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 니까야 관통 후 품별 정리 15-2)육처 품(MN 143-152)(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1031)
▣ 맛지마 니까야 관통 후 품별 정리 15-2)육처 품(MN 143-152)(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1031)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NfEa7ErKGw
품별 정리 15-1)에서는 육처 품에 속한 10개 경의 대의를 정리하였는데, 품별 정리 12-2)에서는 요약과 해설을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요약만 소개하고 전체 내용은 pdf 파일로 첨부하였습니다.
또한, 이 수업에서 발췌하여 2개의 주제에 대한 동영상도 제작하였습니다.
1) vitakka(위딱까)와 parivitakka(빠리위딱까) ― 제2선(무심무사) 이후의 삶의 전개(MN 147-라훌라를 위한 가르침의 작은 경)(해피스님 241031) ⇒ 답글 참조
2) 경은 무엇을 이유로 무아(無我)를 말하는가[결점-권한-생멸](MN 148-육육 경)(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1031) ⇒ 답글 참조
[1] anāthapiṇḍikovādasuttaṃ (MN 143-아나타삔디까를 위한 가르침 경)
1. 사리뿟따 존자의 설법 ― 「재가자에게 설하지 않는 가르침」 → 법처(法處)의 이해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이렇게 공부해야 합니다. ― ‘나는 안(眼)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안(眼)을 의지한 식(識)이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자여, 그대는 이렇게 공부해야 합니다.”
; 집착하는 대상 ― 안-이-비-설-신-의 → 색-성-향-미-촉-법 → 안식 ~ 의식 → 안촉 ~ 의촉 → 안촉 ~ 의촉에서 생긴 수(受) → 땅의 요소 ~ 식의 요소[육계(六界)] → 색-수-상-행들-식 → 공무변처-식무변처-무소유처-비상비비상처 → 이 세상-저세상 →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이어서 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
2.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울면서 눈물을 흘리고, 아난다 존자의 참여로 함께 대화함
; “장자여, 그대는 움츠러듭니까, 장자여, 그대는 낙담합니까?”
; “대덕 아난다시여, 저는 움츠러들지 않고, 낙담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스승과 의(意)를 닦는 비구들을 섬겼지만, 이런 법의 말씀을 이전에는 듣지 못했습니다.”
; “장자여, 흰옷을 입은 재가자들에게 이런 법의 말씀을 설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출가자들에게 이런 법의 말씀을 설합니다.”
; “그렇다면 대덕 사리뿟따여, 재가자들에게도 이런 법의 말씀을 설해주십시오. 참으로 대덕이시여, 태어날 때부터 더러움이 적은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듣지 않으면 쇠퇴할 것입니다. 법을 이해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3. 사리뿟따 존자와 아난다 존자가 대답 없이 돌아간 뒤 오래지 않아서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죽어서 도솔천의 무리에 태어남
4. 신의 아들 아나타삔디까가 부처님에게 와서 게송을 읊음
5.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어떤 신의 아들의 방문을 소개함
6. 아난다 존자가 그 신의 아들이 아나타삔디까일 것이라고 말하고, 부처님은 아난다 존자를 takka에게 얻어져야 하는 만큼이 그대에 의해서 얻어졌다고 말하여 칭찬함.
[2] channovādasuttaṃ (MN 144-찬나를 위한 가르침 경)
1. 병문안을 가서 병의 상태를 묻는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쭌다 존자에게 찬나 존자는 고통이 심하고 회복이 어려울 것 같아 칼을 써야겠다고 말함 ― ‘나는 칼을 써야겠습니다. 나는 생명을 바라지 않습니다.’
