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2-154) 사생(四生)과 갈곳[오도(五道)와 해탈]
사리뿟따여, 이런 네 가지 태어남[존재의 영역]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이다. 사리뿟따여, 무엇이 난생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그 껍질을 깨고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이 난생이라고 불린다. 사리뿟따여, 무엇이 태생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태의 막을 벗고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이 태생이라고 불린다. 사리뿟따여, 무엇이 습생인가? 사리뿟따여, 생명체가 썩은 물고기, 부패한 시체, 부패한 굳은 우유에서나 물웅덩이나 연못에서 태어나면, 사리뿟따여, 이것이 습생이라고 불린다. 사리뿟따여, 무엇이 화생인가? 사리뿟따여, 천인(天人)들이나 지옥에 태어난 자들이나 어떤 인간들이나 죽은 뒤에 벌을 받아야 하는 어떤 존재들, 사리뿟따여, 이것이 화생이라고 불린다. 사리뿟따여, 이런 네 가지 태어남[존재의 영역]이 있다.
opapātika: arisen without visible cause; born spontaneously. (adj.)
yoni: origin; realm of existence; the female organ; knowledge; species. (f.)
deva: 1. a deity; 2. the sky; 3. a rain cloud; 4. a king. (m.)
nerayika: born in the hell; one doomed to suffer in the hell. (adj.)
ekacca: some; certain; a few. (adj.)
manussa: a human being. (m.)
vinipātika (adj.) [fr. vinipāta] destined to suffer in purgatory, liable to punishment after death
※ 화생 : 하늘과 지옥, 그리고 죽은 뒤에 벌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서의 아귀를 포함하는 세 갈래 윤회의 길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때, '어떤 인간들'이 무슨 의미인지는 더 연구해야 할 것임. 경전에는 비인간(非人間-amanussa)이라 하여 사왕천의 존재들(약카-간답바-꿈반다-용) 등이 나타나는데, 비인간이라 하지만 천인에 포함하지 않고 인간과 비교되는 점(인간 ↔ 비인간)을 감안 할 때 '화생 하는 어떤 인간들'의 내용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음.
어떤 사람이,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 그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설해진 법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끈다.’라고 말한다면,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심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무위의 앎을 얻을 것이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이런 성취를 나는 말한다.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심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사리뿟따여, 이런 다섯 가지의 갈 곳이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천상이다. 사리뿟따여, 나는 지옥과 지옥으로 이끄는 길, 지옥으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난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축생과 축생으로 이끄는 길, 축생으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짐승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아귀와 아귀로 이끄는 길, 아귀로 이끄는 실천을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로 태어난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인간과 인간으로 이끄는 길, 인간으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또한, 사리뿟따여, 나는 천상과 천상으로 이끄는 길, 천상으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그리고 사리뿟따여, 나는 열반과 열반으로 이끄는 길, 열반으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알며, 그 실천을 따라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는 것을 꿰뚫어 안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이렇게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사람 키 남짓하고 불꽃이나 연기가 없는 숯으로 가득한 숯불 구덩이가 있다. 그런데 열기에 압도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숯불 구덩이를 향하여 올 것이다.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 사람은 오직 이 숯불 구덩이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숯불 구덩이에 떨어져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볼 것이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나,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이렇게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에 태어나,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사람 키 남짓하고 똥으로 가득한 똥구덩이가 있다. 그런데 열기에 압도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똥구덩이를 향하여 올 것이다.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 사람은 오직 이 똥구덩이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똥구덩이에 빠져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볼 것이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축생에 태어나,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이렇게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 세상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 세상에 태어나, 고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평탄치 못한 땅 위에 생겨난 잎들이 엷고 구멍 숭숭한 그늘을 가진 나무가 있다. 그런데 열기에 압도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나무를 향하여 올 것이다.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 사람은 오직 이 나무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누워서 고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볼 것이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 세상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아귀 세상에 태어나, 고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이렇게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들 가운데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들 가운데 태어나, 행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평탄한 땅 위에 생겨난 잎들이 두텁고 짙은 그늘을 가진 나무가 있다. 그런데 열기에 압도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나무를 향하여 올 것이다.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 사람은 오직 이 나무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누워서 행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볼 것이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들 가운데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인간들 가운데 태어나, 행복 많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이렇게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나,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석회로 칠해지고 바람이 차단되고 빗장이 채워지고 창문이 닫힌 뾰족지붕의 저택이 있다. 거기에는 소파, 모직 양탄자, 흰색의 모직 양탄자, 꽃무늬 양탄자, 까달리 사슴 가죽으로 만든 최상의 모포, 차양, 양면이 붉은 베개가 있다. 그런데 열기에 압도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저택을 향하여 올 것이다.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 사람은 오직 이 저택으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뾰족지붕의 저택의 소파에 앉거나 누워서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볼 것이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날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나,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이렇게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면서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맑고 쾌적하고 투명하고 시원한 물이 담긴, 멀지 않은 곳에 두터운 숲이 있고, 아름다운 둑으로 둘러싸인 매혹적인 연못이 있다. 그런데 열기에 압도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오직 한 길을 따라 이 연못을 향하여 올 것이다. 눈 있는 자는 그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 사람은 오직 이 연못으로 올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그 연못에 들어가서 목욕하고 마시고 일체의 근심과 피로와 열기를 가라앉힌 뒤에 다시 나와서, 그 숲에 앉거나 누워서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를 볼 것이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나는 여기 어떤 사람에 대해 심으로부터 심의 차이를 꿰뚫어 안다. ― ‘이 사람은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그런 실천을 하는 자이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을 오르는 자이다.’라고. 나중에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면서 오로지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그 사람을 본다. 사리뿟따여, 이러한 다섯 가지의 갈 곳이 있다.
어떤 사람이,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 그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설해진 법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끈다.’라고 말한다면,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심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무위의 앎을 얻을 것이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이런 성취를 나는 말한다.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심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