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니까야 관통법회 - 23. 개미집 경(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0421)
▣ 맛지마니까야 관통법회 - 23. 개미집 경[개미집 비유 & 꾸마라깟사빠-원초적 바른 견해](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0421)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EsYXIiMZho
이 경의 해석은 「불교입문(2-사실) 미리보기(210429) - 특강[자기화와 takka(愛의 형성 과정) & (MN 24-개미집 경)]」과 연결됩니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3&wr_id=61
2. 몸을 개미집에 비유한 뒤 경의 주제가 전개되는데, 몸이라는 개체성 위에서 낮에 행하고 밤에 되짚어 반성하는 삶의 현장입니다. 이때, 여래-아라한-정등각의 안내를 받는 유학(有學)이 삶의 문제들을 지혜로써 해소하고 번뇌 다한 비구 즉 아라한이 되는 수행의 과정을 비유로써 설명합니다.
3. 몸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삶의 문제들
1) 무명(無明)의 장벽
번뇌와 서로 조건 되는 관계라고 정의되는 무명은 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緣起) 곧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첫 번째 지분이어서 중생의 삶의 영역을 해탈된 삶의 영역과 구별하는 기준입니다. 그래서 몸 안에서 해탈되지 못한 심(心)의 존재 영역을 무명의 장벽 너머라고 비유하였다고 하겠습니다.
2) 화와 절망의 부풀어 오른 개구리
화(kodha)는 주로 원한(upanāha)과 짝을 이루어 불선법(不善法), 스승이 버려야 한다고 말한 법들, 심(心)의 오염원, 낮은 삶을 구성하는 법들, 모나게 하는 법들, 괴롭게 머묾-퇴보로 이끎-지옥에 놓임-태어남, 불선-결점-괴로움을 초래[과(果)]-보(報)가 괴로움-거슬림, 아라한의 실현을 위해 버려야 하는 것 등에 속해서 나타납니다.
절망(upāyāsa)은 주로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a[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생(生)-노사(老死)와 함께하는 괴로움으로 연기(緣起)에 나타나는 대표적 용례를 보여줍니다.
이 외에 절망(upāyāsa)의 복합된 표현은 kodhūpāyāsa가 유일한데, 행위 즉 조건의 측면에 해당하는 화와 결과의 측면에 해당하는 절망을 복합하여 화가 속한 여러 의미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를 포괄하여 지시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화와 절망으로 부풀어 오른 부정적 삶을 지시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행위와 결과를 함께 나타내는 경우로는 사념처(四念處)의 정의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어한다.’를 말할 수 있는데, 간탐으로 행위 영역에 속하는 다섯 가지 장애를 대표하고 고뇌로서 결과 영역에 속하는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를 포괄하여 지시한다는 이해입니다.
kodhūpāyāsa는 이 경과 (MN 54-뽀딸리야 경), (SN 22.84-띳사 경), (AN 4.122-파도 경)에 나타나는데, (MN 54-뽀딸리야 경)의 공부에서 자세히 분석하겠습니다.
3) 의심의 교차로
• vicikicchā: doubt; uncertainty. (f.) 의심 ↔ saddha: believing; faithful; devoted. (adj.) 믿음
곧게 뻗은 외길은 그냥 가면 됩니다. 하지만 교차로를 만나면 어떤 길로 가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은 외길이어서 삶의 지향이 명확합니다. 하지만 의심은 교차로여서 지향의 명확성을 잃게 됩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 능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노력은 원하는 바의 성과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믿음은 대표적으로 ①여래구덕(如來九德), ②사실[삼법인(三法印)-연기(緣起)], ③부처님에 의해 선언된 것[유익(有益)과 무익(無益)]에 대한 공감과 동의라고 할 수 있고, 의심은 이런 점에 대한 공감과 동의의 결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다섯 가지 장애에 속한 의심에 대해 토대가 되는 법들은 유익하거나 해로운 법들, 결점이 있거나 결점이 없는 법들, 저열하거나 뛰어난 법들, 악(惡)과 선(善)이 서로와 함께하는 법들인데, 이 법들은 그대로 칠각지(七覺支)의 택법각지(擇法覺支)에서 택법(擇法)의 기준이 됩니다(SN 46.51-자량 경).