2. 사리뿟따 존자가 칼을 쓰지 말고 회복해야 한다고 격려하지만, 찬나 존자는 ‘찬나 비구는 결점 없는 칼을 쓸 것이다.’라고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함
3. 사리뿟따 존자는 (결점 없이 칼을 쓸 것을 검증하기 위해) 질문을 함
(문답 1) ‘안(眼)과 안식(眼識) 그리고 안식으로 인식해야 하는 법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봅니다.’(여섯에 반복)
(문답 2) ‘안(眼)과 안식(眼識) 그리고 안식으로 인식해야 하는 법들에 대해 소멸을 보고 소멸을 실답게 알았기에 안(眼)과 안식(眼識) 그리고 안식으로 인식해야 하는 법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봅니다.’(여섯에 반복)
4. 문답에 이어 마하쭌다 존자가 말함 ― “그러므로, 도반 찬나여, 이것도 그분 세존의 가르침이라고 늘 작의(作意) 해야 합니다. —‘의지하는 자에게 떨림이 있고, 의지하지 않는 자에게 떨림이 없다. 떨림이 없을 때 진정이 있고, 진정이 있을 때 성향이 없다. 성향이 없을 때 오고 감이 없고, 오고 감이 없을 때 죽고 태어남이 없다. 죽고 태어남이 없을 때 이 세상도 없고 저세상도 없고 둘의 중간도 없다. 이것이 괴로움이 끝이다.’”라고.
5.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쭌다 존자가 돌아가고 오래지 않아서 찬나 존자는 칼을 씀
6. 사리뿟따 존자와 부처님의 대화
(사리뿟따 존자) 부처님에게 와서 칼을 쓴 찬나 존자의 간 곳을 물음
(부처님) 찬나 존자가 결점 없이 칼을 쓴다고 한 점을 상기시킴.
(사리뿟따 존자) 찬나 존자에게 친하고 우호적이지만 비난받는 가문이 있다는 점을 (결점이라고) 지적
(부처님) 결점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몸을 내려놓고 다른 몸을 붙잡는 것인데, 찬나 비구에게는 그런 결점이 없으므로 찬나 비구는 결점 없이 칼을 쓴 것이라고 알려줌 ― 「찬나 비구 = 아라한」 → 칼을 쓸 자격 있음
[3] puṇṇovādasuttaṃ (MN 145-뿐나를 위한 가르침 경)
1. 부처님이 뿐나 존자에게 설한 간략한 가르침
;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묾 → 소망의 생김 ⇒ ‘소망이 자라날 때 괴로움이 자라난다.’
; 기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묶여 머물지 않음 → 소망의 소멸 ⇒ ‘소망이 소멸할 때 괴로움이 소멸한다.’
2. 지역에 머묾 & 포교의 자세 ― ‘그대는 어느 지역에서 머물고자 하는가?’
; 수나빠란따라는 지역의 사람들은 난폭하고 거칠지만 뿐나 존자의 확고한 마음 자세를 확인한 부처님은 수나빠란따 지역에 머물 것을 허락함
3. 수나빠란따 지역에 도착한 뿐나 존자는 그 안거 동안 오백 명 정도의 남신자를 가르치고, 그 안거 동안 오백 명 정도의 여신자를 가르치고, 그 안거 동안 삼명(三明)을 실현함. 그리고 뿐나 존자는 나중에 완전히 꺼짐.
4. 비구들이 뿐나 존자의 태어남에 대해 질문하고, 부처님은 그가 완전히 꺼졌다고 알려줌.
[4] nandakovādasuttaṃ (MN146-난다까의 가르침 경)
1.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오백 명의 비구니들과 함께 세존에게 와서 비구니들에게 설법해 주실 것을 요청함
2. 부처님이 난다까 존자에게 비구니들을 가르치라고 지시함.
3. 난다까 존자의 설법 ― 무상-고-변하는 것인 육내입처-육외입처-육식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음
(난다까 존자의 질문) “그것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비구니들의 대답) “이전에 저희는 ‘이렇게 육내입처-육외입처-육식은 무상(無常)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았습니다.”
(난다까 존자의 동의)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자매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런 타당함이 있습니다.”
