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10-법(法)의 이어보기, 제(諦) 부분)
• dhammānupassanā saccapabbaṃ (MN 10-법(法)의 이어보기, 제(諦) 부분)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사성제(四聖諦)의 현상들에서 현상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사성제의 현상들에서 현상을 이어보면서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이 고(苦)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고집(苦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고멸(苦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paṭhamabhāṇavāro niṭṭhito. 첫 번째 구간이 끝남
• dukkhasaccaniddeso (MN 10-고제(苦諦)의 서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고성제(苦聖諦)인가? 태어남[생(生)]도 괴로움이고, 늙음[노(老)]도 괴로움이고, 죽음[사(死)]도 괴로움이다.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도 괴로움이다. 재미없는 것들과 함께 엮이는 괴로움[원증회고(怨憎會苦)]이고, 즐거운 것들과 갈라지는 괴로움[애별리고(愛別離苦)]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구부득고(求不得苦)]이다. 간략히 말하면, 오취온(五取蘊)이 괴로움이다[오취온고(五取蘊苦)].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태어남[생(生)]인가? 이런저런 중생에 속하는 그러그러한 중생의 무리에서 태어남, 출생, 듦, 탄생, 온(蘊)의 출현, 처(處)의 획득, 비구들이여, 이것이 태어남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늙음[노(老)]인가? 이런저런 중생에 속하는 그러그러한 중생의 무리에서 늙음, 노쇠함, 치아가 부러짐, 머리가 흼, 주름진 피부, 생명력의 움츠러듦, 기능[근(根)]의 파괴, 비구들이여, 이것이 늙음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죽음[사(死)]인가? 이런저런 중생에 속하는 그러그러한 중생의 무리로부터 종말, 제거됨, 해체, 사라짐, 사망, 죽음, 서거, 온(蘊)의 해체, 육체를 내려놓음, 명근(命根)의 끊어짐, 비구들이여, 이것이 죽음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슬픔[수(愁)]인가?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불만족한 것에 맞닿은 사람의 슬픔, 슬퍼함, 슬퍼짐, 내면의 큰 슬픔, 비구들이여, 이것이 슬픔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비탄[비(悲)]인가?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불만족한 것에 맞닿은 사람의 한탄, 비탄, 한탄함, 비탄함, 한탄스러움, 비탄스러움,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탄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움[고(苦)]인가? 비구들이여, 몸에 속한 괴로움, 몸에 속한 불편, 신촉(身觸)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의 경험,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고뇌[우(憂)]인가? 비구들이여, 심(心)에 속한 괴로움, 심에 속한 불편, 의촉(意觸)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의 경험,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뇌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절망[뇌(惱)]인가? 비구들이여, 이런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저런 불만족한 것에 맞닿은 사람의 실망, 절망, 실망스러움, 절망스러움, 비구들이여, 이것이 절망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싫어하는 것들과 함께 엮이는 괴로움[원증회고(怨憎會苦)]인가? 여기에 원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들이 있고, 또한, 편치 못한 소유의 삶, 이익되지 않는 소유의 삶, 불쾌한 소유의 삶, 안온하지 않은 소유의 삶이 있다. 무엇이든 그것들과 더불어 교제하고 만나고 결합하고 엮인 상태, 비구들이여, 이것이 싫어하는 것들과 함께 엮이는 괴로움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좋아하는 것들과 갈라지는 괴로움[애별리고(愛別離苦)]인가? 여기에 원하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들이 있고, 또한, 편안한 소유의 삶, 이익된 소유의 삶, 유쾌한 소유의 삶, 안온한 소유의 삶이 있고, 또한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 친구 동료 친지가 있다. 무엇이든 그것들과 더불어 교제하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결합하지 못하고 엮이지 못한 상태, 비구들이여, 이것이 좋아하는 것들과 갈라지는 괴로움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구부득고(求不得苦)]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나는 존재인 중생들에게 ‘오 참으로 우리가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기를! 참으로 우리에게 태어남이 오지 않기를!’이라는 원함이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원함에 의해 성취되지 않는다. 이것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늙는 존재인 중생들에게 ‘오 참으로 우리가 늙는 존재가 아니기를! 참으로 우리에게 늙음이 오지 않기를!’이라는 원함이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원함에 의해 성취되지 않는다. 이것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병드는 존재인 중생들에게 ‘오 참으로 우리가 병드는 존재가 아니기를! 참으로 우리에게 병이 오지 않기를!’이라는 원함이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원함에 의해 성취되지 않는다. 이것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죽는 존재인 중생들에게 ‘오 참으로 우리가 죽는 존재가 아니기를! 참으로 우리에게 죽음이 오지 않기를!’이라는 원함이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원함에 의해 성취되지 않는다. 이것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하는 존재인 중생들에게 ‘오 참으로 우리가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하는 존재가 아니기를! 참으로 우리에게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이 오지 않기를!’이라는 원함이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원함에 의해 성취되지 않는다. 이것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간략히 말한 오취온고(五取蘊苦)인가? 비구들이여, 색취온(色取蘊), 수취온(受取蘊), 상취온(想取蘊), 행취온(行取蘊), 식취온(識取蘊), 이것들이 간략히 말한 오취온고(五取蘊苦)라고 불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고성제(苦聖諦)라고 불린다.
