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gaddūpamasuttaṃ (MN 22-뱀의 비유 경) 244-245.
3. opammavaggo, 2. alagaddūpamasuttaṃ (MN 22-뱀의 비유 경) 244-245.
“비구들이여, 아(我)가 있을 때 나에게 아(我)를 가진 것[또는 아(我)에 속한 것]이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또는 아(我)를 가진 것이 있을 때 나에게 아(我)가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아(我)도 아(我)를 가진 것도 사실로부터 믿을만함으로부터 발견되지 않을 때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아(我)다. 이 나는 죽은 뒤에도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로 있을 것이다. 나는 영원히 그렇게 서있을 것이다.’라는 견해의 토대는, 비구들이여, 전적으로 완전히 어리석은 법이 아닌가?”
“kiñhi no siyā, bhante, kevalo hi, bhante, paripūro bāladhammo”ti.
“대덕이시여, 어떻게 아니겠습니까, 대덕이시여, 참으로 전적으로 완전히 어리석은 법입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색(色)은 상(常)한가 무상(無常)한가?” “무상(無常)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인가 락(樂)인가?” “고(苦)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렇다면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受) … 상(想) … 행(行)들 … 식(識)은 상(常)한가 무상(無常)한가?” “무상(無常)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인가 락(樂)인가?” “고(苦)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렇다면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수승한 것이든 과거-미래-현재의 어떤 색(色)에 대해서도,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모든 색(色)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은 바른 지혜에 의해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어떤 수(受)에 대해서도 … 어떤 상(想)에 대해서도 … 어떤 행(行)들에 대해서도 …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수승한 것이든 과거-미래-현재의 어떤 식(識)에 대해서도,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모든 식(識)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은 바른 지혜에 의해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색(色)에 대해서도 염오(厭惡)하고, 수(受)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상(想)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행(行)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식(識)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厭惡)로부 이탐(離貪)한다. 이탐(離貪)으로부터 해탈(解脫)한다. 해탈(解脫)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는 빗장을 들어 올린 자라고도, 해자(垓字)를 메운 자라고도, 기둥을 뽑은 자라고도, 방해받지 않는 자라고도, 깃발을 거두고 짐을 내려놓고 속박에서 풀린 성자라고도 불린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빗장을 들어 올린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무명(無明)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빗장을 들어 올린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해자(垓字)를 메운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다시 존재로 이끄는 태어남의 윤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해자(垓字)를 메운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둥을 뽑은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갈애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둥을 뽑은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방해받지 않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오하분결(五下分結)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방해받지 않는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깃발을 거두고 짐을 내려놓고 속박에서 풀린 성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나는 있다’는 자기화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깃발을 거두고 짐을 내려놓고 속박에서 풀린 성자이다.
비구들이여, 인드라와 함께하고 함께, 범천과 함께하고, 빠자빠띠와 함께하는 신들은 이렇게 해탈한 심(心)을 가진 비구를 ‘이것에 매인 여래의 식(識)’이라고 찾지 못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여래를 지금여기에서 발견되지 않는 자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주장하고 이렇게 설하는 나를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사실 아니고, 헛되고, 거짓말로, 사실과 다르게 비방한다. ㅡ ‘사문 고따마는 허무주의자다. 존재하고 있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와 비존재[무유(無有)]를 선언한다.’라고. 그런 방법으로 있지 않는 나를, 그런 방법으로 말하지 않는 나를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사실 아니고, 헛되고, 거짓말로, 사실과 다르게 비방한다. ㅡ ‘사문 고따마는 허무주의자다. 존재하고 있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와 비존재[무유(無有)]를 선언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을 선언한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여래를 욕하고 중상하고 자극하고 성가시게 한다 해도, 비구들이여, 거기서 여래에게 싫어함이 없고, 의혹이 없고, 심(心)의 불만이 없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다 해도, 비구들이여, 거기서 여래에게 기쁨이 없고, 만족이 없고, 심(心)의 고양됨이 없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다 해도, 비구들이여, 거기서 여래는 이렇게 생각한다. ㅡ ‘예전에 완전히 알려진 이것 때문에 나에게 이러한 행함[존경-존중-숭상-예배]가 행해진다.’라고.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욕하고 중상하고 자극하고 성가시게 한다 해도 그대들은 참으로 싫어함이 없고, 의혹이 없고, 심(心)의 불만 없음을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다 해도 거기서 그대들은 참으로 기쁨이 없고, 만족이 없고, 심(心)이 고양되지 않음을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다 해도 거기서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ㅡ ‘예전에 완전히 알려진 이것 때문에 나에게 이러한 행함이 행해진다.’라고.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은 버려야 한다. 그것의 버려짐은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인가? 비구들이여, 색(色)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의 버려짐은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수(受)는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의 버려짐은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상(想)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의 버려짐은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행(行)들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들의 버려짐은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식(識)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의 버려짐은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제따와나에 있는 풀과 나무토막과 가지와 잎들을 어떤 사람이 가져가거나 태우거나 어떤 방법으로 행한다면 그대들에게 ‘이 사람은 나를 가져가고 태우고 어떤 방법으로 행한다.’라는 생각이 들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인가?” “대덕이시여, 그것은 아(我)거나 아(我)를 가진 것[또는 아(我)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은 버려야 한다. 그것의 버려짐은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인가? 비구들이여, 색(色)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의 버려짐은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수(受)는 … 비구들이여, 상(想)은 … 비구들이여, 행(行)들은 … 비구들이여, 식(識)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니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의 버려짐은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