2) 기름 등불의 비유
타고 있는 기름 등불을 구성하는 것 = 기름-심지-불꽃 → 거기서 생겨나는 것 = 빛
3) 심재를 가지고 서 있는 큰 나무의 비유
큰 나무를 구성하는 것 = 뿌리-줄기-가지와 잎사귀 → 거기서 생겨나는 것 = 그늘
4) 백정의 비유
• 내입처와 외입처를 묶어주는 것 = 소망과 탐 = 애(愛) → 혜(慧)의 칼에 의해서는 내입처와 외입처에 흠을 내지 않고 오직 소망과 탐 즉 애(愛)와의 연결만 끊어냄
⇒ 소망과 탐을 끊어내는 방법 = 칠각지(七覺支)
4. 비구니들은 세존에게 가서 세존의 허락을 받고 거처로 돌아감
5. 부처님의 평가 ― 비구니들은 난다까 존자의 설법이 즐겁지만, 14일의 포살일의 달처럼 목적한 만큼 채워지지는 않았음 → 난다까 존자에게 내일도 같은 가르침을 반복 설하라고 지시함
6. 다음날 난다까 존자는 비구니들에게 같은 가르침을 설하고, 부처님은 15일의 포살일의 달처럼 목적한 만큼 채워졌다고 평가함
[5] cūḷarāhulovādasuttaṃ (MN 147-라훌라를 위한 가르침의 작은 경)
1. 부처님에게 “라훌라에게 해탈을 위해 익어야 하는 법들이 완전히 익었다. 나는 라훌라에게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이끌어야겠다.”라는 심(心)의 온전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탁발을 마치고 돌아온 부처님은 라훌라 존자를 데리고 장님들의 숲으로 가는데, 수천의 신들이 부처님을 따라갑니다.
2. 부처님은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이끄는 가르침을 설합니다. ― 내입처-외입처-식-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수-상-행-식에 속한 것에 대해 paṭipucchāvinītā(질의응답으로 설명한 가르침)의 방법으로 「무상(無常)-고(苦)-변하는 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음」을 일깨워 여실지견을 이끌고 이어서 염오-이탐-해탈의 과정으로 해탈지견을 이끎
3. 라훌라 존자의 심(心)은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들로부터 해탈함 → 아라한 됨 & 수천의 신들에게도 ‘자라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소멸하는 것이다.’라는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이 생김
[6] chachakkasuttaṃ (MN 148-육육(六六) 경)
1. 부처님의 주제 발의 ― 여섯의 여섯으로 구성된 조(組)[육육법(六六法)] ― 여섯 가지 안의 처-밖의 처-식의 무리-촉의 무리-수의 무리-애의 무리 → 여섯의 여섯으로 구성된 조는 무아다.
2. 유신(有身)의 집(集)으로 이끄는 실천 ― 여섯의 여섯으로 구성된 36개 법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함
3. 유신(有身)의 멸(滅)로 이끄는 실천 ― 여섯의 여섯으로 구성된 36개 법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관찰함
4. 삼사화합(三事和合) 촉(觸) → 수(受)① ⇒ 고집(苦集)
; 즐거운 느낌에 닿아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묾 → 탐의 잠재성향 잠재
; 괴로운 느낌에 닿아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함 → 저항의 잠재성향이 잠재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닿아 그 느낌의 자라남-줄어듦-매력-위험-해방을 꿰뚫어 알지 못함 →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
⇒ 탐의 잠재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저항의 잠재성향을 제거하지 못하고, 무명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지 못하고, 무명을 버리지 못하고 명을 일으키지 못한 채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라는 경우는 없음
5. 삼사화합(三事和合) 촉(觸) → 수(受)② ⇒ 고멸(苦滅)
; 즐거운 느낌에 닿아 기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묶여 머물지 않음 → 탐의 잠재성향 잠재하지 않음
; 괴로운 느낌에 닿아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음 → 저항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음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닿아 그 느낌의 자라남-줄어듦-매력-위험-해방을 꿰뚫어 앎 →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음
⇒ 탐의 잠재성향을 버리고, 저항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무명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을 일으킨 뒤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라는 경우는 있음
7.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 ― 여섯의 여섯으로 구성된 36개 법에 대해 염오 → 이탐 → 해탈 → 해탈지견 ⇒ 육십 명의 비구들의 심(心)은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들로부터 해탈함
