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 니까야 관통 후 품별 정리 10-2)바라문 품(MN 94-100)(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926)
▣ 맛지마 니까야 관통 후 품별 정리 10-2)바라문 품(MN 94-100)(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926)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4b1aulSR1wo
품별 정리 10-1)에서는 바라문 품에 속한 10개 경의 대의를 정리하였는데, 품별 정리 10-2)에서는 요약과 해설을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요약만 소개하고 전체 내용은 pdf 파일로 첨부하였습니다.
(동영상의 실제 진도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1] brahmāyusuttaṃ (MN 91-브라흐마유 경)
• 위데하에서 비구 상가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살고 있던 부처님
• 미틸라의 브라흐마유 바라문과 그의 제자인 젊은 바라문 웃따라
1. 부처님에 대해 퍼져 있는 명성을 들은 브라흐마유 바라문이 제자인 젊은 바라문 웃따라에게 부처님이 명성과 같은지 아닌지 확인하라 명함
2. 어떻게 부처님을 확인할 수 있는지? ― 서른두 가지 대인상(大人相)[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갖추었는지 여부
3. 젊은 바라문 웃따라는 부처님을 뵌 뒤 부처님의 몸에서 삼십이상을 찾아봄. 이때, 표피로 감추어진 것(성기)과 혀가 넓은 것의 두 가지 대인상은 확인하지 못하지만, 부처님이 신통을 행하여 두 가지 대인상을 마저 확인시켜줌
4. 젊은 바라문 웃따라는 일곱 달 동안 부처님을 그림자처럼 뒤따르며 처신의 방법을 살핀 뒤 미틸라로 돌아가 브라흐마유 바라문에게 감
5. 젊은 바라문 웃따라의 보고 ― ①부처님은 삼십이상을 갖췄음, ②처신의 방법
6. 부처님이 미틸라에 도착하자 젊은 바라문을 먼저 보내 방문 허락을 구한 뒤 브라흐마유 바라문도 부처님을 뵈러 옴
7. 부처님과 브라흐마유 바라문의 만남
1) 브라흐마유 바라문은 부처님의 몸에서 삼십이상을 찾아봄. 표피로 감추어진 것(성기)과 혀가 넓은 것의 두 가지 대인상의 확인을 요청하고, 부처님은 신통을 행하여 두 가지 대인상을 마저 확인시켜줌
2) 부처님은자신이 부처임을 선언 ― 부처인 이유 ― 「tasmābuddhosmi 그래서 나는 부처입니다.」
“abhiññeyyaṃ abhiññātaṃ, bhāvetabbañca bhāvitaṃ.
pahātabbaṃ pahīnaṃ me, tasmā buddhosmi brāhmaṇa.
실답게 알아야 할 것을 실답게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닦았으며
버려야 할 것은 나에게서 버려졌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부처입니다.
