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 니까야 관통 후 품별 정리 7-2)비구 품(MN 62 & 65-70)(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905)
▣ 맛지마 니까야 관통 후 품별 정리 7-2)비구 품(MN 62 & 65-70)(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905)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pMsUrICQp8
품별 정리 7-1)에서는 장자 품에 속한 10개 경의 대의를 정리하였는데, 품별 정리 7-2)에서는 요약과 해설을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요약만 소개하고 전체 내용은 pdf 파일로 첨부하였습니다.
(동영상의 실제 진도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1] ambalaṭṭhikarāhulovādasuttaṃ (MN 61-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경)
1. 부처님이 라훌라 존자에게 법을 설함 ― 고의적 거짓말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에게 사문의 성품은 작고, 버려지고, 뒤집히고, 비어있음. → 고의적인 거짓말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는 자에게 행해지지 않을 악(惡)은 없음 → ‘농담으로라도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해야 함.
2. 거울이 비춰보기 위한 것이듯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몸과 말과 의(意)의 업(業)을 행해야 함 → 행하려 할 때와 행할 때와 행하고 난 뒤에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대응해야 함
3.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사문-바라문들도 이렇게 비춰보고 비춰봄으로써 몸과 말과 의(意)의 업을 청정히 함 → 「‘나는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몸의 업을 청정케 할 것이고,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말의 업을 청정케 할 것이고,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의(意)의 업을 청정케 할 것이다.’라고 공부해야 함」
[2] mahārāhulovādasuttaṃ (MN 62-라훌라의 가르침의 큰 경)
1. 부처님이 라훌라 존자에게 ‘모든 색(色)-수(受)-상(想)-행(行)들-식(識)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라고 법을 설하자 라훌라 존자는 탁발을 멈춘 뒤 다리를 교차하고, 몸을 곧게 뻗치고, 콧구멍 주위에 사띠를 준비한 채 어떤 나무 밑에 앉음.
2. 사리뿟따 존자가 라훌라 존자를 보고서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입출식념(入出息念)]를 닦으라고 알려줌.
3. 홀로 머묾에서 나온 라훌라 존자가 부처님에게 질문함 ―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행할 때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습니까?”
4. 부처님의 답변
1)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의 요소를 설명 → 바른 지혜로써 무아(無我)의 관점으로 보아야 함 → 염오하여 심(心)이 바래게 할 것
2)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과 같아지는 수행을 할 것 → 생겨난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촉(觸)들은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을 것
3) 자(慈)-비(悲)-희(喜)-사(捨)-부정(不淨)-무상(無常)의 상(想)을 닦을 것
4)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입출식념(入出息念)]를 닦을 것 →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음 →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행할 때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는가?
; 땅과 같아지는 수행부터 무상의 상을 닦아 누진(漏盡)[전도된 상(想) → 전도되지 않은 상(想)]하여 깨닫는 수행 과정의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테크닉이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를 닦는 것이고,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를 닦고 많이 행함이라는 구체적 수행에 의해 땅과 같아지는 수행부터 무상의 상을 닦는 수행의 목적을 전부 이루게 되므로 이것이 큰 결실이고 큰 이익이라는 부처님의 대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
[3] cūḷamālukyasuttaṃ (MN 63-말루꺄 작은 경)
1. 말루꺄뿟따 존자는 부처님이 십사무기(十事無記)의 견해들에 대해 답변하지 않고 놓아두고 거부하는 것이 못마땅하여 다시 여쭈어본 뒤에도 설명하지 않으면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함
2. 부처님에게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알고 보지 못한다고 말해달라고 요청함
3. 부처님은 두 사람의 관계가 십사무기에 대한 설명을 전제로 하지 않음을 지적함
4. 독화살의 비유를 설함
5. 십사무기의 견해가 있을 때 범행을 실천하기는 불가능함 → 이런 견해가 있을 때도 생(生)-노(老)-사(死)-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있음 → 부처님은 이것들을 지금여기에서 파괴할 것을 가르침
6. 「그러므로 말루꺄뿟따여, 내가 설명하지 않은 것은 설명하지 않은 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설명한 것은 설명한 대로 받아들여라.」
[4] mahāmālukyasuttaṃ (MN 64-말루꺄 큰 경)
1. 부처님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오하분결(五下分結)]를 명심하고 있는지 묻자 말루꺄뿟따 존자가 유신견-의심-계금취-소유의 관심-진에의 하분결(下分結)을 명심하고 있다고 대답함
2. 부처님의 지적 ― 외도 유행승들이 어린아이의 비유로써 비난할 것
느리고, 등을 대고 누워있는 작은 어린아이에게는 ‘유신(有身)-법(法)-계(戒)-소유의 대상-중생이다.’라는 것도 없는데, 어디에서 유신견-법들에 대한 의심-계들에 대한 계금취-소유의 대상에 대한 소유의 관심-중생에 대한 진에가 생기겠는가? 다만, 유신견-의심-계금취-욕탐(慾貪)-진에의 잠재성향이 잠재한다.
