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mahāsatipaṭṭhānasuttaṃ (MN 10-대념처경(大念處經))
1. mūlapariyāyavaggo (MN 1), 10. mahāsatipaṭṭhānasuttaṃ (MN 10-대념처경(大念處經))
• [unnamed] (MN 10)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은 꾸루에서 깜마사담마라는 꾸루의 번화가에 머물렀다. 그때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 uddeso (MN 10) ― 대의(大義)
“비구들이여, 사념처(四念處)라는 이 길은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수(愁)]과 비탄[비(悲)]을 건너기 위한, 고통[고(苦)]과 고뇌[우(憂)]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경로이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身)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느낌(受)들에서 느낌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마음(心)에서 마음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현상(法)들에서 현상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uddeso niṭṭhito. 대의(大義)를 마침.
• kāyānupassanā ānāpānapabbaṃ (MN 10-몸의 이어보기, 들숨-날숨 부분)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몸(身)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무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간 비구는 다리를 교차하고, 몸을 곧게 뻗치고, 콧구멍 주위에 사띠를 준비한 채 앉아있다. 그는 오직 사띠하면서(알아차리면서) 들이쉬고, 오직 사띠하면서(알아차리면서) 내쉰다. ①길게 들이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라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쉴 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라고 분명히 안다. ②짧게 들이쉴 때는 ‘나는 짧게 들이쉰다.’라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쉴 때는 ‘나는 짧게 내쉰다.’라고 분명히 안다. ③‘온몸을 경험하면서 나는 들이쉴 것이다.’라고 시도하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나는 내쉴 것이다.’라고 시도한다. ④‘신행(身行)을 진정시키면서 나는 들이쉴 것이다.’라고 시도하고, ‘신행(身行)을 진정시키면서 나는 내쉴 것이다.’라고 시도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숙련된 선반공이나 선반공의 제자는 길게 끌면서 '나는 길게 끈다.'라고 분명히 알고 짧게 끌면서 '나는 짧게 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①길게 들이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라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쉴 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라고 분명히 안다. ②짧게 들이쉴 때는 ‘나는 짧게 들이쉰다.’라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쉴 때는 ‘나는 짧게 내쉰다.’라고 분명히 안다. ③‘온몸을 경험하면서 나는 들이쉴 것이다.’라고 시도하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나는 내쉴 것이다.’라고 시도한다. ④‘신행(身行)을 진정시키면서 나는 들이쉴 것이다.’라고 시도하고, ‘신행(身行)을 진정시키면서 나는 내쉴 것이다.’라고 시도한다.
이렇게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밖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팎에 머문다. 또는 자라나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문다. 또는 오직 앎[지(知)]만이 있고 밀착된 사띠만이 있을 때까지, ‘몸이 있다!’라고 사띠를 확고히 한다. 과정을 넘어서서 머물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ānāpānapabbaṃ niṭṭhitaṃ. 들숨-날숨 부분을 마침
• kāyānupassanā iriyāpathapabbaṃ (MN 10-몸의 이어보기, 네 가지 자세 부분)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가면서 ‘나는 간다.’라고 분명히 알고, 서 있으면서 ‘나는 서 있다.’라고 분명히 알며, 앉아 있으면서 ‘나는 앉아 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누워있으면서 ‘나는 누워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또한, 몸이 어떤 자세를 취하든 그것을 분명히 안다.
이렇게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밖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팎에 머문다. 또는 자라나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문다. 또는 오직 앎[지(知)]만이 있고 밀착된 사띠만이 있을 때까지, ‘몸이 있다!’라고 사띠를 확고히 한다. 과정을 넘어서서 머물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iriyāpathapabbaṃ niṭṭhitaṃ. 네 가지 자세 부분을 마침
• kāyānupassanā sampajānapabbaṃ (MN 10-몸의 이어보기, 정지(正知-옳고 그름의 판단) 부분)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대가사와 발우와 가사를 지닐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똥과 오줌을 눌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갈 때도-설 때도-앉을 때도-잠잘 때도-깨어있을 때도-말할 때도-침묵할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이렇게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밖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팎에 머문다. 또는 자라나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문다. 또는 오직 앎[지(知)]만이 있고 밀착된 사띠만이 있을 때까지, ‘몸이 있다!’라고 사띠를 확고히 한다. 과정을 넘어서서 머물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sampajānapabbaṃ niṭṭhitaṃ. 정지(正知-옳고 그름의 판단) 부분을 마침
• kāyānupassanā paṭikūlamanasikārapabbaṃ (MN 10-몸의 이어보기, 역겨움에 대한 작의(作意) 부분)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발바닥으로부터 올라가며, 머리카락으로부터 내려가며, 이 몸에 대해 피부의 경계를 채우는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들을 관찰한다. —‘이 몸에는 머리카락-털-손발톱-이-피부-살-힘줄-뼈-골수-신장-심장-간-흉막-지라-허파-창자-장간막-위[위 속의 소화되지 않은 음식]-똥-쓸개즙-가래-고름-피-땀-지방-눈물-기름-침-콧물-관절액-오줌이 있다.’라고.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밭벼-논벼-콩-완두-기장-현미 같은 여러 가지 낟알을 채운 양쪽에 아가리가 있는 자루를 눈이 있는 사람이 풀고서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밭벼, 이것은 논벼, 이것은 콩, 이것은 완두, 이것은 기장, 이것은 현미다.’라고.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발바닥으로부터 올라가며, 머리카락으로부터 내려가며, 이 몸에 대해 피부의 경계를 채우는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들을 관찰한다. —‘이 몸에는 머리카락-털-손발톱-이-피부-살-힘줄-뼈-골수-신장-심장-간-흉막-지라-허파-창자-장간막-위[위 속의 소화되지 않은 음식]-똥-쓸개즙-가래-고름-피-땀-지방-눈물-기름-침-콧물-관절액-오줌이 있다.’라고.
