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 니까야 관통 후 품별 정리 4-1)큰 쌍 품(MN 31~40)(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813)
▣ 맛지마 니까야 관통 후 품별 정리 4-1)큰 쌍 품(MN 31~40)(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81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tb1R_Mvzahs&t=4291s
【품별 정리 - 제1권 mūlapaṇṇāsapāḷi】 4. mahāyamakavaggo 큰 쌍 품
(큰 쌍 품)은
(MN 31-고싱가 작은 경)/(MN 32-고싱가 큰 경)/(MN 33-소 치는 사람 큰 경)/(MN 34-소치는 사람 작은 경)/(MN 35-삿짜까 작은 경)/(MN 36-삿짜까 큰 경)/(MN 37-애(愛)의 부서짐의 작은 경)/(MN 38-애(愛)의부서짐의 큰 경)/(MN 39-앗사뿌라 큰 경)/(MN 40-앗사뿌라 작은 경)
의 열 개의 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cūḷagosiṅgasuttaṃ (MN 31-고싱가 작은 경)
• 부처님이 안부를 물음 ― ‘그대들은 견딜만하고 삶을 유지할만하고 탁발에 어려움은 없는가?’
• 길과 실천에 대해 물음 ‒ ‘이렇게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로써 머무는 그대들은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가?’
; 인간을 넘어선 법들(uttarimanussadhammā)
→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
• 구차제주(九次第住) = 확정된 길
(MN 25-미끼 경)과 (MN 26-덫 경)과 (MN 30-심재 비유의 작은 경)에 이어 이 경도 구차제주(九次第住)를 중심으로 연결됩니다. 아누룻다-난디야-끼밀라 존자가 머무는 고싱가살라 수풀 지역을 방문한 부처님이 안부를 묻고 공부를 이끄는데, ①화합 위에서 ②생활과 계목의 측면에서 갈등이 없을 것과 ③길과 실천의 측면에서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 것으로의 구차제주(九次第住)란 확정된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에 대한 디가 빠라자나 약카의 찬탄에 이어 신들이 받아 외치는데, 땅의 신들로부터 범신천(梵身天)의 신들에 이릅니다. 부처님은 그 약카의 찬탄에 동의하는데, 어떤 단위에서든 출가한 사람을 분명한 심(心)으로 기억한다면,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됩니다.
※ 그러니 출가한 가족에 대해 분명한 심으로 기억하고 후원해야 합니다. 그때, 가족의 출가가 남아있는 가족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주는 조건이 됩니다.
▣ 주제의 확장 ― (70)「uttari manussadhamma 인간을 넘어선 법」
▣ 주제의 확장 ― (70-1)「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
▣ 주제의 확장 ― (38)「신(神)들의 소리침(devāsaddamanussāvesuṃ/saddamanussāventi)」의 용례
2. mahāgosiṅgasuttaṃ (MN 32-고싱가 큰 경)
• 고싱가살라 숲을 빛나게 하는가? ‒ 오후에 탁발을 마치고 돌아와서 ‘내가 집착하지 않아서 번뇌로부터 심(心)이 해탈하지 않는 한, 이 교차한 다리를 풀지 않을 것이다.’라며 다리를 교차하고, 몸을 곧게 뻗치고, 콧구멍 주위에 사띠를 준비한 채 앉아있는 비구
누가 숲을 빛나게 하는지의 토론으로 여섯 명의 큰 제자들의 특징을 설명하는데, 아난다 존자는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명심하고 배운 것을 쌓음, 레와따 존자는 홀로 머물며 선(禪)을 닦음, 아누룻다 존자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 마하깟사빠 존자는 두타행(頭陀行)과 오법온(五法蘊)의 실천,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법에 대한 이야기(abhidhamma)를 통해 법을 설함, 사리뿟따 존자는 심(心)을 지배하고 심(心)에 의해 지배되지 않음 등입니다. 이어서 부처님은 호흡 수행에 매진하여 깨달음을 성취할 것을 제시합니다.