3. 아난다 존자의 요청으로 부처님이 오하분결(五下分結)을 설명
1) 배우지 못한 범부 ― 유신견-의심-계금취-소유의 관심-진에가 스며들고 유신견-의심-계금취-소유의 관심-진에에 시달린 심(心)으로 머문다. 생겨난 유신견-의심-계금취-소유의 관심-진에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에게 강해지고 제거되지 않은 그 유신견-의심-계금취-소유의 관심-진에가 하분결이다.
2)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 ― 유신견-의심-계금취-소유의 관심-진에가 스며들지 않고 유신견-의심-계금취-소유의 관심-진에에 시달리지 않는 심으로 머문다. 생겨난 유신견-의심-계금취-소유의 관심-진에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에게 잠재성향과 함께 그 유신견-의심-계금취-소유의 관심-진에는 버려진다.
→ 오하분결을 버리기 위한 길과 실천에 오지 않고 오하분결을 알거나 보거나 버릴 것이라는 경우는 없고, 오하분결을 버리기 위한 길과 실천에 온 뒤에 오하분결을 알거나 보거나 버릴 것이라는 경우는 있음
3) 유신의 멸을 위한 법들이 선언될 때
① 심이 튀어 오르지 않고, 밝아지지 않고, 안정되지 않고, 해탈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안전하게 저편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고,
② 심이 튀어 오르고, 밝아지고, 안정되고, 해탈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안전하게 저편으로 가는 것이 가능함
4) 오하분결을 버리기 위한 길과 실천 ― 재생의 조건을 떨치고, 불선법들을 버리고, 몸의 부정(不淨)함을 진정했기 때문에
• 초선~제4선을 성취하여 머묾 → 거기서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에 속한 법들을 무상(無常)-고(苦)- … -무아(無我)라고 관찰 → ①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함, ② 번뇌들의 부서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법을 좋아하고 그 법을 소망하기 때문에 ‘오하분결(五下分結)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화생(化生)하고,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가 됨
•공무변처-식무변처-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머묾 → 거기서 수-상-행-식에 속한 법들을 무상-고- … -무아라고 관찰 → 이후 과정 동일
4. 아난다 존자와 부처님의 추가 문답 ― [문] 이런 길과 실천 위에서 왜 누구는 심해탈(心解脫)하고 누구는 혜해탈(慧解脫)합니까? [답] 기능의 차이(indriyavemattata) 때문
[5] bhaddālisuttaṃ (MN 65-받달리 경)
1. 부처님이 하루 한 번 식사할 것을 말하자, 밧달리 존자는 거부하고 부처님이 비구 상가가 받아 지니도록 제정한 학습계율에 대한 공부를 따를 수 없다고 선언함
2. 참회의 대화 ― 세존이 여정을 떠나기 전에 밧달리 존자가 부처님에게 와서 참회하고, 부처님은 두 번의 질타 후에 참회를 받아들임
3. 부처님이 법을 설함
1)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부에 충실하지 못한 비구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하지 못함
; 원인 =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부에 충실하지 못함
2)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부에 충실한 비구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함
; 원인 =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부에 충실함
; 차별적 지(知)와 견(見)의 실현 과정 = 사선(四禪)-삼명(三明)
4. 받달리 존자와 부처님의 문답
1) 첫 번째 문답 ― 어떤 비구에게는 거듭 강제하여 상가의 조치를 취하고, 어떤 비구에게는 그렇게 거듭 강제하여 상가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 → 오롯한 믿음과 오롯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비구일 것
2) 두 번째 문답 ― 예전에는 더 적은 학습계율이 있었지만, 더 많은 비구가 무위(無爲)의 앎을 실현했는데, 지금은 더 많은 학습계율이 있지만, 더 적은 비구들이 무위의 앎을 실현하는 원인-조건은?
