무상(無想)이어서 경험하지 않는 중생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의 신들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중생의 거처이다.
도반들이여, 색상(色想)들의 완전한 초월로부터, 저항의 상(想)들의 줄어듦으로부터, 다양함의 상(想)들을 작의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에 태어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중생의 거처이다.
도반들이여,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에 태어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중생의 거처이다.
도반들이여,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에 태어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여덟 번째 중생의 거처이다.
도반들이여,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태어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아홉 번째 중생의 거처이다.」 이 아홉 가지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을 버려야 합니까? 애(愛)를 뿌리로 하는 아홉 가지 법들 ― 「애(愛)를 연(緣)하여 조사가 있다. 조사를 연(緣)하여 습득이 있다. 습득을 연(緣)하여 차별이 있다. 차별을 연(緣)하여 욕탐(欲貪)이 있다. 욕탐을 연(緣)하여 묶임이 있다. 묶임을 연(緣)하여 잡음이 있다. 잡음을 연(緣)하여 인색이 있다. 인색을 연(緣)하여 보호가 있다. 보호를 위해 몽둥이를 들고 칼을 들고, 싸우고, 다투고, 분쟁하고, 서로서로 이간하고, 거짓말하는 여러 가지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이 생겨난다.」 이 아홉 가지 법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이 퇴보로 이끕니까? 아홉 가지 미워하는 이유 ― 「‘나에게 손해를 끼쳤다.’라고 미움에 묶인다. ‘나에게 손해를 끼친다.’라고 미움에 묶인다. ‘나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다.’라고 미움에 묶인다. ‘내가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다.’라고 미움에 묶인다. ‘내가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친다.’라고 미움에 묶인다. ‘내가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다.’라고 미움에 묶인다. ‘내가 사랑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었다.’라고 미움에 묶인다. ‘내가 사랑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준다.’라고 미움에 묶인다. ‘내가 사랑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줄 것이다.’라고 미움에 묶인다.」 이 아홉 가지 법이 퇴보로 이끕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이 진보로 이끕니까? 아홉 가지 미움의 정복 ― 「‘나에게 손해를 끼쳤다. 그에게 얻어진 것이 여기 어디에 있는가?’라고 미움을 정복한다. ‘나에게 손해를 끼친다. 그에게 얻어지는 것이 여기 어디에 있는가?’라고 미움을 정복한다. ‘나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다. 그에게 얻어질 것이 여기 어디에 있는가?’라고 미움을 정복한다. ‘내가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다. 그에게 얻어진 것이 여기 어디에 있는가?’라고 미움을 정복한다. ‘내가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친다. 그에게 얻어지는 것이 여기 어디에 있는가?’라고 미움을 정복한다. ‘내가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다. 그에게 얻어질 것이 여기 어디에 있는가?’라고 미움을 정복한다. ‘내가 사랑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었다. 그에게 얻어진 것이 여기 어디에 있는가?’라고 미움을 정복한다. ‘내가 사랑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준다. 그에게 얻어지는 것이 여기 어디에 있는가?’라고 미움을 정복한다. ‘내가 사랑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이익을 줄 것이다. 그에게 얻어질 것이 여기 어디에 있는가?’라고 미움을 정복한다.」 이 아홉 가지 법이 진보로 이끕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이 꿰뚫기 어렵습니까? 아홉 가지 다양함 ― 「계(界)의 다양함을 연(緣)하여 촉(觸)의 다양함이 생기고, 촉(觸)의 다양함을 연(緣)하여 수(受)의 다양함이 생기고, 수(受)의 다양함을 연(緣)하여 상(想)의 다양함이 생기고, 상(想)의 다양함을 연(緣)하여 사유의 다양함이 생기고, 사유의 다양함을 연(緣)하여 관심의 다양함이 생기고, 관심이 다양함을 연(緣)하여 열기의 다양함이 생기고, 열기의 다양함을 연(緣)하여 조사의 다양함이 생기고, 조사의 다양함을 연(緣)하여 얻음의 다양함이 생긴다.」 이 아홉 가지 법이 꿰뚫기 어렵습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을 생기게 해야 합니까? 아홉 가지 상(想) ― 「부정의 상(想), 죽음의 상(想), 음식에 혐오하는 상(想),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상(想), 무상의 상(想), 무상-고의 상(想), 고-무아의 상(想), 버림의 상(想), 바램의 상(想)」 이 아홉 가지 법을 생기게 해야 합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구차제주(九次第住)]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머물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색상(色想)들의 완전한 초월로부터, 저항의 상(想)들의 줄어듦으로부터, 다양함의 상(想)들을 작의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 아홉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을 실현해야 합니까? 아홉 가지 차례로 소멸함[구차제멸(九次第滅)] ― 「초선을 증득한 자에게 욕상(慾想)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제2선을 증득한 자에게 위딱까와 위짜라가 소멸된 상태가 있다. 제3선을 증득한 자에게 희열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제4선을 증득한 자에게 들숨날숨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공무변처를 증득한 자에게 색상(色想)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식무변처를 증득한 자에게 공무변처의 상(想)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무소유처를 증득한 자에게 식무변처의 상(想)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한 자에게 무소유처의 상(想)이 소멸된 상태가 있다. 상수멸을 증득한 자에게 상(想)과 수(受)가 소멸된 상태가 있다.」 이 아홉 가지 법을 실현해야 합니다.
이렇게 이런 아흔 가지 법은 자연스럽고, 진실이고, 사실이고, 사실을 벗어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생겨나지 않는, 여래(如來)께서 바르게 깨달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