3) 지금여기를 위한 것에는 이미 능숙한 브라흐마유 바라문은 다음 생을 위한 것을 질문함
― 「“어떻게 해서 바라문이 되고, 어떻게 해서 베다에 통달한 자가 됩니까? 존자시여, 어떻게 해서 삼명을 갖추고, 축복받은 자는 무엇이라고 불립니까? 존자시여, 어떻게 해서 아라한이 되고, 어떻게 해서 완성한 자가 됩니까? 존자시여, 어떻게 해서 성자가 되고, 부처는 누구라고 불립니까?」
4) 부처님의 대답 ― 「전생의 삶을 알고, 천상과 악도를 보는 자. 태어남을 부수었고, 실다운 지혜로써 삶을 완성한 성자. 청정한 심(心)을 알고 탐(貪)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 태어남과 죽음을 버렸고, 범행을 완성한 자, 모든 법을 통달한 자, 부처는 그런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4) 브라흐마유 바라문은 부처님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부처님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한 뒤 순서대로의 가르침을 설함[차제설법(次第說法)]
5) 브라흐마유 바라문은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되고, 다음날의 식사를 청함. 다음날 부처님은 비구 상가와 함께 칠 일간 공양을 받음
8. 브라흐마유 바라문은 머지않아 죽어서 정거천에 화생(化生)함
[2] selasuttaṃ (MN 92-셀라 경)=(KN 5.33-셀라 경)
• 1250명의 비구 상가와 함께한 부처님
1. 바라문에 대해 믿음을 가진 아빠나의 엉킨 머리 수행자 께니야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인사를 나눈 뒤 내일의 공양을 청함. 허락을 받은 께니야는 자신의 은둔처로 가서는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과 친척들과 일가들과 함께 공양을 준비함
2. 엉킨 머리 수행자 께니야가 믿음을 가지고 있던 셀라 바라문이 삼백 명의 젊은 바라문과 함께 께니야에게 왔다가 부처님에 대한 말씀을 듣고 부처님을 찾아감
3. 부처님을 찾아온 셀라 바라문은 브라흐마유 경과 같은 방법으로 삼십이상을 확인하지만, 그가 부처인지 확신하지 못함 → 게송으로 칭송 → 칭송을 받은 부처님이 브라흐마유 경과 같은 게송으로 자신을 드러냄 → 삼백 명의 젊은 바라문과 함께 셀라 바라문은 세존의 곁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음
4. 엉킨 머리 수행자 께니야는 부처님과 비구 상가를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부처님은 게송으로 그를 기쁘게 함 ― 「공덕을 바라면서 제사 지내는 것 가운데 상가가 맨 앞에 있다.」
5. 셀라 존자 등은 7일 만에 아라한을 성취하고, 8일째에 부처님에게 와서 부처님을 찬탄함
[3] assalāyanasuttaṃ (MN 93-앗살라야나 경)
• 네 계급의 청정(cātuvaṇṇiṃsuddhiṃ)을 선언하는 부처님과 이 주제를 토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젊은 바라문 앗살라야나가 추천됨
•젊은 바라문 앗살라야나는 법을 말하는 자인 부처님과의 토론이 어렵다고 사양하지만 바라문들의 반복된 요청에 부처님과의 토론에 나섬
1. 네 계급의 청정에 대한 바라문들의 대응 논리 ― 「바라문 계급만이 으뜸이고 다른 계급은 저열하다. 바라문 계급만이 선이고 다른 계급은 악이다. 바라문만이 깨끗하고 바라문 아닌 자들은 깨끗하지 않다. 바라문만이 범천의 정통한 아들이고, 입에서 태어났고, 범천에 의해 생겨났고, 범천에 의해 창조되었고, 범천의 후계자이다.」
2. 바라문들의 대응 논리를 부처님이 논파함
1) 바라문들의 바라문 아내들은 월경도 하고, 임신도 하고, 출산도 하고, 젖도 빨게 한다. 그런데 자궁에서 생겨난 그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함.
2) 바라문들에게 어떤 힘이 있고, 이렇게 말할 때 편안한 자는 누구입니까?
• 요나와 깜보자 그리고 다른 먼 지방에는 주인과 하인의 두 계급만이 있고, 주인이었다가 하인이 되고, 하인이었다가 주인이 됨
•십악업(十惡業)을 행하는 자는 누구라도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날 것
•십선업(十善業)을 행하는 자는 누구라도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날 것
• 네 계급의 누구라도 이 자리에서 원망 없고 거슬림 없는 자심(慈心)을 닦는 것이 가능함
•네 계급의 누구라도 때밀이와 목욕 가루를 가지고 강에 가서 먼지와 때를 씻는 것이 가능함
•어떤 불도 화염이 있고, 색깔이 있고, 밝게 빛남. 어떤 불에 의해서도 불의 역할을 할 수 있음
3) 끄샤뜨리야 청년-처녀와 바라문 처녀-청년이 함께 살아 낳은 자식은 어머니와도 같고 아버지와도 같아서 끄샤뜨리야라고 불릴 수도 있고 바라문이라고 불릴 수도 있음. 그러나 암말과 수당나귀의 교배로 태어나는 망아지는 노새일 뿐 말도 당나귀도 아님 → (앗살라야나) 경우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음
4) 어머니가 같은 형제인 두 명의 젊은 바라문이 한 명은 베다를 공부하고 실천하고, 한 명은 베다를 공부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을 때 베다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자에게 음식을 먼저 공양할 것 → (앗살라야나) 베다를 공부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진 것이 어떻게 큰 결실이 있겠습니까?