5. 좋은 혈통을 가진 젊은 말의 비유를 통해 무학(無學)의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정지(正知)-정해탈(正解脫)의 열 가지 법을 갖춘 비구가 공양받을만하고, 환영받을만하고, 보시받을만하고, 합장 받을만하며, 이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이라고 설명함
[6] laṭukikopamasuttaṃ (MN 66-메추라기 비유 경)
1. 우다이 존자에게 떠오른 심(心)의 온전한 생각 —“세존은 우리를 위해 많은 괴로운 것들과 불선법(不善法)을 물리쳐 주셨고, 세존은 우리를 위해 많은 즐거운 것들과 선법(善法)을 가져다 주셨다.”
2. 구체적 사안 ― 비구들의 식사 기준 변화(1일 3식 → 2식 → 1식)
; (MN 65-받달리 경) 참조
3. 부처님의 설법 ― ‘그대들은 이것을 버려야 한다.’라는 지시에 대한 두 가지 반응
4. 어리석은 사람과 좋은 가문의 아들에 대한 두 가지씩의 비유 ― 속박의 크기는 절댓값이 아니라 상댓값
4. 세상에 존재하는 네 부류의 사람 ― 재생의 조건을 버리고 놓기 위해 실천하는 세 부류의 속박된 자와 재생의 조건을 벗어나고 파괴하고 해탈한 한 부류의 속박되지 않은 자
5. 소유의 즐거움[욕락(慾樂)]과 출리(出離)의 즐거움
1)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을 연(緣)하여 생기는 즐거움과 만족 = 소유의 즐거움[욕락(慾樂)], 불결한 즐거움, 평범한 즐거움, 성스럽지 못한 즐거움 →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닦지 않아야 하고, 많이 행하지 않아야 하고, 두려워해야 함
2) 초선(初禪)-제이선(第二禪)-제삼선(第三禪)-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묾 = 출리(出離)의 즐거움, 여읨의 즐거움, 가라앉음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 → 그 즐거움은 실천해야 하고, 닦아야 하고, 많이 행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님
3) 초선(初禪)-제이선(第二禪)-제삼선(第三禪) = 흔들림 위에 있는 것, 제사선(第四禪) = 흔들리지 않음 위에 있는 것
4) 초선(初禪)~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묾 ― 충분하지 않고 버려야 하고 넘어서야 함
6. 이렇게 비상비비상처를 버릴 것도 부처님은 말함 → 작든 크든 그것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 족쇄는 없음
[7] cātumasuttaṃ (MN 67-짜뚜마 경)
1. 세존을 뵙기 위해 짜뚜마에 도착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오백 명 정도의 비구가 거기에 사는 비구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잠자리를 준비하고, 발우와 가사를 정리하면서 큰 소리로 떠들자 부처님은 그들을 밀쳐냄.