[7] mahāsaḷāyatanikasuttaṃ (MN 149-육처(六處)에 속한 큰 경)
1. 부처님의 주제 발의 ― 육처(六處)에 속한 큰 법문
1) 알고 보지 못하는 자 ― 신-심의 괴로움을 경험
내입처-외입처-식-촉-수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할 때 수에서 친밀함 → 친밀하고 묶이고 미혹하고 매력을 이어보면서 머무는 그에게 미래의 오취온들이 쌓임 → 다시 존재가 되고, 소망과 탐(貪)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인 애(愛)가 늘어남 → 그에게 신(身)-심(心)에 속한 불안들-고통들-열기들도 커짐 → 신-심의 괴로움도 경험
2) 알고 보는 자 ― 신-심의 즐거움을 경험 → 더 높은 향상
내입처-외입처-식-촉-수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볼 때 수에서 친밀하지 않음 → 친밀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미혹하지 않고 위험을 이어보면서 머무는 그에게 미래의 오취온들이 쌓이지 않음 → 다시 존재가 되고, 소망과 탐(貪)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인 애(愛)가 버려짐 → 그에게 신(身)-심(心)에 속한 불안들-고통들-열기들도 버려짐 → 신-심의 즐거움도 경험
→ 그와 같은 견해-사유-노력-사띠-삼매가 바른 견해-사유-노력-사띠-삼매이다. 그전에 이미 몸의 업과 말의 업과 생활은 아주 청정하다. 이렇게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은 닦아져 완성된다.
→ 이렇게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닦는 그에게 사념처(四念處)-사정근(四正勤)-사여의족(四如意足)-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지(七覺支)도 닦아져 완성된다.
→ 두 가지 연결된 법인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나타난다.
; 실답게 안 뒤에 완전히 알아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완전히 안다. 실답게 안 뒤에 버려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버린다. 실답게 안 뒤에 닦아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닦는다.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해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한다.
•실답게 안 뒤에 완전히 알아야 하는 법들 ― 오취온(五取蘊)
•실답게 안 뒤에 버려야 하는 법들 ― 무명(無明)과 유애(有愛)
•실답게 안 뒤에 닦아야 하는 법들 ― 사마타와 위빳사나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해야 하는 법들 ― 명(明)과 해탈(解脫)
[8] nagaravindeyyasuttaṃ (MN 150-나가라윈다 경)
1. 부처님이 나가라윈다의 바라문 장자들에게 주제를 발의함 ― 존중되고, 존경받고, 숭상되고, 예배 되어서는 안 되는 부류의 사문-바라문들과 존중되고, 존경받고, 숭상되고, 예배 되어야 하는 사문-바라문들
1) 존중되고, 존경받고, 숭상되고, 예배 되어서는 안 되는 사문-바라문들 ― 재가자인 장자들과 같은 삶을 살 뿐 이것을 넘어선 안정된 행동을 볼 수 없음
2) 존중되고, 존경받고, 숭상되고, 예배 되어야 하는 사문-바라문들 ― 재가자인 장자들의 삶을 넘어선 안정된 행동을 볼 수 있음
⇒ 그래서 이 경의 주제는 탐-진-치의 삶과 탐-진-치에서 벗어난 삶에 의해 존중의 여부를 판단하라는 가르침입니다.
2.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 ― 깊은 숲속 외딴 거처를 수용
3. 나가라윈다의 바라문 장자들이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됨
[9] piṇḍapātapārisuddhisuttaṃ (MN 151-탁발 음식의 청정 경)
1. 부처님의 주제 발의 ― “그대는 요즘 어떤 머묾으로 많이 머무는가?”
(사리뿟따 존자) “공(空)한 머묾으로 많이 머뭅니다.”
2. 공(空-suññatā) = mahāpurisavihāra 대인(大人)의 머묾
3. 공(空)한 머묾으로 머무는 방법 ― 숙고(iti paṭisañcikkhitabbaṃ)
비구가 ‘공(空)한 머묾으로 많이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한다면, 비구는 ‘탁발을 위해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거나, 탁발을 위해 돌아다니는 영역이거나, 탁발을 마치고 마을로부터 돌아오는 길이거나, 거기서 ‘내입처에 의해 인식되는 외입처에 관한 관심이나, 탐(貪)이나, 진(嗔)이나, 치(癡)나, 심(心)의 저항이 나에게 있는가?’ - ‘나에게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들은 버려졌는가?’ - ‘나에게 다섯 가지 장애는 버려졌는가?’ - ‘나에게 오취온(五取蘊)은 완전히 알려졌는가?’ - ‘나에게 일곱 가지 보리분법은 닦아졌는가?’ - ‘나에게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닦아졌는가?’ - ‘나에게 명(明)과 해탈(解脫)은 실현되었는가?’라고 숙고한 뒤
부정적인 상태이면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긍정적인 상태이면 선법들에서 밤낮으로 이어지는 공부를 통해 희열과 환희로 머물러야 함.