5) 어머니가 같은 형제인 두 명의 젊은 바라문이 한 명은 베다를 공부하고 실천하지만 계를 경시하고 나쁜 행위를 하고, 한 명은 베다를 공부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지만 계를 중시하고 좋은 행위를 할 때 베다를 공부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지만 계를 중시하고 좋은 행위를 하는 자에게 음식을 먼저 공양할 것 → (앗살라야나) 계를 경시하고 나쁜 행위를 하는 자에게 주어진 것이 어떻게 큰 결실이 있겠습니까?
⇒ “앗살라야나여, 처음에 그대는 태어남으로 갔습니다. 태어남으로 간 뒤에 만뜨라로 갔고(베다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자), 만뜨리로 간 뒤에 종교적 삶으로 갔고(계를 중시하고 좋은 행위를 하는 자), 종교적 삶으로 간 뒤에 내가 선언한 네 계급의 청정으로 돌아왔습니다.”
3. 일곱 명의 바라문 선인들과 아시따 데왈라 선인의 일화 ― 아시따 데왈라 선인은 바라문 계급만이 으뜸이라는 견해를 가진 일곱 명의 바라문 선인들을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함으로써 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자신의 태어남을 설명할 수 없음을 일깨움
4. 일곱 명의 바라문 선인들과 아시따 데왈라 선인의 일화에서도 그랬으니 젊은 바라문 앗살라야나가 자신의 태어남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함
5. 젊은 바라문 앗살라야나가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됨
[4] ghoṭamukhasuttaṃ (MN 94-고따무카 경)
• 부처님 사후에 우데나 존자와 고따무카 바라문 간의 일화
• '법다운 유행승은 없다'는 생각-견해의 전환(사견 → 정견) ‒'세상에는 이 세상과 저세상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하는, 바른길에 들어서서 바르게 실천하는 사문-바라문들이 없다 → 있다.’
1. 고따무카 바라문의 주제 발의 ― 법다운 유행승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우데나 존자 또는 그런 법을 가진 자를 보지 못해서일 것임
2. 우데나 존자의 설법 ‒세상에는 법다운 유행승이 자신뿐만 아니라 많이 있음
1) 세상에 있는 네 부류의 사람과 두 가지 무리
•네 가지 부류
①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
②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
③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
④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 → 지금여기에서 원하지 않는 자, 꺼진 자, 청량한 자,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묾
• 두 가지 무리 ― ①친밀에 물든 무리, ②친밀에 물들지 않은 무리
• 친밀에 물들지 않은 무리 가운데에서 네 번째 사람을 많이 봄
; 친밀에 물들지 않은 무리 가운데는 ④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무는 부류에 속한 사람이 우데나 존자 자신뿐만 아니라 많이 있다는 설명
3. 고따무카 바라문이 네 가지 사람에 대해 상세히 분석함
4. 고따무카 바라문은 우데나 존자에게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되기를 청하지만, 우데나 존자는 자기가 아니라 자기가 의지처로 삼은 그분 세존을 의지처로 삼으라고 일러줌. 고따무카 바라문은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고 묻고, 우데나 존자는 완전히 열반하셨다고 알려주자, 고따무카 바라문이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에 귀의함
5. 고따무카 바라문이 빠딸리뿟따의 상가를 위한 강당을 지음 → 지금 그것은 ‘고따무키’라고 불림
[5] caṅkīsuttaṃ (MN 95-짱끼 경)
• 주제 ― ①부처님에 대한 찬탄, ②진리
; 부처님이 오빠사다라는 꼬살라들의 바라문 마을에 도착했을 때, ①짱끼 바라문이 부처님을 뵈러 오는 과정과 ②16세의 젊은 바라문 까빠띠까와의 문답으로 진리에 대한 주제를 설명하는 과정으로 구성됨.