2. 짜뚜마의 사꺄들과 사함빠띠 범천이 그들을 위해 종자의 비유와 송아지의 비유로써 세존의 마음을 되돌림 → 비유 ― (SN 22.80-탁발 경)에도 나타남
3. 마하목갈라나가 세존이 마음을 되돌린 것을 알고 비구들을 데리고 부처님에게 옴
4. 부처님과 사리뿟따의 문답 ― “사리뿟따여, 내가 비구 상가를 밀쳐냈을 때 그대는 ‘무엇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대덕이시여, 저에게 ‘세존께서 비구 상가를 밀쳐냈다. 이제 세존은 관심을 두지 않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에 몰두하여 머물 것이다. 우리도 이제 관심을 두지 않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으로 머물러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리뿟따여, 그대는 오라! 사리뿟따여, 그대는 와서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으로 머물라.”
5. 부처님과 마하목갈라나의 문답 ― “목갈라나여, 내가 비구 상가를 밀쳐냈을 때 그대는 ‘무엇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대덕이시여, 저에게 ‘세존께서 비구 상가를 밀쳐냈다. 이제 세존은 관심을 두지 않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에 몰두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나와 사리뿟따 존자가 비구 상가를 보호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목갈라나여! 참으로 목갈라나여, 나 또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비구 상가를 보호해야 한다.”
6. 부처님의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의심해야 하는 네 가지 두려움을 설법함 → (AN 4.122-파도 경)의 반복
[8] naḷakapānasuttaṃ (MN 68-날라까빠나 경)
부처님이 꼬살라에서 날라까빠나의 빨라사 숲에 머물 때, 아누룻다 존자, 받디야 존자, 끼밀라 존자, 바구 존자, 꼰단냐 존자, 레와따 존자, 아난다 존자 등 잘 알려진 많은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세존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함
1.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이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범행을 기뻐하고 있는지 묻고, 비구들의 대답이 없자 직접 이들을 불러서 물어봄
2. 범행을 기뻐하고 있다는 대답에 대해 부처님은 적절하다고 칭찬한 뒤 출가한 목적을 지적함 ― 왕의 명령-도둑의 강제-빚-두려움-생계 때문에 출가한 것이 아니라 전체 괴로움 무더기의 끝맺음을 위한 출가임
3. 「evaṃpabbajitena ca pana, anuruddhā, kulaputtena kimassa karaṇīyaṃ 그렇다면 아누룻다여, 이렇게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소유의 삶을 떨치고 불선법들을 떨친 기쁨과 행복 또는 그보다 더 평화로운 다른 것을 성취해야 함
• 성취하지 못하면 간탐-진에-해태혼침-들뜸후회-의심과 불쾌와 권태가 심(心)을 소진하여 머묾
• 성취하면 간탐-진에-해태혼침-들뜸후회-의심과 불쾌와 권태가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음
4. 여래가 헤아리면서 어떤 것을 수용하고-참고-피하고-제거하는 이유를 번뇌의 유무의 관점에서 설명함
5. 부처님이 죽어서 가버린 제자의 태어남에 대해서 ‘누구는 이런 곳에 태어났고, 누구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말하는 이유
; 믿음이 있고, 큰 외경심이 있고, 큰 환희가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그 말을 들은 뒤에 그것을 위하여 심(心)을 집중할 때, 그것은 그들을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으로 이끌기 때문
⇒ 비구-비구니에게는 아라한-불환자-일래자-예류자를, 남신자-여신자에게는 불환자-일래자-예류자를 설명함
[9] goliyānisuttaṃ (MN 69-골리야니 경)
화합하지 못하는 골리야니라는 이름의 숲에 사는 비구가 무언가 할 일이 있어서 상가 가운데에 들어오고, 사리뿟따 존자가 골리야니 비구에 대하여 두 가지 측면을 비구들에게 말함 ― ①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의 의무, ②숲에 사는 비구의 의무
1. 숲에 사는 비구가 상가에 와서 상가에 머물 때의 의무 ― 1)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존경하고 공손/2) ‘이렇게 장로 비구의 자리를 차지하여 앉지 않을 것이고, 신진 비구를 자리로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리에 능숙/3) 바른 행실의 법을 알아야/4) 너무 일찍 마을에 들어가지 말고 너무 늦게 돌아오지 않아야/5) 식전이나 식후에 가정집을 방문하지 않아야/6) 거만하지 않고 변덕스럽지 않아야/7) 수다스럽지 않고 허튼 말을 하지 않아야/8) 유연하고 좋은 친구가 있어야
2. 숲에 사는 비구의 의무 ― 9) 기능에서 문을 보호해야/10) 음식의 적당량을 알아야/11) 깨어있음을 닦아야/12) 열심히 노력해야/13) 사띠를 확립해야/14) 삼매를 닦아야/15) 지혜로워야/16) 법(法)에 대한 것들과 율(律)에 대한 것들을 공부해야/17) 색(色)을 넘어선 무색(無色)의 평화로운 해탈 위에서 공부해야/18) 인간을 넘어선 법들을 공부해야
3. 마하목갈라나 존자의 질문 ― “사리뿟따 존자여, 숲에 사는 비구만이 이 법들을 받아들여 실천해야 합니까 아니면 마을 경계에 사는 비구도 그렇습니까?”
