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실답게 알아야 하는 법
9. 실답게 알아야 하는 법
어떤 한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모든 중생은 자량(資糧)으로 유지된다는 것. 이 한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두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두 가지 계(界) ― 유위(有爲)의 계(界)와 무위(無爲)의 계(界). 이 두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세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세 가지 계(界) ― 욕계(慾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이 세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네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사성제(四聖諦) ― 「고성제(苦聖蹄), 고집성제(苦集聖諦), 고멸성제(苦滅聖諦),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 이 네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다섯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다섯 가지 해탈의 토대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한다.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한만큼 각각의 그 법에 대해 그는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한다.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하는 그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해탈하지 못한 심(心)은 해탈하거나, 완전히 부수어지지 않은 번뇌들이 완전히 부수어지거나, 얻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는 첫 번째 토대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한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한만큼 각각의 그 법에 대해 그는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한다.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하는 그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해탈하지 못한 심(心)은 해탈하거나, 완전히 부수어지지 않은 번뇌들이 완전히 부수어지거나, 얻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는 두 번째 토대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하지 않는다. 또한,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상세하게 되풀이한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상세하게 되풀이하는 만큼 각각의 그 법에 대해 그는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한다.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하는 그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해탈하지 못한 심(心)은 해탈하거나, 완전히 부수어지지 않은 번뇌들이 완전히 부수어지거나, 얻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는 세 번째 토대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하지 않는다.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또한,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상세하게 되풀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심(心)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고 의(意)로 주의 깊게 본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심(心)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고 의(意)로 주의 깊게 보는 만큼 각각의 그 법에 대해 그는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한다.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하는 그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해탈하지 못한 심(心)은 해탈하거나, 완전히 부수어지지 않은 번뇌들이 완전히 부수어지거나, 얻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는 네 번째 토대이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스승이나 어떤 존경받을 동료수행자가 법을 설하지 않는다.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상세하게 되풀이하지도 않는다. 또한,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심(心)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고 의(意)로 주의 깊게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어떤 삼매의 상(相)을 잘 취하고, 잘 작의(作意)하고, 잘 찾고, 지혜로써 잘 꿰뚫는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어떤 삼매의 상(相)을 잘 취하고, 잘 작의(作意)하고, 잘 찾고, 지혜로써 잘 꿰뚫는 만큼 각각의 그 법에 대해 그는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한다. 의미를 경험하고 법을 경험하는 그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해탈하지 못한 심(心)은 해탈하거나, 완전히 부수어지지 않은 번뇌들이 완전히 부수어지거나, 얻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는 다섯 번째 토대이다.」 이 다섯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여섯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여섯 가지 위없음 ― 「봄의 위 없음, 들음의 위 없음, 얻음의 위 없음, 공부의 위 없음, 섬김의 위 없음, 기억의 위 없음」 이 여섯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일곱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일곱 가지 차별의 토대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공부의 실천에 강한 관심이 있다. 미래에도 공부의 실천에 대한 애정이 떠나지 않는다. 법의 관찰에 강한 관심이 있다. 미래에도 법의 관찰에 대한 애정이 떠나지 않는다. 원함의 제어에 강한 관심이 있다. 미래에도 원함의 제어에 대한 애정이 떠나지 않는다. 홀로 머묾에 강한 관심이 있다. 미래에도 홀로 머묾에 대한 애정이 떠나지 않는다. 정진의 유지에 강한 관심이 있다. 미래에도 정진의 유지에 대한 애정이 떠나지 않는다. 사띠와 신중함에 강한 관심이 있다. 미래에도 사띠와 신중함에 대한 애정이 떠나지 않는다. 견해의 꿰뚫음에 강한 관심이 있다. 미래에도 견해의 꿰뚫음에 대한 애정이 떠나지 않는다.」 이 일곱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여덟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여덟 가지 정복의 경지[팔승처(八勝處)] ― 「어떤 자는 안으로 색상(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제한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정복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정복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색상(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무량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정복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두 번째 정복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제한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정복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세 번째 정복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무량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정복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네 번째 정복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푸르고 푸른 색깔이고 푸른 모습이고 푸른 광채를 지닌 색(色)들을 본다. 예를 들면, 아마 꽃은 푸르고 푸른 색깔이고 푸른 모습이고 푸른 광채를 지녔다. 예를 들면,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이 푸르고 푸른 색깔이고 푸른 모습이고 푸른 광채를 지녔다. 이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푸르고 푸른 색깔이고 푸른 모습이고 푸른 광채를 지닌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정복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정복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노랗고 노란 색깔이고 노란 모습이고 노란 광채를 지닌 색(色)들을 본다. 예를 들면, 깐니까라 꽃은 노랗고 노란 색깔이고 노란 모습이고 노란 광채를 지녔다. 예를 들면,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이 노랗고 노란 색깔이고 노란 모습이고 노란 광채를 지녔다. 이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노랗고 노란 색깔이고 노란 모습이고 노란 광채를 지닌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정복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여섯 번째 정복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빨갛고 빨간 색깔이고 빨간 모습이고 빨간 광채를 지닌 색(色)들을 본다. 예를 들면, 월계꽃은 빨갛고 빨간 색깔이고 빨간 모습이고 빨간 광채를 지녔다. 예를 들면,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이 빨갛고 빨간 색깔이고 빨간 모습이고 빨간 광채를 지녔다. 이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빨갛고 빨간 색깔이고 빨간 모습이고 빨간 광채를 지닌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정복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일곱 번째 정복의 경지이다.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희고 흰 색깔이고 흰 모습이고 흰 광채를 지닌 색(色)들을 본다. 예를 들면, 샛별은 희고 흰 색깔이고 흰 모습이고 흰 광채를 지녔다. 예를 들면,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이 희고 흰 색깔이고 흰 모습이고 흰 광채를 지녔다. 이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 무색상(無色想)을 가지고서, 밖으로 희고 흰 색깔이고 흰 모습이고 흰 광채를 지닌 색(色)들을 본다. ‘이것들을 정복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는 이런 상(想)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여덟 번째 정복의 경지이다.」 이 여덟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아홉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구차제주(九次第住)] ―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머물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색상(色想)들의 완전한 초월로부터, 저항의 상(想)들의 줄어듦으로부터, 다양함의 상(想)들을 작의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 아홉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열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열 가지 극복의 토대 ― 「바른 견해를 가진 자에게 삿된 견해가 극복된다. 그러면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나는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도 극복된다. 바른 사유를 가진 자에게 삿된 사유가 극복된다. … 바른말을 가진 자에게 삿된 말이 극복된다. … 바른 행위를 가진 자에게 삿된 행위가 극복된다. … 바른 생활을 가진 자에게 삿된 생활이 극복된다. … 바른 정진을 가진 자에게 삿된 정진이 극복된다. … 바른 사띠를 가진 자에게 삿된 사띠가 극복된다. … 바른 삼매를 가진 자에게 삿된 삼매가 극복된다. … 바른 앎을 가진 자에게 삿된 앎이 극복된다. … 바른 해탈을 가진 자에게 삿된 해탈이 극복된다. 그러면 삿된 해탈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도 극복된다.」 이 열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