• samudayasaccaniddeso (MN 10-집제(集諦)의 서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고집성제(苦集聖諦)인가? 다시 존재로 이끌고 소망과 탐(貪)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기뻐하는 애(愛)인데, 소유의 애(愛), 존재의 애(愛), 존재에서 벗어남의 애(愛)[욕애(慾愛)-유애(有愛)-무유애(無有愛)]가 있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그런 애(愛)는 생길 때 어디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어디에 자리 잡는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무엇이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인가? 안(眼)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이(耳)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비(鼻)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설(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신(身)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의(意)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색(色)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성(聲)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향(香)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미(味)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촉(觸)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법(法)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안식(眼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이식(耳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비식(鼻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설식(舌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신식(身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의식(意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안촉(眼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이촉(耳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비촉(鼻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설촉(舌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신촉(身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의촉(意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안촉(眼觸)에서 생긴 수(受)[안촉생수(眼觸生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이촉(耳觸)에서 생긴 수(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비촉(鼻觸)에서 생긴 수(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설촉(舌觸)에서 생긴 수(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신촉(身觸)에서 생긴 수(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의촉(意觸)에서 생긴 수(受)[의촉생수(意觸生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색상(色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성상(聲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향상(香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미상(味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촉상(觸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법상(法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색사(色思-색의 의도)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성사(聲思)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향사(香思)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미사(味思)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촉사(觸思)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법사(法思)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색애(色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성애(聲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향애(香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미애(味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촉애(觸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법애(法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색심(色尋-색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성심(聲尋-성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향심(香尋-향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미심(味尋-미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촉심(觸尋-촉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법심(法尋-법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색사(色伺-색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성사(聲伺-성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향사(香伺-향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미사(味伺-미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촉사(觸伺-촉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법사(法伺-법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고집성제(苦集聖諦)라고 불린다.
• nirodhasaccaniddeso (MN 10-멸제(滅諦)의 서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고멸성제(苦滅聖諦)인가? 그 애(愛)가 남김없이 바랜 소멸, 포기, 놓음, 풀림, 잡지 않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애(愛)는 버려질 때 어디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어디에서 소멸하는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무엇이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인가? 안(眼)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이(耳)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비(鼻)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설(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신(身)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의(意)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색(色)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성(聲)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향(香)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미(味)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촉(觸)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법(法)들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안식(眼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이식(耳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비식(鼻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설식(舌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신식(身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의식(意識)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안촉(眼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이촉(耳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비촉(鼻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설촉(舌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신촉(身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의촉(意觸)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안촉(眼觸)에서 생긴 수(受)[안촉생수(眼觸生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이촉(耳觸)에서 생긴 수(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비촉(鼻觸)에서 생긴 수(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설촉(舌觸)에서 생긴 수(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신촉(身觸)에서 생긴 수(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의촉(意觸)에서 생긴 수(受)[의촉생수(意觸生受)]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색상(色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성상(聲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향상(香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미상(味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촉상(觸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법상(法想)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색사(色思-색의 의도)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성사(聲思)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향사(香思)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미사(味思)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촉사(觸思)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법사(法思)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색애(色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성애(聲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향애(香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미애(味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촉애(觸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법애(法愛)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색심(色尋-색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성심(聲尋-성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향심(香尋-향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미심(味尋-미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촉심(觸尋-촉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법심(法尋-법의 위딱까)은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색사(色伺-색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성사(聲伺-성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향사(香伺-향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미사(味伺-미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촉사(觸伺-촉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법사(法伺-법의 위짜라)는 세상에 있는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애는 버려질 때 여기에서 버려지고, 소멸할 때 여기에서 소멸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고멸성제(苦滅聖諦)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