특히,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법에 대한 이야기(abhidhamma)를 하는 비구라고 소개하는 서술에서 아비담마(abhidhamma)가 문답의 형식을 띤 법의 대화(아비담마의 의미 ― ‘서로 질문을 하고, 질문받은 사람은 서로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경(經)과 율(律)에 나타나는 abhidhamma는 삼장(三藏)[경(經)-율(律)-론(論)]을 구성하는 논장(論藏)이 아니라 법(法-dhamma)이 설해진 목적에 따르는 의미(attha)를 규명하기 위한 ‘법(法)에 대한 공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리뿟따 존자가 심(心)을 지배하고 심(心)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는 서술에서 무아이기 때문에 가지는 중생의 한계(나를 구성하는 것들에 대해 권한을 가지지 못함 ‒ 行들 = 無常-苦-無我)를 극복하고 (無常의 가라앉음에 의한 樂-無我의) 열반(완성된 삶)을 실현한 경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주제의 확장 ― (39)「abhidhamma는 무엇인가?」
3. mahāgopālakasuttaṃ (MN 33-소 치는 사람 큰 경)
• 이 법(法)과 율(律)에서 자라나고 늘어나고 충만하게 될 수 없음 =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부서짐-무너짐-바램-소멸-놓음을 이어보며 머물 수 없음
열한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자라나고 늘어나고 충만하게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열한 가지 법(*)을 설명합니다. 이때, 첫 번째 법은 물질을 아는 것인데, 물질[색(色)]은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로의 삶에서 마음에 대응하는 몸과 세상을 포괄합니다. 그래서 물질을 부처님의 정의와 다른 방법으로 알게 되면,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없고,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한 삶의 향상을 도모하지 못합니다. 경과 율에 나타나는 abhidhamma를 논장으로 해석하지 않아야 하듯이, 색(色)도 아비담마의 설명대로 해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경(經)과 율(律)에 의한 공부의 토대 위에서 색(色)은 사대(四大)와 사대조색(四大造色)일 뿐입니다.
(*) ① 색(色)은 사대(四大)와 사대조색(四大造色)이라고 알고,
②업(業)의 특징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고, 업의 특징 때문에 현명한 자가 된다고 알고,
③떠오른 소유-분노-폭력의 생각을 제거하고,
④기능을 단속하고,
⑤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상세하게 남에게 설하고,
⑥많이 배웠고, 가르침을 계승하고, 법(法)을 명심하고, 율(律)을 명심하고, 논모(論母)를 명심하는 비구들을 따라 배우고,
⑦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에서 의미에 대한 앎을 얻고, 법에 대한 앎을 얻고, 법에 수반되는 환희를 얻고,
⑧ 팔정도를 알고,
⑨자신의 아버지의 경계인 비구의 영역/비구의 영역인 물려받은 세상으로의 사념처(四念處)에 능숙하고,
⑩초청받았을 때, 수용하기 위한 적당량을 알고,
⑪ 출가한 지 오래되어 고참인 장로 비구들을 위한 헌신할 것
▣ 주제의 확장 ― (40)「내입처(內入處)-외입처(外入處)-식(識)-촉(觸)-수(受)-상(想)-사(思)-애(愛)에 이어지는 경우들」
4. cūḷagopālakasuttaṃ (MN 34-소치는 사람 작은 경)
• 지도자의 역량 → 부처님은 지혜로운 지도자
소 치는 사람이 지혜롭지 못하면 소들이 불행을 겪듯이, 사람들의 지도자가 지혜 롭지 못하면, 뒤따르는 사람에게 불익과 고통을 가져오게 됩니다. 소 치는 사람이 지혜로우면 소들이 안전하게 강을 건너듯이, 사람들의 지도자가 지혜로우면, 뒤따르는 사람에게 이익과 행복을 가져옵니다.
부처님은 지혜로운 지도자여서 번뇌 다한 아라한들은 마라의 흐름을 가로질러 끊고 안전한 저쪽 편으로 갔고, 불환자-일래자-예류자-법을 따르는 자-믿음을 따르는 자들도 마라의 흐름을 가로질러 끊고 안전한 저쪽 편으로 갈 것이며, 부처님에게 귀 기울여야 하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그것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가져올 것입니다.
지혜로운 지도자인 부처님은 이 세상과 저세상에 대해서도 능숙하고, 마라의 영역과 마라의 영역 아닌 것에 대해서도 능숙하고, 죽음의 영역과 죽음의 영역 아닌 것에 대해서도 능숙합니다.
이때, 이쪽 편과 저쪽 편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이어서 마라의 영역/죽음의 영역인 중생들의 세상과 마라의 영역 아님/죽음의 영역 아님인 열반을 말하지만, 이 세상과 저세상은 이쪽 편에 속한 윤회하는 삶의 과정에서 지금 삶과 다음 삶의 자리를 말합니다. 이 주제는 '원초적인 바른 견해'인데, ①저세상 있음-②화생하는 중생 있음-③업에는 과와 보가 따름입니다. 이런 바른 견해의 선언이 이 세상과 저세상에 대한 능숙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이쪽 편에 대해서도 능숙하고, 열반에 대한 바른 앎의 선언에 의해 저쪽 편에 대해서도 능숙합니다.