이렇게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밖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팎에 머문다. 또는 자라나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문다. 또는 오직 앎[지(知)]만이 있고 밀착된 사띠만이 있을 때까지, ‘몸이 있다!’라고 사띠를 확고히 한다. 과정을 넘어서서 머물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paṭikūlamanasikārapabbaṃ niṭṭhitaṃ. 역겨움에 대한 작의(作意) 부분을 마침
• kāyānupassanā dhātumanasikārapabbaṃ (MN 10-몸의 이어보기, 요소에 대한 작의(作意) 부분)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놓인 대로 자세를 취한 대로 요소별로 관찰한다. —‘이 몸에는 땅[지(地)]의 요소, 물[수(水)]의 요소, 불[화(火)]의 요소, 바람[풍(風)]의 요소가 있다.’라고.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솜씨 좋은 백정이나 그 조수가 소를 잡은 뒤에 큰길 사거리에 덩어리별로 분류해놓고 앉아있을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놓인 대로 자세를 취한 대로 요소별로 관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라고.
이렇게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밖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팎에 머문다. 또는 자라나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문다. 또는 오직 앎[지(知)]만이 있고 밀착된 사띠만이 있을 때까지, ‘몸이 있다!’라고 사띠를 확고히 한다. 과정을 넘어서서 머물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dhātumanasikārapabbaṃ niṭṭhitaṃ. 요소에 대한 작의(作意) 부분을 마침
• kāyānupassanā navasivathikapabbaṃ (MN 10-몸의 이어보기, 시체에 대한 아홉 가지 부분)
다시,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 된, 부풀고 검푸른 빛을 띠고 완전히 부패 된 시체를 볼 것이다. 그는 오직 이 몸을 비교한다. —‘이 몸 또한 이런 것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라고.
이렇게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밖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팎에 머문다. 또는 자라나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문다. 또는 오직 앎[지(知)]만이 있고 밀착된 사띠만이 있을 때까지, ‘몸이 있다!’라고 사띠를 확고히 한다. 과정을 넘어서서 머물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다시,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비구는 까마귀가 쪼아 먹고 솔개가 쪼아 먹고 독수리가 쪼아 먹고 왜가리가 쪼아 먹고 개가 뜯어 먹고 호랑이가 뜯어 먹고 표범이 뜯어 먹고 자칼이 뜯어 먹고 다양한 벌레 무리가 파먹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볼 것이다. 그는 오직 이 몸을 비교한다. —‘이 몸 또한 이런 것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라고.
이렇게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밖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팎에 머문다. 또는 자라나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문다. 또는 오직 앎[지(知)]만이 있고 밀착된 사띠만이 있을 때까지, ‘몸이 있다!’라고 사띠를 확고히 한다. 과정을 넘어서서 머물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다시,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비구는 ③해골이 살과 피가 남아있고 힘줄로 연결된 채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볼 것이다. 그는 오직 이 몸을 비교한다. —‘이 몸 또한 이런 것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라고. 다시,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비구는 ④해골이 살은 다 떨어지고 피만 묻은 상태로 힘줄로 연결된 채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볼 것이다. 그는 오직 이 몸을 비교한다. —‘이 몸 또한 이런 것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라고. 다시,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비구는 ⑤해골이 살과 피는 다 떨어지고 힘줄로 연결된 채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볼 것이다. 그는 오직 이 몸을 비교한다. —‘이 몸 또한 이런 것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라고. 다시,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비구는 ⑥뼈들이 연결이 끊어져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비뼈,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 사방 팔방으로 흩어져 있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볼 것이다. 그는 오직 이 몸을 비교한다. —‘이 몸 또한 이런 것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라고.