(사리뿟따 존자의 답변) ― “도반 목갈라나여, 숲에 사는 비구도 이 법들을 받아들여 실천해야 하는데 마을 경계에 사는 비구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10] kīṭāgirisuttaṃ (MN 70-끼따기리 경)
1. 부처님은 저녁을 먹지 않는 삶의 잇점을 말하며 비구들도 저녁을 먹지 말 것을 지시하지만, 끼따기리에 사는 앗사지와 뿌납바수까라는 비구들은 저녁과 아침과 낮에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먹어도 같은 잇점을 누린다고 말하며 부처님의 지시를 거부함
2. 부처님이 앗사지와 뿌납바수까 비구를 불러서 설득함 ― ①저녁과 아침과 낮에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먹는 경우와 ②밤의 식사로부터 다른 때에 먹는 경우의 ‘병이 없고, 아프지 않고, 몸이 가벼워 활력적이고, 힘 있고, 편히 머묾’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함
• ①의 경우 → 불선법(不善法)은 늘어나고 선법(善法)은 줄어듦
• ②의 경우 → 불선법(不善法)은 줄어들고 선법(善法)은 늘어남
1) 부처님은 ①어떤 느낌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불선법은 늘어나고 선법은 줄어들고, ②어떤 느낌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불선법은 줄어들고 선법은 늘어난다고 법을 설함
2) 부처님은 지혜로써 알고 보고 경험하고 실현하고 성취했기 때문에 어떤 느낌은 버려야 하고 어떤 느낌은 성취하여 머물러야 한다고 말함
3) 부처님은 모든 비구에게 ‘불방일로써 해야 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하지도 않고, 모든 비구에게 ‘불방일로써 해야 하는 것이 없다.’라고 말하지도 않음
3. 세상에 존재하는 일곱 부류의 사람들의 정의 ― 양면해탈자, 혜해탈자, 몸으로 실현한 자, 견해를 성취한 자, 믿음으로 해탈한 자,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
4. 무위(無爲)의 앎은 즉시에 성취되지 않음 → 점진적인 공부, 점진적인 성과, 점진적인 실천으로부터 무위의 앎은 성취됨
5. 앗사지와 뿌납바수까 비구를 질책한 뒤, 네 구절로 된 설명[사구게(四句偈)]을 알려주려 하지만 두 비구의 반발 때문에 알려주지 못함
6. 부처님은 믿음을 가진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들어갈 때 뒤따라야 하는 법을 설명함
1) ‘세존은 스승이시고, 나는 제자다. 세존은 알고, 나는 모른다.’라고. → 스승의 가르침은 원기를 북돋워 주고 자양이 될 것
2) ‘참으로 피부와 힘줄과 뼈만 남고, 몸에서 살과 피가 말라버려라! 남자의 힘과 남자의 정진과 남자의 노력으로 얻어야 하는 것을 얻지 않는 한 정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 지금여기에서 무위의 앎을 성취하거나, 집착이 있을 때 불환자의 상태를 성취하는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가 예상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