▣ 주제의 확장 ― (41)「믿음을 따르는 자와 법을 따르는 자」
5. cūḷasaccakasuttaṃ (MN 35-삿짜까 작은 경)
• 무아(無我)의 의미
• 제자들에 대해 자주 말하는 이어지는 가르침 ―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무상(無常)-무아(無我)
•세존(世尊) ― 부처님, 제어된 분, 평화로운 분, 건넌 분, 완전히 꺼진 분
•세존이 설하는 법 ― 깨달음을 위한 법, 제어를 위한 법, 그침을 위한 법, 건넘을 위한 법,완전히 꺼짐을 위한 법
오온(五蘊)이 무아(無我)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무아(無我)인 것의 성질을 알려주는 경입니다.
아(我)라면 상(常)해야 하는데[상락아정(常樂我淨)], 현실은 상(常)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我)라고 할 수 없다는 전개입니다. 특히, 상(常)하다면 무상(無常)의 특징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 위에서 설명됩니다. 이때 무상(無常)은 aniccaṃvipariṇāmi aññathābhāvi[무상(無常)하고 변하고 다른 것이 됨]이어서 자기의 존재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다른 것이 되는 현상입니다. → 상(常)하다면 존재 상태를 유지하고, 다른 것이 되지 않아야 함
또한, 나를 구성하는 요소인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 아(我)라면, 아(我)인 것들의 총합으로 구성된 나는, 마치 범(梵-brahma)이 아(我-attan)들에 대해 권한을 가지듯이 또는 왕이 자기 왕국에 속한 것들에 대해 권한을 가지듯이, 구성요소들에 대해 권한을 가져야 하고, 그러면 아(我)의 상(常)한 특성에 따라 ‘존재 상태를 유지하고, 다른 것이 되지 말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을 적용합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구성요소들에 대해 ‘이런 상태로 있어라. 이런 상태가 되지 말아라.’라는 권한을 가져야 하지만, 현실은 권한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은 상(常)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이렇게 무상(無常)이 알려지면,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고, 따라서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은 무상(無常)-무아(無我)입니다!
▣ 주제의 확장 ― 「경이 설명하는 무아(無我)」 ― ①결점으로 이끌리지 않을 것, ②권한이 있을 것, ③생겨나지도 무너지지도 않을 것(不生不滅)
6. mahāsaccakasuttaṃ (MN 36-삿짜까 큰 경)
• 불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4개의 경 ― (MN 85-보디 왕자 경), (MN 26-덫 경), (MN 36-삿짜까 큰 경), (MN 100-상가라와 경)
•몸을 닦지 않음 → 생겨난 즐거운 느낌은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고,
•심(心)을 닦지 않음 → 생겨난 괴로운 느낌은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묾
•몸을 닦음 ― 즐거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개발된 느낌을 감당
•심(心)을 닦음 ― 괴로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고행(苦行)을 감당
1) 닦지 않은 몸과 닦지 않은 심(心)을 가진 자 ― 몸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고, 심(心)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무는 양쪽 측면을 가진 사람
2) 닦은 몸과 닦은 심(心)을 가진 자 ― 몸을 닦았기 때문에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지 않고, 심(心)을 닦았기 때문에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지 않는 양쪽 측면을 가진 사람
•즐거운 느낌[개발된 느낌의 과정]과 괴로운 느낌[고행(苦行)의 과정]이 생겨났지만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은 수행의 과정을 소개함
▣ 주제의 확장 ― (42)「삼매의 상(相)(samādhinimitta)」
7. cūḷataṇhāsaṅkhayasuttaṃ (MN 37-애(愛)의 부서짐의 작은 경)
• 질문 ― 「간략함에 의해 어떻게 비구는 애(愛)의 부서짐에 의해 해탈하고, 궁극의 끝에 닿고, 궁극의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고, 궁극의 범행을 실천하고, 궁극의 완성을 성취하여, 신들과 인간들 가운데 으뜸이 됩니까?」
; 애(愛)의 부서짐에 의한 해탈 ―「‘모든 법은 경향으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배운다. → 모든 법을 실답게 안다. → 모든 법을 완전히 안다. → 경험하는 느낌들에 대해 무상(無常)을 이어 보면서 머물고, 바램을 이어 보면서 머물고, 소멸을 이어 보면서 머물고, 놓음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 세상에서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 동요하지 않는다. → 개별적으로 완전히 열반한다. →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 경향 ‒ 상(常)-락(樂)-아(我)-정(淨)의 전도된 상(想)-심(心)-견해로 기운 삶
8. mahātaṇhāsaṅkhayasuttaṃ (MN 38-애(愛)의 부서짐의 큰 경)
• tadevidaṃ ― 이 경에만 나타나는 표현으로 ‘그것, 오직 이것[ta-(d)-ev-idaṃ]’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tadevidaṃ viññāṇaṃ은 ‘그것, 오직 이 식(識)’이라고 번역되는데, 아뜨만[아(我)]으로의 식(識)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경의 큰 주제는 식(識)이 아뜨만인 ‘그것, 오직 이 식(識)’이 아니라 ‘연기(緣起)된 식(識)’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이 경을 근거로 식(識)이 윤회하지 않는다는 설명은 오해입니다. 이 경은 식(識)이 윤회하는데, 그 식(識)이 아뜨만이 아니라 연기(緣起)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
• 세 가지의 집합(①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합-②어머니의 월경-③간답바)으로부터 태(胎)에 듦
사띠 비구에게 옮겨가고 윤회하는 식(識)이 아(我)라는 악하고 치우친 견해가 생기자 부처님은 옮겨가고 윤회하는 식(識)이 아(我)가 아니라 연기(緣起)된 것이라고 알려준 뒤 1)조건을 연(緣)하여 생기고 누적된 것인 연기된 식(識)을 설명하고, 2)친밀(sārāga)과 거슬림(byābajjha)의 측면에서의 고집(苦集)과 고멸(苦滅)을 다시 설합니다. ― 내입처로 외입처를 인식하면서 사랑스러운 것은 친밀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거슬리면 고집의 삶이고, 사랑스러운 것은 친밀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거슬리지 않으면 고멸의 삶입니다.