4) 다섯 가지 장애의 거름망
• 다섯 가지 장애 = 덮개-장애-오염원 = 지혜를 무력화시키는 것 = 무익(無益) 덩어리 ↔ 유익(有益) 덩어리 = 사념처(四念處) = 지혜를 회복-강화하는 것
; ①소유의 관심[간탐-욕탐(慾貪)]-②진에-③해태-혼침-④들뜸-후회-⑤의심 ― 다섯 가지 장애의 선두에는 소유의 관심(kāmacchanda)과 간탐(慳貪-abhijjhā)와 욕탐(慾貪-kāmarāga)의 세 가지가 나타나는데, 「kāmarāga → abhijjhā → kāmacchanda」의 순서에 따르는 소유의 삶의 전개를 보여줍니다. takka 안에서 생겨나는 탐(貪)이 의업(意業)에 속한 간탐(慳貪)으로 표출된 뒤 관심에 의해 인식으로 순환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순환한 관심은 오온(五蘊)을 붙잡아 오취온(五取蘊)을 만듭니다.
• 칠각지(七覺支) – 덮개-장애-오염원이 아니어서 닦고 많이 행하면 명(明)과 해탈(解脫)의 과(果)의 실현으로 이끎
; 염각지(念覺支)-택법각지(擇法覺支)-정진각지(精進覺支)-희각지(喜覺支)-경안각지(輕安覺支)-정각지(定覺支)-사각지(捨覺支)
⇒ 「수행(修行)의 중심 개념」 ―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ā satta bojjhaṅge yathābhūtaṃ bhāvetvā ~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심(心)의 오염원인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 사념처(四念處)에 잘 확립된 심(心)을 가진 자는 칠각지(七覺支)를 있는 그대로 닦은 뒤에 ~ 」
5) 오취온(五取蘊)의 거북이
오온(五蘊)은 다섯 가지 장애에 속한 관심(chanda)에 붙잡혀 오취온(五取蘊)이 되는데, 중생인 나를 지시합니다. 무명(無明) 위에서 화와 절망, 의심, 다섯 가지 장애 등 행위 과정은 관심(chanda)/욕탐(欲貪-지나친 관심-chandarāga)에 실려 순환적으로 인식에 전달되는데, 욕탐(欲貪)은 이런 방법으로 오온(五蘊)을 붙잡아 오취온(五取蘊) 즉 중생 존재를 만듭니다.
6)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의 도살장
관심(chanda)은 오취온(五取蘊)인 중생이 세상을 만나는 현장에서 육내입처(六內入處)와 육외입처(六外入處)도 붙잡는데, 관심에 붙잡힌 내입처와 외입처는 자기화(māna)에 의해 인식 주관인 나(ahaṃ)와 인식 객관인 나의 것(mamaṃ)이 되어 내가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의 현장을 구성합니다.
이때, 나의 것(mamaṃ)이라고 인식되는 육외입처 가운데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kāmaguṇā)이라고 불립니다. 소유의 사유(kāma) 위에서 인식되는 물질적 대상들인데, 도살장 즉 도살의 현장이라고 비유되었습니다.
7) 소망과 탐(貪)의 고깃덩이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인 도살장에서 인식의 과정이 진행되면 수(受)에 대한 2차 인식의 과정이 진행되어 탐(貪)과 소망이 생깁니다. 이때, 소망과 탐(貪)이 함께한 상태는 애(愛)입니다. 그래서 탐(貪)과 소망이 생기는 이 과정은 애(愛)의 형성 과정(takka)이고, 여기서 형성되는 애(愛)는 사성제(四聖諦)에서 괴로움의 원인 즉 고집(苦集)으로 자리 매겨집니다.
4. 해결된 이후 ― 번뇌 다한 비구의 용
• arahaṃ khīṇāsavo/khīṇāsavā arahanto 번뇌 다한 아라한(들)
이렇게 몸이라는 개체성 위에서 지혜의 칼로 파냄 즉 번뇌를 부수는 수행으로 무명(無明) 너머의 끝에 있는 애(愛)까지를 모두 해소하면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되는데, 이것이 깨달음이고 해탈(解脫)된 삶의 실현이어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몸으로 가지 않게 됩니다. 불사(不死)의 실현이고, 윤회에서의 벗어남이고, 열반의 실현입니다.
5. 경은 행위[화-절망-의심-장애]로부터 출발하여 인식[오취온-소유의 사유에 속한 것]을 거쳐 애(愛)의 형성[탐-소망]까지를 순환 구조로써 설명합니다. 애(愛)가 형성되면 다시 행위로 나아가 반복되는 삶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때, 삶의 구조를 행위로부터 설명하는 것은 주목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의 현장은 인식 과정이지만 관심/지나친 관심이 행위 상태를 싣고 인식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경들은 이런 방식으로 삶을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