1. 짱끼 바라문이 부처님을 만나러 가려 하자 오백 명의 바라문이 만류하고, 짱끼 바라문이 부처님에 대한 찬탄을 통해 설득함
2. 짱끼 바라문이 많은 무리와 함께 부처님을 방문하고, 이어서 16세의 젊은 바라문 까빠띠까와 부처님 간에 문답이 진행됨
1) 바라문의 선조들의 신성한 말씀이 있는데, 바라문들은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완전한 결론을 지음
2) 부처님의 반론 ― 바라문의 선조들의 신성한 말씀을 알고 보면서(知-見) 이렇게 주장하는 바라문 없음 → 머리를 꼬아 줄을 지어 붙잡고 있는 장님들의 비유 → 바라문들의 믿음은 근거가 없음
3) 젊은 바라문 까빠띠까 ― 바라문들은 믿음만이 아니라 전승도 섬김
4) 부처님 ― 지금여기에 두 가지 보(報)가 있는 다섯 가지 법들(믿음, 성향, 전승,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 견해와 통찰의 지속) → (진리를 알지는 못하지만) 진리를 보호하는 현명한 사람이 (진리는 따로 있기 때문에)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완전한 결론을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
5) 이어지는 문답 ― 「진리의 보호 → 진리에 대한 앎 → 진리의 성취」 & 진리[참]의 성취를 위해 크게 유용한 법
3. 젊은 바라문 까빠띠까는 감탄하고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됨
; 우리는 진리의 보호-진리에 대한 앎-진리의 성취-진리의 성취를 위해 크게 유용한 법을 고따마 존자께 물었고, 고따마 존자는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고 받아들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즐겁습니다. 우리가 고따마 존자께 물은 것을 물은 때에 고따마 존자는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고 받아들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즐겁습니다.
[6] esukārīsuttaṃ (MN 96-에수까리 경)
• 바라문들이 선언하는 네 가지 섬김과 네 가지 재산 ― 네 계급의 청정을 선언하는 (MN 93-앗살라야나 경)과 유사한 토론이 섬김과 재산의 관점에서 진행됨
• 바라문들이 선언하는 재산 = 세상의 법(loka dhamma) ↔ 부처님이 선언하는 재산 = 성스러운 세상을 넘어선 법(ariyaṃlokuttaraṃ dhammaṃ)
1. 바라문들이 선언하는 네 가지 섬김 ― 바라문을 위한 섬김, 끄샤뜨리야를 위한 섬김, 와이샤를 위한 섬김, 수드라를 위한 섬김
2. 섬김에 대한 부처님의 입장 ― 바라문/끄샤뜨리야/와이샤/수드라가 동의하지 않은 선언임 ― 모두를 섬겨야 한다거나 모두를 섬기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음 ― 획일적이지 않음 ⇒ 분별설자(分別說者)의 관점
⇒ 섬기는 사람에게 섬김을 원인으로 더 좋은 것이 아니라 더 나쁜 것이 생긴다면 그것을 섬겨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섬기는 사람에게 섬김을 원인으로 더 나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이 생긴다면 그것을 섬겨야 함
3. 바라문들이 선언하는 네 가지 재산 ― 바라문의 재산/끄샤뜨리야의 재산/와이샤의 재산/수드라의 재산
⇒ 각자 자기의 재산을 경멸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마치 지키는 자가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으로 여김