※ 세상에서는 바로 이 경을 근거로 부처님은 식이 윤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주장하는데, 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입니다. 경은 분명히 윤회하는 식이 아가 아니라 연기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에 대한 바른 이해는 중요합니다. 자칫, 불교가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모두 극복하였지만, 윤회의 당사자를 직접 설명하지는 않는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불교 학자가 윤회의 당사자를 설명하지 못하거나, 경에 근거하지 않은 제각각의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은 분명히 단견(斷見)도 상견(常見)도 아닌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답은 배제하고서 답을 찾으려 하는 엉뚱함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말해야 할 것인데, 공부의 중심을 경에 두지 않는 풍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9. mahāassapurasuttaṃ (MN 39-앗사뿌라 큰 경)
• 우리에게 이 출가는 불임(不姙)이 아니어서 결실이 있고 수확이 있을 것이다(saphalāsaudraya).
• 이것으로 만족하지 말 것 ― 「사문 됨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더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문 됨의 목적이 낮아지게 하지 말라.」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보(報)가 괴로움인 악한 불선법(不善法)들
사문의 공부는 사문-바라문을 만드는 법 즉 히리(자책의 두려움)과 옷땁빠(타책의 두려움)의 실천으로 시작되는데, ①필수품을 공급해준 사람들에게 결실과 이익이 생기고, ②자신에게 결실과 수확이 있게 됩니다. 또한,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아야 하는데, 더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사문 됨의 목적이 낮아지게 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경은 더 해야 하는 16가지 과정을 통해 사문 됨이 완성되면 ①사문, ②바라문, ③목욕한 자, ④높은 앎을 이룩한 자, ⑤깨끗한 자, ⑥성스러운 자, ⑦아라한이라고 불린다고 알려주는데,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보(報)가 괴로움인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의 해소의 측면의 구분입니다.
10. cūḷāssapurasuttaṃ (MN 40-앗사뿌라 작은 경)
• udraya는 수확, phala는 수확된 결실, vipāka는 결실의 경험 → saphalā saudraya는 ‘결실이 있고 수확이 있음’ → 수확하여 결실을 거둠
(MN 39-앗사뿌리 큰 경)에서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사문을 만들고 바라문을 만드는 법들을 받아들여 실천하리라.’라고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MN 40-앗사뿌라 작은 경)에서는 ‘사문에게 적합한 실천을 하리라.’라고 주제를 전환합니다. 간탐-진에-화-원한-위선-악의-질투-인색-교활-사기-나쁜 원함-삿된 견해라는 사문의 때-오점-쓰레기들을 버리지 못하면 사문에게 적합한 실천을 하지 않는 자이고(*), 적합한 실천을 하는 자는 이것들을 버리고 삼매에 든 뒤 자비희사를 닦아 내적인 가라앉음을 얻습니다. 이어서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면, 사문입니다.
(*) 큰 가사를 입었다는 것-나체수행자라는 것-더러운 진흙에서 산다는 것-물에 들어간다는 것-나무 밑에 산다는 것-열린 곳에 산다는 것-똑바로 서 있는 것-일정한 간격을 두고 음식을 먹는 것-주문에 의한 명상을 한다는 것-엉킨 머리를 한다는 것만으로 사문 됨을 말하지 않음 → 그들 가운데 간탐-거슬린 심(心)-화-원한-위선-악의-질투-인색-교활-사기-나쁜 원함-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을 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