4. 거듭 숙고함에 의한 탁발 음식의 청정 ― 「사리뿟따여, 과거에 탁발 음식을 청정히 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모두 이처럼 거듭 숙고함을 원인으로 탁발 음식을 청정히 하였다. 사리뿟따여, 미래에 탁발 음식을 청정히 할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모두 이처럼 거듭 숙고함을 원인으로 탁발 음식을 청정히 할 것이다. 사리뿟따여, 현재에 탁발 음식을 청정히 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모두 이처럼 거듭 숙고함을 원인으로 탁발 음식을 청정히 한다. 그러므로 사리뿟따여, ‘우리는 거듭 숙고함을 원인으로 탁발 음식을 청정하게 할 것이다.’라고, 사리뿟따여,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10] indriyabhāvanāsuttaṃ (MN 152-기능수행 경)
1. 부처님의 질문 ― ①“웃따라여, 빠라시위야 바라문은 제자들에게 기능수행을 가르치는가?” ②“웃따라여, 그러면 빠라시위야 바라문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능수행을 가르치는가?”
웃따라의 대답 ― “여기, 고따마 존자시여, 안(眼)으로 색(色)을 보지 않고 이(耳)로 성(聲)을 듣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따마 존자시여, 빠라시위야 바라문은 제자들에게 기능수행을 가르칩니다.”
부처님의 지적 ― “그럴 때, 웃따라여, 장님은 기능을 닦은 자일 것이고, 귀머거리도 기능을 닦은 자일 것이다. 빠라시위야 바라문의 말처럼, 웃따라여, 장님은 안(眼)으로 색(色)을 보지 않고, 귀머거리는 이(耳)로 성(聲)을 듣지 않는다.”
2. 성자의 율(律)에서의 기능수행 ― 1차 인식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마음에 드는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마음에 들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한 것을 빠르게 소멸하고 평정을 확립하는 것
3. 유학(有學)의 실천 ― 생겨난 마음에 드는 것과 생겨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생겨난 마음에 들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한 것 때문에 걱정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함 = 염오
4. 기능을 닦은 성자 ― 상(想)의 제어
아난다여, 비구에게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생기고, 마음에 들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한 것이 생긴다. 만약 그가 ‘혐오함에 대해 혐오하지 않는 상(想)으로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혐오하지 않는 상(想)으로 거기에 머문다. 만약 ‘혐오하지 않음에 대해 혐오하는 상(想)으로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혐오하는 상(想)으로 거기에 머문다. 만약 ‘혐오함과 혐오하지 않음에 대해 혐오하지 않는 상(想)으로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혐오하지 않는 상(想)으로 거기에 머문다. 만약 ‘혐오하지 않음과 혐오함에 대해 혐오하는 상(想)으로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혐오하는 상(想)으로 거기에 머문다. 만약 ‘혐오함과 혐오하지 않음의 둘 모두를 버린 뒤에 평정과 사띠와 삼빠자나를 가지고 머물러야겠다.’라고 원하면, 평정과 사띠와 삼빠자나를 가지고 거기에 머문다.
4. 이어지는 가르침[가르침의 근본-교본(敎本)]
아난다여, 제자들을 위해 베푸는 자인 스승이 행해야 하는 것을, 연민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들을 위해서 했다. 아난다여, 나무 밑이 있고, 빈집이 있다. 아난다여, 선(禪)을 하라. 방일(放逸)하지 마라. 나중에 뉘우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을 위한 우리의 이어지는 가르침[가르침의 근본-교본(敎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