4. 재산에 대한 부처님의 입장 ― 바라문/끄샤뜨리야/와이샤/수드라가 동의하지 않은 재산임 → 부처님이 선언하는 재산 = 성스러운 세상을 넘어선 법[출세간법(出世間法)-ariyaṃlokuttaraṃ dhammaṃ]
→ 어디가 됐건 조상들, 어머니 아버지의 가문 계보를 기억하는 자기 존재로 태어날 때마다 거기에 따른 이름을 얻음 → 바라문들이 선언하는 재산 = 세상의 법(loka dhamma)
→ 어떤 가문의 집에서 출가하더라도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에 와서 십선업(十善業)을 실천하면 유익을 위해 방법이 되는 법(ñāyaṃ dhammaṃ kusalaṃ)을 성취함 ― (MN 93-앗살라야나 경)과 같은 예로써 설명함
5. 에수까리 바라문이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됨
[7] dhanañjānisuttaṃ (MN 97-다난자니 경)
• 다난자니 바라문의 방일한 삶
; 방일과 불방일에 대해 ①게으름과 게으르지 않음, ②법이 드러나지 않음과 법이 드러남의 두 가지 이해에 더해 이 경은 ③십악업을 버리고 십선업을 닦는 삶의 실천 여부로써 설명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라자가하에 온 사리뿟따 존자와 다난자니 바라문의 대화
1) 재가자의 이런저런 할 바 때문에 방일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다난자니 바라문에게 사리뿟따 존자는 행위의 문제지 해야 할 바가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함을 지적함 ‒ 삶은 핑계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업이 끌고 가는 것
2) 이런 할 바 때문에 비법의 행위와 안정되지 못한 행위를 하는 사람과 법의 행위와 안정된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법의 행위와 안정된 행위를 하는 사람이 더 나음
(사리뿟따 존자) 다른 사람들을 원인으로 하는 법다운 행위들이 있어서 그것으로 악업을 짓지 않고 공덕을 실천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음을 알려줌
2. 다난자니 바라문이 나중에 병에 걸려 고통스럽고 큰 병을 앓게 되어 사리뿟따 존자의 문병을 청하고, 사리뿟따 존자가 문병을 가서 안부를 물은 뒤, ‘어떤 것이 더 낫습니까?’의 설법을 통해 다난자니 바라문에게 더 해야 할 바가 있음에도 낮은 범천의 세상에 확고히 하게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옴
사리뿟따 존자가 돌아간 뒤 오래지 않아 다난자니 바라문은 죽음을 맞이하여 범천의 세상에 태어남
3. 문병을 다녀온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을 만나자 세존은 왜 더 해야 할 바가 있음에도 낮은 범천의 세상에 확고히 하게 했는지 묻고, 사리뿟따 존자는 바라문들이 범천의 세상으로 기울기 때문이라고 대답함
[8] vāseṭṭhasuttaṃ (MN 98-와셋타 경)
• 두 명의 젊은 바라문 와셋타와 바라드와자가 부처님을 찾아 질문한 일화
1. 젊은 바라문 와셋타와 바라드와자의 토론 ― “어떻게 바라문이 되는가?” ― ①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된다는 주장과 ②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된다는 주장
2. 답을 얻기 위해 부처님을 찾아와 질문하고, 부처님이 설명함
1) 존재들의 공통점을 가진 태어남에 대한 분석 ― 다양한 존재들에게는 존재별로 태어남에서 생기는 특징이 있어서 그들의 태어남은 공통점이 있음
2) 사람들에서는 이렇게 (4성 계급의) 태어남에서 생기는 (4성 계급으로) 분류된 특징이 없음
3) 누가 바라문인가?