이렇게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밖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팎에 머문다. 또는 자라나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문다. 또는 오직 앎[지(知)]만이 있고 밀착된 사띠만이 있을 때까지, ‘몸이 있다!’라고 사띠를 확고히 한다. 과정을 넘어서서 머물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다시,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⑦비구는 뼈가 조개껍질 색깔같이 하얗게 된,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볼 것이다. 그는 오직 이 몸을 비교한다. —‘이 몸 또한 이런 것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라고.
다시,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⑧뼈가 3~4년이 지나 더러운 무더기가 된,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볼 것이다. 그는 오직 이 몸을 비교한다. —‘이 몸 또한 이런 것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라고.
다시,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⑨뼈가 삭아서 분말이 된,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볼 것이다. 그는 오직 이 몸을 비교한다. —‘이 몸 또한 이런 것이고, 이렇게 될 것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라고.
이렇게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밖에 머물거나,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안팎에 머문다. 또는 자라나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물거나,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몸에 머문다. 또는 오직 앎[지(知)]만이 있고 밀착된 사띠만이 있을 때까지, ‘몸이 있다!’라고 사띠를 확고히 한다. 과정을 넘어서서 머물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navasivathikapabbaṃ niṭṭhitaṃ. 시체에 대한 아홉 가지 부분을 마침
cuddasakāyānupassanā niṭṭhitā. 열네 가지 몸의 이어보기를 마침
• vedanānupassanā (MN 10-경험의 이어보기)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느낌(受)들에서 느낌을 이어보면서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①즐거움을 경험하면서 ‘나는 즐거움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②괴로움을 경험하면서 ‘나는 괴로움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③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하면서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④개발되지 않은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나는 개발되지 않은 즐거움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⑤개발된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나는 개발된 즐거움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⑥개발되지 않은 괴로움을 경험하면서 ‘나는 개발되지 않은 괴로움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⑦개발된 괴로움을 경험하면서 ‘나는 개발된 괴로움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⑧개발되지 않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하면서 ‘나는 개발되지 않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⑨개발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하면서 ‘나는 개발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느낌들에서 느낌을 이어보면서 안에 머물거나, 느낌들에서 느낌을 이어보면서 밖에 머물거나, 느낌들에서 느낌을 이어보면서 안팎에 머문다. 또는 자라나는 법을 이어보면서 느낌에 머물거나,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느낌에 머물거나,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느낌에 머문다. 또는 오직 앎[지(知)]만이 있고 밀착된 사띠만이 있을 때까지, ‘느낌이 있다!’라고 사띠를 확고히 한다. 과정을 넘어서서 머물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느낌들에서 느낌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vedanānupassanā niṭṭhitā. 경험의 이어보기를 마침
• cittānupassanā (MN 10-심(心)의 이어보기)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마음(心)에서 마음을 이어보면서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①탐(貪)이 있는 심(心)을 ‘탐(貪)이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②탐(貪)이 없는 심(心)을 ‘탐(貪)이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③진(嗔)이 있는 심(心)을 ‘진(嗔)이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④진(嗔)이 없는 심(心)을 ‘진(嗔)이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⑤치(癡)가 있는 심(心)을 ‘치(癡)가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⑥치(癡)가 없는 심(心)을 ‘치(癡)가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⑦수축된 심(心)을 ‘수축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⑧흩어진 심(心)을 ‘흩어진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⑨개발된 심(心)을 ‘개발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⑩개발되지 않은 심(心)을 ‘개발되지 않은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⑪위가 있는 심(心)을 ‘위가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⑫위가 없는 심(心)을 ‘위가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⑬삼매를 닦는 심(心)을 ‘삼매를 닦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⑭삼매를 닦지 않는 심(心)을 ‘삼매를 닦지 않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⑮해탈된 심(心)을 ‘해탈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⑯해탈되지 않은 심(心)을 ‘해탈되지 않은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마음에서 마음을 이어보면서 안에 머물거나, 마음에서 마음을 이어보면서 밖에 머물거나, 마음에서 마음을 이어보면서 안팎에 머문다. 또는 자라나는 법을 이어보면서 마음에 머물거나,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마음에 머물거나,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이어보면서 마음에 머문다. 또는 오직 앎[지(知)]만이 있고 밀착된 사띠만이 있을 때까지, ‘마음이 있다!’라고 사띠를 확고히 한다. 과정을 넘어서서 머물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도,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cittānupassanā niṭṭhitā. 심(心)의 이어보기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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