― 「나는 자궁에서 생긴 바라문, 태어남에서 만들어진 바라문을 말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존자(바라문)이라는 이름이다.」
→ 바라문의 요건을 설명 ― 이름도 성도 만들어지고, 세상에서 지정되고, 동의하여 생긴 것임.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태어남에 의해 바라문이 된다고 설명하지만, 사실은 행위 즉 업(業)에 의해 바라문 등 직업이 결정됨
4) 부처님의 결론 ― 행위에 의해서 바라문 즉 아라한이 됨
4. 두 젊은 바라문이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됨
[9] subhasuttaṃ (MN 99-수바 경)
• 또데이야의 아들인 젊은 바라문 수바와 부처님 간의 문답 ― 분별설자(分別說者)인 부처님
• 바라문들이 공덕의 결실을 위하고, 유익을 성취하기 위해 선언하는 다섯 가지 법(진리, 종교적 삶, 범행, 베다 공부, 베풂) ‒ ①재가자보다 출가자에게서 많이 볼 수 있음(→ 출가자의 삶의 결실이 재가자보다 작지 않음), ②심(心)의 필수품이고, 원망 없고 거슬림 없는 심을 닦기 위한 것임(→사무량심)
1. 수바의 주제 발의① ― ‘재가자는 방법인 법으로부터 유익을 성취하지만, 출가자는 방법인 법으로부터 유익을 성취하지 못한다.’
(부처님의 대답) 분별해서 말하지 획일적으로 말하지 않음 → 출가-재가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바름과 삿됨의 문제
2. 수바의 주제 발의② ― ‘재가자의 삶은 결실이 크지만, 출가자들의 삶은 결실이 작다.’
(부처님의 대답) 분별해서 말하지 획일적으로 말하지 않음 → 결실의 크기는 직업의 분야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됨
3. 수바의 주제 발의③ ― ‘바라문들은 공덕의 결실과 유익의 성취로 이끄는 다섯 가지 법을 선언 ― 진리, 종교적 삶, 범행, 베다 공부, 베풂’
(부처님의 대답) ‘나는 이런 다섯 가지 법들을 스스로 실답게 알아서 실현한 뒤에 보(報)를 선언한다.’라고 말하는 바라문(재가자) 없음
; 장님의 비유,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의 비유, 두 가지 불의 비유, 큰 제사에 참석한 두 명의 바라문의 비유 등을 통해 바라문들이 공덕의 결실과 유익의 성취를 위하여 선언하는 그 다섯 가지 법은 재가자보다는 출가자에게서 많이 볼 수 있음을 말함 → 출가자의 삶의 결실이 작지 않음
4. 수바가 범천의 동료로 이끄는 길을 질문함
(부처님) 범천의 동료로 이끄는 길을 설함 ― 자무량심(慈無量心)을 닦음 → 이렇게 자심해탈(慈心解脫)을 닦을 때 제한적으로 지어진 업은 거기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고, 거기서 유지되지 않을 것 → 비(悲)-희(喜)-사(捨) 무량심(無量心)과 심해탈(心解脫)에 반복
5. 수바가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됨
6. 재가 신자가 된 수바는 자눗소니 바라문을 만나서 부처님을 찬탄하고, 자눗소니 바라문은 감흥을 읊음
[10] saṅgāravasuttaṃ (MN100-상가라와 경)
• 경의 도입부에서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세존에 대한 바른 믿음을 비난하는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에게 세존의 계(戒)와 혜(慧)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질책하는데, (DN 4-소나단다 경)을 참고해야 함
1.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의 주제 발의 ― 부처님 깨달음의 본질을 질문함 → ‘고따마 존자는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까?’
•부처님의 대답 ― “바라드와자여,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에게도 차이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 바라드와자여,
①전승을 잇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그들은 전승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데, 예를 들면, 삼명(三明) 바라문이다.
②그리고 바라드와자여, 온전하게 오직 믿음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딱끼-위망시(takkīvīmaṃsī)이다.
③바라드와자여,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거기서, 바라드와자여, 나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어서 부처님은 (깨달음의 본질에 대해)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출가로부터 깨달음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불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네 개의 경』으로 정리한 내용임
5. 이 주제에 이어 상가라와는 신은 있는지에 대한 두 번째 질문을 하는데, 부처님은 ‘나는 원인과 함께 높은 신을 안다고 답합니다. 어떤 원인에 의해 높은 신으로 태어나는지를 안다는 것은 그대로 신이 있다는 것이 전제된 대답임
; ‘신은 있다.’라는 것은 세상에서 고귀한 사람들에 의해 동의 된 것
6. 상가라와는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